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국 Nov 11. 2024

놓는다는 것

상실과 함께 오는 새로운 시작

삶에서 시간이라는 반직선을 따라서 걸어가다 보면 많은 것과 마주한다.

     

나의 세상이 꺼지는 순간까지 내가 하는 선택, 그로 인해 생기는 인연과 같은 것.

     

또는, 보편적으로 운명이라 치부하는 기막힌 우연과 같은 것들은 개개인의 삶을 무한대의 경우의 수로 다가가게 한다.

     

그런 불연속적인 시간의 조각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느끼고, 가져가고, 때로는 버리기도 하면서 늙어간다.



     

살면서 마주치는 인연, 느끼는 감정 등등 모두를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살아온 나에게도 이미 잃어버린, 놓아버린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저 기억 저편에 ‘그랬었던 적이 있었지’ 정도의 파편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무엇을 잃어버리든 상실은 복잡한 감정을 수반한다. 처음에는 놓아버린다는 것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 혹은 두려움이 느껴진다.

     

‘이걸 놓는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며 말이다.

     

그리고 그 감정의 요동은 잃어버리는 존재가 나에게 큰 의미일수록, 함께한 시간이 길수록 세차기 마련이다.

     

떠나보내고 난 후에는 후회, 그리고 미련이라는 감정이 올라온다.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이 올라와 나를 세차게 흔든다.

     

술 마시고 전 애인에게 전화를 걸려던 친구가 있다.

      

나를 포함해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은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결국 그 친구는 전화를 걸었고, 그 사람은 결국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통화 기록을 보며 왜 나를 말리지 않았냐며 뭐라고 한 기억이 있다.

     

솔직히 전화를 건 친구도 머리로는 알았을 것이다. 지금 전화를 하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고 그저 술이 깬 미래의 내가 그 사실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모든 게 다 이성적으로만 된다면 실수는 왜 하고 잘못은 왜 할까?

     

결국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어떤 것이든 놓아줘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정말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 앞서 언급한 연인과의 이별과 같은 것들 말이다.

     

난 동물을 좋아한다. 강아지, 고양이, 앵무새, 심지어 일반적으로 애완동물로는 잘 키우지 않는 도마뱀과 같은 파충류까지도 보고 있으면 귀엽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지만, 그러지 못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반려  동물은 나보다 일찍 죽는다는 사실이다.

     

강아지의 평균 수명은 15년 전후로 알고 있다. 만약 내가 10살 때부터 키운 강아지가 있었다면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너 내 곁에 없지 않을까?

     

평생 함께한 가족을 영영 보내주는 경험을 아직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꼭 이런 것이 아니어도, 친구와 트러블이 생겨 다신 안 볼 사이가 되는 것도, 학교를 졸업하는 것도 모두 ‘놓아주는 것’이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배낭을 한 개씩 메고 있다.

     

그 배낭이란,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담을 수 있는, 하지만 용량이 무한하지는 않은 그런 존재이다.

     

어렸을 때 아무리 친했던 친구와도 시간이 지나면 서먹해지고, 가졌던 감정들은 미화되고, 왜곡되며 바스라진다.

     

따라서 배낭에 담았던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무게가 줄어들어 아주 작은 기억의 파편만큼의 무게만 남고 모두 사라져 버린다.

     

결국 시간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갉아먹는 존재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시간이 있기에 우리가 놓고 싶은 것을 놓을 수 있기도 하다. 이런 말이 있다.

     

“시간이 약이다.”

     

보통 연인과 헤어진 친구에게 하는 말이고, 또 이 글을 읽는 사람 대다수가 경험해 본 사실일 것이다.

     

처음에 느꼈던 매우 큰 감정의 폭풍은, 어떤 것이든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것이든 놓아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 무언가를 놓아준다는 것이 나쁜 건 아닌 것 같다.

     

일단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오래된 감정과 미련을 정리하며 생긴 빈 공간에 새로운 것들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익숙했던 것과의 작별은 생각보다 큰 상실감을 느끼게 하고,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버텨낸다면, 비가 온 후 맑은 하늘을 보는 것처럼 새로움과 희망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즉, 놓는다는 것은 단순히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자신을 찾기 위한, 새로운 시작을 위한 선택이다.


2024. 11. 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