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제천에서 나고 자란 시골 아이였다. 그저 평범하게, 느긋하게 흐르던 내 일상은 서울에 있는, 그것도 어린이대공원 앞에 있다는 대학교에 덜컥 합격하면서 송두리째 뒤집혔다.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곳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 채로, 그저 “서울”이라는 단어 하나에 가슴이 뛰었다. 내가 가게 될 곳은 TV 속에서나 보던 복잡한 지하철이 얽히고설킨 대도시였다.
처음 강변 버스터미널에 내린 날을 기억한다.
강변역에서 지하철을 탄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표를 어디서 사야 하는지 몰라 매표소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고, 눈앞에 펼쳐진 노선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겨우겨우 목적지를 찾아냈다. 무심하게 열리고 닫히는 지하철 문,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초라할 정도로 느릿했다. 그 순간, 서울이라는 도시는 나에게 거대한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낯섦이 두렵기보다는 이상하게 설렘으로 다가왔다. 이제 막 판타지 소설의 첫 장을 넘긴 주인공처럼, 앞으로 무슨 일이 펼쳐질지 몰라 두근거렸다.
하지만 설렘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모님과 떨어져 홀로 맞는 밤, 좁고 낯선 원룸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마주했다. 제천에서는 한 번도 의식하지 않았던 적막이, 도시에서는 더욱 깊고 선명하게 다가왔다. 시골의 고요함은 편안함이었지만, 도시의 고요함은 쓸쓸함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지던 날들이 있었다. 때로는 아무 일도 없는데 괜히 울컥하기도 했다.
“잘 지내고 있지?”
“응, 괜찮아.”
입 밖으로 나오는 대답은 언제나 짧았지만, 마음속에는 하고 싶은 말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이렇게 나는 설렘과 외로움이 뒤섞인 채로, 천천히 서울살이에 익숙해져 갔다. 낯선 도시가 조금씩 내 것이 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20살에 서울에 막 상경한 눈물많고 웃음 많던 꼬맹이가 냉소적이고, 모든 일에 동요없는 40대가 되어가는 조용한 이야기를 펼쳐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