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충동구매
요즘 옷에 대한 욕구가 많이 생긴다. 너무 더운 여름을 겪었기 때문일까? 예쁜 가을, 겨울옷을 보고 있으면 정신 저편에 도사리고 있는 ‘충동구매’라는 것이 자꾸 나의 지갑을 위협한다.
옷을 너무 많이 사서 이제는 집으로 옷을 시키지도 못한다. 집에 내가 시킨 택배가 온다면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옷 좀 그만 사라 제발”
등짝을 후려치며 말이다.
솔직히 나는 옷에 관심이 많다. 먼저 쓴 ‘알고리즘이라는 환상이 지배하는 곳’에서 언급했듯 쇼핑몰에서 피팅모델을 한 적도 있고, 심심하면 들여다보는 곳이 쇼핑몰이며 할 짓 없을 땐 친구들에게 연락해 옷 보러 가자고 하기도 한다.
주변에도 옷 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옷에 관심이 없거나, 귀찮아하는 사람은 있어도 싫어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당신은 어떤가? 옷이 너무 많아 옷장이 옷을 토해내기 직전일 수도 있고, 아니면 텅텅 비어 있어 고민일 수도 있다.
사실, 패션에 대한 사회적인 영향력은 아주 오래전부터 매우 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옷을 입지 않으면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겨울에 옷이 없으면 태반이 동사하지 않을까? 따라서 옷은 모두가 입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 분야이다.
여하튼, 이런 간단한 이유 때문에 패션을 선도하는 브랜드나, 명품 브랜드들, 그리고 그 옷들을 입는 인플루언서나 연예인들은 향후 몇 년간의 유행을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패션의 유행을 정하고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것은 세상에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다.
패션위크에서 모델들이 걸치고 나온 옷들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 수는 있다.
‘너무 난해하다.’
‘저런 걸 누가 입지?’
하지만 우리가 입는 거의 모든 의류들은 모두 그런 난해한 스타일에서 시작한다. 그런 옷들을 보고 디자이너들이 재해석하고, 체형에 맞게 변화시키고, 너무 부자연스럽지 않게 계속해서 수정해서 우리가 입는 옷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옷 중에서 본인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듯이, 같은 사람이어도 착용한 옷에 따라서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패완얼’이라는 말이 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말의 줄임말로,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잘생기고 예쁜 사람은 거적때기를 입어도 예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옷을 잘 입어도 그저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꼭 얼굴이 아니어도 체형, 비율 등 옷을 입는 데 중요한 요소들은 너무나도 많다. 아마도 ‘패완얼’에서 ‘얼굴’은 이런 것들이 모두 함축되어 있는 단어인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패완얼’은 잔인하게도 일부 사실이다.
같은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너무 부자연스러워 옷이 사람을 입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본인의 스타일을 찾고 가꾸는 일은 해야만 하는 일이다. ‘외모’가 가지는 가치는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옷이 안 받거나, 외모가 평범하다고 해도 본인의 가치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요소를 그냥 놔두는 것은 엄청난 낭비가 아닐까?
PS. 사실 옷을 많이 사는 저를 정당화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