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초처럼 자란 어린 시절
나는 장남이었다. 장남인 아버지와 장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그 의미를 어렸을 때는 몰랐다. 다만 외갓집에 갈 때마다 나를 둘러싸는 따뜻한 시선들과 품속의 온기를 통해, 특별한 존재라는 걸 어린 마음에도 어렴풋이 느꼈다. 외할머니, 외삼촌, 외숙모까지. 외갓집 식구들은 마치 작은 왕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안고 다니셨고, 어디를 가든 손에 무엇이든 쥐여 주셨다.
그 때문이었을까. 나는 어린 마음에 내가 원하는 것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렸다. 사소한 장난감 하나부터 길 가다 보게 된 군것질거리까지. 내 것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함이 가슴속에 자라기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철없는 버릇이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그게 사랑받는 방식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평온한 일상 속에서도, 인생은 종종 예고 없이 균열을 만들었다.
첫 번째는 외삼촌 약국 앞에서 놀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뛰어놀며 한창 신이 나 있었고, 그때 트럭이 빠르게 달려와 나를 덮쳤다. 내 기억에는 놀란 어른들의 얼굴이 스쳐갈 뿐이다. 사고 충격으로 2~3미터가량 날아갔다고 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찰과상 몇 군데만 입었고, 큰 부상은 없었다.
이상하게도, 사고를 낸 운전사의 어머님께서 그날 저녁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외할머니께서는 그 일이 있을 때마다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 운전사 어머님이 널 대신 데려가신 거란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품 안의 아이로 돌아갈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유치원 시절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수예점을 하셨고, 근처에 꽃집을 하시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그 아주머니의 아들과는 형제처럼 지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은 언제나 장난이 많았고, 둘이서 오락실에 가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 날 오락실에서 게임을 마치고 나왔을 때였다. 길 건너편에서 꽃집 아주머니가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을 본 형이 “엄마!” 하고 소리치며 4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달려갔다. 그 순간, 형은 트럭에 부딪혀 그 자리에서 큰 사고를 당했다.
너무 놀란 나는 본능적으로 형을 따라가려 했지만, 그때 놀라 뛰어나오신 어머니가 나를 붙잡으셨다. 내가 한 발짝만 더 내디뎠더라면 어땠을까. 그 생각이 지금도 종종 머릿속을 스친다.
이런 일들이 있은 뒤로,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기도하셨다. 아버지께서 학업에 욕심을 내실 때마다 어머니는 조용히 고개를 저으셨다.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된다.”
그 말은 어릴 적에는 그저 흔한 말처럼 들렸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 마음속에는 내가 무사하기만을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렇게 부모님의 염원 속에서, 사랑받으며, 때로는 삶의 예기치 않은 충돌 속에서도 기적처럼 무사히 자랐다. 어린 시절의 나는 몰랐지만, 그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