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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국 May 25. 2024

인간의 본성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feat. 성악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객관적으로 선한 사람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혹은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가? 단순히 선악의 측면이 아니더라도,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가? 

    

당신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말로 표현하려면 아마 하루 온종일 말해도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또한, 언어로 모두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인간 모두가 인종이나 사는 곳을 넘어서 모두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을까?  

   

내 생각엔 아마도 있는 것 같다.

     

이 생각은 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해온 아주 오래된 생각이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당시에 책을 보거나 수업을 듣던 도중 들었던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활이 있고, 서양에도 활이 있다. 누가 전해준 것도 아닌데 어떻게 같은 방식의 무기가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살면서 이와 비슷한 의문이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동물은 항상 효율적인 수단을 찾는다.’라고 해답을 찾았지만, 그럼에도 잘 와닿지는 않았다.   

  

사실 이런 사례가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에게는 굳이 공유하지 않아도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속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과거 우리나라에서 쓰던 무기와 지구 반대편에서 쓰던 무기가 기능적으로 같은 것처럼 말이다.      


인간 본연의 속성에 관한 아주 유명한 논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본래 악한가? 아니면 선한가?라는 논제이다.     


이 논제는 ‘성선설과 성악설 중 어떤 것이 옳은가?’로 함축된다.      


성선설은 맹자가 주장한 ‘인간은 본래 선한 품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라는 주장으로, 우리가 힘든 사람이나 다친 동물을 보고 연민을 느끼고 도와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사람은 대가가 없어도 기꺼이 선행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성악설은 순자가 주장했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은 악하다.’라는 단순한 주장이 아니다. 조금 더 정확한 말은 ‘인간은 살아가면서 선보다 악에 가까워진다.’라는 주장이다. 성악설의 법이나 규칙이 존재를 근거로 든다. 즉, 인간이 본래 선한 존재라면 법이나 규칙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간의 본성은 악에 가까울까? 아니면 선에 가까울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인간은 원래 ‘악’에 가까운 것 같다. 조금 더 강하게 표현을 하자면, ‘성선설’이라는 주장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말해보겠다.   

  

우리가 ‘성악설’, 혹은 ‘성선설’을 논하기 위해서는 일단 ‘악’을 정의해야 한다. ‘선’은 악의 반대 개념이라고 생각하겠다. 그렇다면, 악은 무엇인가?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악이란 다음과 같다.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 나쁨, 또는 그런 것.’     


따라서 이 개념에 근거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각종 범죄 등은 모두 악으로 정의할 수 있다. 살인, 강간, 약탈, 방화 같은 것 말이다.     


생각해 보자.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은 개체 간의 죽임이 일어나지 않는가?     


당신도 알듯이 그것은 아니다. 산책하던 애완동물끼리도 서로 물고 물리는 사고가 발생하는 마당에 자연에서 일어나는 생존 경쟁에 기인한 서로의 개체를 상하게 하는 일은 매우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악인가?     


그렇지 않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강한 존재가 약한 존재를 죽이는 것을 우리는 ‘약육강식’이라고 부르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 이런 것은 모두 개체의 욕망에 기인한다.     


만약 동물이 자신의 새끼를 지키고 키우는 것은 선인가? 개체 간 도움을 주는 것은 선인가?    

 

그렇지 않다. 이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하지만 이 둘은 인간의 관점에서 선악으로 구별된다.    

 

인간이 지구상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에는 인간 또한 자연의 법칙을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살인이나 약탈과 같은 일이 빈번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그것을 당연한 경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원래 본성은 선도, 악도 아니다. 단지 인간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습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생존 경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선과 악을 규명했다. 본래 자연스러운 것을 악으로 정하고, 집단 단위로 악한 행동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본인들의 생존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악하다는 것은 우리가 정의한 것이다. 의미도 우리가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선과 악은 우리에게만 적용된다.     


따라서 인간은 악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온 우주에서 인간만이 악하다고 할 수 있다. 본래 자연의 일부였던 인간은 자연스러운 것들을 악으로 규정했고, 그 잣대는 오직 본인에게만 들이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선이라고 정의하는 행동들은 우리가 선한 존재여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과거에 했었던 오래된 약속에 기인한다. 이 약속은 시대가 변하면서 계속해서 추가되고 변했지만 그 본연은 변하지 않았다. 사회적 합의로 개체 간 경쟁을 최소화하는 것 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악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약속, 내지는 세뇌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내 의견이 절대적이라는 건 절대 아니다. 그저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조금 더 나아가, 인간 본연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은 또 어떤 것이 있을까? 이것 또한 나의 생각일 뿐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가끔 비효율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생명체는 항상 본인에게 효율적이라고 판단되는 행동을 한다.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개체의 궁극적인 목표 때문이다. 살아남아 유전자를 남기는 것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효율적인 동선을 찾거나, 효율이 좋은 에너지원을 사용한다. 그 이유는 효율이 좋다는 것이 궁극적으로 본인에게 어떠한 식으로든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친구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해보자.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당연히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할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히 시간이 적게 걸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같은 행동에 대해 걸리는 시간이 적다는 것은 곧 효율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효율적인 동물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다른 생명체들과 비교하면 가장 비효율적인 동물 중 하나가 아닐까?     


인간은 비효율에 의미를 두는 거의 유일한 생명체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는 그렇다.    

 

만약 어떤 사람은 취업을 해서 경제적 여유가 있고, 그의 친구들은 아직 취준생이라고 해보자. 그 사람이 금요일 저녁에 친구들과 만나 밥을 먹고 계산을 할 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계산할게.”     


물론 당연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에서 우리는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자신의 재화를 대가 없이 사용한다는 점에서 본인에게는 비효율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그렇게 행하는 것이 생각보다 이상하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은 비효율적인 동물이 아닐까? 이렇게 감정에 기인한 비효율은 인간 말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일까?      


내 생각에 인간은 두 가지의 본성을 가진다. 앞서 말한 ‘악’과 ‘비효율’ 말이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융합된 존재가 바로 인간이 아닐까? 그렇다면 악과 비효율이 합쳐진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가 정의한 ‘악’에 준하는 것들을 피하며 살아간다. 그게 타인에 의한 것이든, 나의 욕구에 기인한 것이든 말이다. 그것을 피하는 방법이 바로 비효율 아닐까?     


우리가 악이라고 정의한 것들을 생각해 보자.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악을 피하기 위해서 당신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분명 어떤 합리적인 행동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행동은 오직 당신이라는 개체 하나에게 정말 이득이 되는, 그러니까 효율적인 행동인가?     


아마 아닐 확률이 클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가지고 싶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당신은 그 물건을 훔치거나, 그 사람을 죽이고 빼앗거나 할 수 있다. 그게 당신에게는 가장 효율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법률이라는 규칙이 있고 이것을 어기면 벌을 받기 때문에 악에 준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본다면 ‘법’이라는 것 자체가 비효율이다. 목적지에 빠르게 가고 싶은데 속도 제한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결국 인간은 내면에 내재된 악을 비효율로써 회피하고 막으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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