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잔 다르크)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 즉 신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 단군 신화? 아니면 토르와 로키가 나오는 북유럽 신화? 아니면 손오공이 나오는 서유기?
우리나라의 탄생 신화인 단군 신화를 뺀다면, 단언컨대 우리에게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신화는 바로 ‘그리스 신화’일 것이다. 현재 아이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의 유년시절에는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책이 우리나라에서 정말 파멸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시기와 어린 시절이 겹치는 사람들은 아마도 웬만하면 이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는 번개의 신 제우스, 바다의 신 포세이돈, 명계를 다스리는 하데스를 주축으로 그들의 자식, 혹은 형제, 인간, 요정 등이 출연하는 길고 긴 이야기이다. 이에 대해서 모두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책 한 권으로 부족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 신화는 정말 있었던 일인가? 과거 신들의 전쟁인 ‘티타노마키아’부터 시작해서 사실상 그리스 신화의 결말로 여겨지는 ‘트로이 전쟁’까지 모두 실존했던 일이고, 그것이 기록으로, 혹은 구전으로 내려오는 것일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 그 시점의 사건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지도 않다. 심지어 그나마 남아 있는 기록과 구전 전승조차도 신빙성이 떨어진다.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록에 쓰여진 대로라면 있어야 할 증거들이 현재 발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가 역사로 뒤바뀔 뻔한 적이 한 번 있다.
앞서 언급한 ‘그리스 신화’에서 사실상의 결말인 ‘트로이 전쟁’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아무리 트로이 전쟁을 디테일하게 묘사해도 인간과 신들이 각자 편가르기해 싸운 전쟁이기에 트로이 전쟁은 당연하게도 신화로 치부되었다. ‘신’의 존재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세기 후반에 ‘하인리히 슐리만’이 트로이 유적을 발굴하면서, 신화에 나오던 트로이 전쟁이 실화가 아니냐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그렇다면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하게도 트로이에서 몇 차례의 충돌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그 충돌이 신화에서 나오는 트로이 전쟁인지 확실하지 않았기에 트로이 전쟁은 여전히 신화로 남아 있다. 유적에서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었다면 우리는 트로이 전쟁, 더 나아가 그리스 신화를 만화책이 아니라 역사책에서 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비슷한 예시는 아주 많다. 이집트 문명, 마야 문명을 비롯해 여러 종교에도 이런 것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참고로, 나는 모든 종교를 존중하고 그들의 생각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무튼, 이렇게 신화가 역사가 될 뻔한 한 가지의 사례가 있다. 그렇다면 신화와 같은 일이 역사로 기록된 사례는 어떤 것이 있을까?
바로 12세기에서 13세기에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에 있었던 백년전쟁에서 프랑스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잔 다르크’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신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잔 다르크의 백년전쟁 속 활약은 정말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목에 화살을 맞고도 살아남아 전장을 지휘했다든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던 중 투석기에서 날아온 돌을 머리에 맞고도 버텨냈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이렇게 눈부신 활약을 하다가 이단으로 몰려 교회에 의해 화형당했을 때 그녀의 나이는 19세였다.
이게 정말 사실일까? 어떤 검증을 통해 잔 다르크는 역사책에서 나오는 것일까? 잔 다르크와 그리스 신화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잔 다르크에 대한 이야기에는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고, 기록에 대한 신빙성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리스 신화는 기본적으로 구전 전승이며, 고대 그리스 시절의 기록과 예술에서도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에는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직관적으로 우리 중 누구도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신이나 요정과 같은 존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아주 오래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던 구전 전승과 전승 도중에 기록한 기록물뿐이다. 그렇다면 잔 다르크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와 어떤 것이 다를까?
그것은 바로 잔 다르크의 이야기는 비교적 가까운 과거의 기록이고, 함께 기록된 역사적 사실들이 검증되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잔 다르크의 활약에 대한 기록은 자국의 기록인 프랑스의 기록과 적국의 기록인 잉글랜드의 기록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교차 검증이 완료된 잔 다르크의 기적같은 행동들이 실제 있었던 역사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만약 이런 요소가 없었다면 잔 다르크의 활약상도 그저 신화이지 않았을까?
이렇듯 신화와 역사는 한 끗 차이이다.
우리가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은 어떻게든 과거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모아서 우리의 방식대로 해석하는 것뿐이다. 그에 대해 교차검증을 진행하고, 신빙성을 높이려고 노력해도 100% 검증된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말이 있다.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다.’
역사의 기록 과정에서 왜곡이나 삭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삭제나 왜곡을 행하는 주체는 언제나 승리자 쪽이다.
우리는 과거의 시간으로 도약할 수 없기에, 현재까지 존재하는 기록, 구전 전승과 같은 정보들을 모아서 역사를 판단한다. 그렇게 판단한 역사는 과연 객관적인 역사일까?
그렇지 않다. 판단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판단 착오, 삭제와 같은 것이 일어날 수 있다. 그렇게 여러 왜곡이 일어난 역사는 더 이상 역사가 아니다. 승자에 의해 새롭게 쓰여진 역사는 차라리 신화에 가깝지 않을까?
역사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 나아가 국가끼리의 분쟁이 반드시 발생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분쟁의 중심에 있다. 당신도 웬만하면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해서라도 투쟁해야 할까?
내 생각엔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런 식의 투쟁이 아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역사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 대한 조각들을 우리 좋을 대로 해석해 버린다면 역사를 왜곡하고, 삭제하는 존재들과 다른 점이 없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배우는 보편적인 한국사조차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항상 의문을 제기해본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도 우리의 해석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역사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지킬 힘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런 과정이 반복된다면 신화가 아닌 역사를 정립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정립된 옳은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의 뿌리가 굳건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단단해진 뿌리는 우리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아닐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