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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서 4개월째 살고 있습니다.

올보르 생활 100일을 넘기며, 적어보는 단상

by 꼽슬이

하루, 이틀, 3일, 4일..... 그리고 이제 100일도 넘어서 4개월을 채워가고 있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머나먼 타국에서 내가 이렇게 긴 시간을 보내게 될 줄 감히 알았을까.


오기 전에 꿈에 부풀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소박한 꿈을 꾸며, 다시 이곳에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하루 3끼를 챙겨내는 일상은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다. 한국에서는 주말에도 세 끼니를 모두 만들어내는 일은 흔하지 않다. 수많은 약속과 외식으로 인해... 그것도 아니면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는 배달 천국 대한민국이니까.

하지만 이곳에서 외식은 지극한 사치이다. 인구가 적어 인건비가 비싸서 그런지 외식 물가는 정말 비싸다. 예를 들면, 맥도널드의 가장 기본 세트메뉴 (버거, 콜라, 감자튀김)가 2만 5천 원 정도 한다.


하지만 마트 물가는 한국과 비슷하거나 세일하면 오히려 저렴한 경우도 많아서 세끼 식사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외식을 한다 해도 패스트푸드나 초밥집 정도를 제외하고는 입맛에 잘 맞지 않는다. 심지어 피자도 너무 짜서 맛있게 먹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일상에서 돈을 펑펑 써버리면, 여행을 다닐 비용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니까 더더욱 '식사는 집에서!'가 모토가 되어갔다. 나의 가사노동에 대한 대가로 외식비가 줄어들면, 그 돈으로 여행 경비가 조금 더 풍족해진다.


최대한 많은 유럽 도시들을 여행하자는 게 덴마크에 올 때 목표 중 하나였다.


4개월째에 접어든 지금, 나는 덴마크의 몇 군데 도시와 관광지 (코펜하겐 포함), 스웨덴의 말뫼, 노르웨이의 베르겐과 오슬로, 이탈리아의 밀라노, 피렌체, 로마를 다녀왔다.


5개월째인 12월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첫 두 달은 부엌데기 생활에 적응하느라 책도 못 읽고, 달리기도 못 하고, 노트북은 아예 켜보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그런대로 적응이 되어 아침 식사 준비를 하며 아이 도시락을 싸고, 내 도시락도 챙겨서 9시면 집을 나와 올보르 중앙 도서관에 간다. 물론 매일은 아니지만...

도서관에서 가장 앉고 싶은 자리가 있는데 딱 2자리뿐이라 항상 누군가 앉아있다.

11시에 느지막이 온 날, 누군가 있다가 간 것인지 운 좋게 자리가 비어 한 번 앉아보았다.

아마 8시 오픈에 맞춰 오픈런을 해야 마음 놓고 앉을 수 있는 자리인 것 같다.


8시에 등교하는 딸을 보내고 도서관에 출근해야 하니, 아직은 언감생심이다.


언젠가 아이가 도시락만 싸주면 즐겁게 등교하는 날, 그런 날에 나도 도서관 오픈런을 해보리라... 잠시 꿈을 꿔본다.


자전거의 나라, 덴마크에서 6개월로 장기 계약한 전기 자전거가 나의 발이 되어준다. 그래서 도서관에 5분이면 올 수 있는 것이 참 좋다. 대부분의 책이 덴마크어라 볼 수 없지만, 아이를 위해 영어 동화와 그림책을 빌린다. 아이가 신나게 읽어주진 않지만, 그래도 엄마의 성의를 생각해서 읽으려고 하기는 한다. 그냥 그것에 감사해야지...


생각해 보면 감사할 일은 널리고 널렸다. 먼 타국에 와서 100일을 넘기면서 가족 누구도 심하게 아픈 적이 없다.


아이도 처음에는 가기 싫다고 울고불고했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매일 아침 학교에 가는 일을 받아들인다.

물론, 즐겁게 가진 않지만... 그래서 첫 두 달은 10분 거리의 등굣길을 거의 매일 같이 걸어갔다. 그리고 그대로 돌아오기 싫어, 학교 주변 공원을 걷다가 달렸다.

이제는 그곳이 매일 아침 달리기 코스이다. 넓고 아름다운 공원묘지. 그곳을 달리며 덴마크의 가을을 함께 즐겼다.


이제 겨울이 오고 있다. 하루 중 해가 떠 있는 시간이 8시간 반 밖에 안된다. 최대한 밝은 시간을 즐기고, 어두워지면 집에서 아이와 이것저것 하며 보내는 일상.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이 일상이 그리울 거라 생각하며, 나는 이 시간을 좋은 추억으로 채우리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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