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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Sep 12. 2022

 사교육보다 더 중요한 아이들교육

읽고 쓰고 말하는 것이 자유로운 아이들


엄마가 되었다.

나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내가 여자에서 엄마로 거듭났다.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포켓몬스터에 캐릭터에 빗대어 말해보자면 여자에서 엄마로 진화한 것 이다. 열달 동안 아이를 품고 해산의 고통을 겪어 나보다 더 미약하고 연약한 작고 가녀린 생명체를 책임지고 돌보고 키워하는 막중한 사명이 갑자기 주어졌다. 당시에는 그 사명감이 무거움이 아닌 기쁨과 감격으로 충만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날 수록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욕망과 책임은 점점 무거우므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부족한 나는 엄마로써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것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나의 내면을 다지는 독서였고 아이들이 잘 건강하게 잘 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해 줄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는 것 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 책육아였다.



정말 큰 아이는 책육아에 충실했다. 말도 못하는 아이 옆에 누워 그림으로 된 책을 읽어줄 때 눈을 반짝이던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훤하다. 책육아를 시작한 여느집들처럼 우리도 거실에 텔레비전을 놓지 않고 책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비싼 전집을 새로 들이기보다는 중고사이트를 통해서 저렴하게 중고책을 들이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물려받은 책들로 운 좋게 도서관 못지 않은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아이들은 정말 책을 밟고 물고 빨고 가지고 놀았다. 어디든 손을 내미리기만 하면 손에 책이 닿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주었고 아이들이 읽은 책은 밟히도록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놀다가도 다시 책을 들추며 책을 가지고 놀았다. 시간을 정해서 아이들에게 책을 꼭 읽어주었고 자기 전에도 다양한 책을 많이도 읽어주었다.






여전히 아이들은 책을 좋아하고 자주 보는 편이다. 하지만 하나 둘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책을 보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줄어갔다. 사교육없이 책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고 학원 안 다니고 집에서 실컷 놀면서 책 많이 보는 책과 노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었는데 자신이 없었다. 꿈과 로망은 현실과 동떨어진 로망으로 가슴 한 구석으로 밀려나 점점 멀어져갔고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간식을 겨우 챙겨먹고 바쁘게 학원을 오고갔다.





다행인 것은 엄마인 나는 책을 놓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글을 쓰는 즐거움에 푹 빠져서 지내는 요즘, 부모가 본을 보이고 늘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 책육아로 유년시절을 보냈던 아이들인지라 다시 책을 잡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들은, 특히 큰 아이를 보며 정말 학원에 다니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이 실감이 되었다. 하지만 별 수 없게 느껴졌다.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숙제처럼, 그냥 엉망진창인 체로 실뭉탱이를 대충 휘감겨놓은 털실처럼 가슴에 묵직하게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영어학원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와 함께 다시 옮길 학원을 여유있게 함께 알아보기로 결정하고 아이도 조금 쉬어가는 시간이 생겼다. 그런데 집에서 놀고 쉬는 큰 아이가 책을 보기 시작했다.






전에는 시간이 없어 겨우 틈틈히 읽던 것이 학습만화였는데 이제는 엄마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먼지 뿌옇게 쌓여있던 문학전집을 꺼내 읽기 시작하는 것 이다. 집에서 충분히 놀고 쉬며 심심하면 책을 읽는다는 그 상황이 큰 아이에게 찾아온 것이다. 전집을 하나씩 꺼내 읽어가며 " 이 책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는데? 엄마 특히 시공주니어에서 나온 책 들은 다 재미있어" 라며 화색을 띄고 말하는 아이의 모습이 참 행복해보였다. 전에는 조용해서 뭐하나 보고 있으면 학습만화책만 들여다보던 큰 아이가 줄로 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아이의 모습을 보며 잊고 있었던 책육아가 다시 생각났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고 싶었던 꿈과 계획들이 생각이 났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가기가 가끔 버겁기도 하고 예전이 참 그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바로 지식과 정보를 다루는 문자이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지식과 정보가 문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토론을 해야 한다. 인류의 채집생활을 시작으로 농경생활의 시작과 발전은 문명의 이기를 출현시켰고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발명으로 인해 당시 사제들이 독점한 종교적인 지식과 정보의 카르텔이 무너지게 된다. 금속활자의 발달은 인쇄기로 다량 생산된 성경책을 일반 시민들도 읽게 되며 중세유럽인의 의식을 깨우고 르네상스 시대의 문을 새롭게 여는 계기가 되는 것 이다. 그리고 454년 뒤 또 하나의 발명품이 세상에 출현하게 되는데 바로 통신혁명이라 일컫는 인터넷의 발달이다.



인터넷의 보편화로 인해서 넘쳐나는 정보와 지식을 누구나 빠르게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책을 통해 지식을 배우는 시대는 끝난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런 시대이기에 우리는 더욱 더 역행적으로 책을 읽고 사유하고 깨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sns와 개인 블로거들의 주관적인 생각과 편협된 정보들이 넘쳐나면서 우리는 그 안에서 [진짜뉴스]와 [가짜뉴스]를 선별해야 하는 과제와 선택을 해야 한다. 이렇게 지식과 정보가 평준화된 세상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사물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시선이고, 하나의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자기 논리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지고 더욱 절실해진 것 이다.





클릭 한 번이면 쏟아지는 정보와 지식을 앵무새처럼 전달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것은 지식과 정보가 아니다. 인터넷이 만든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과 정보는 철저하게 자기 논리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철학을 갖춘 사람들만이 새로운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는 왜 책을 읽고 글을 쓰는가]



정보가 넘쳐나고 지식이 평준화된 시대속에서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바로 철학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철학은 세상의 중심축이고 세상이란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라는 것 이다.





당신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이런 질문을 통해서 그 질문에 대답하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지를 명확하게 말할 수 있고 이것은 곧 옳고 그름과 진신과 거짓을 판별하는 능력이며 시행착오를 줄이고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판단력이 된다.우리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나도 마흔의 문턱을 넘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비로소 나를 조금씩 알아가고 만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철학을 통한 질문과 대답을 통해 통찰력이 길러지고 통찰력만이 올바른 선택과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한다. 통찰력이 있으면 어떤 말을 하려고 하거나 어떤 일을 행하려고 할 때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서 일상에서 수 없이 경험하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나를 알아야 세상을 알고 세상을 알아야 미래가 보인다는 말 처럼 나를 바로 알고 빠르게 변화는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휩쓸리지 않고 나 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채 읽기를 통해 철학을 접하고 철학을 통한 통찰력을 기를 수 있는 것 인데 그 능력은 독서와 토론, 글쓰기가 밑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것 이다.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을 공기처럼 사용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지만 역설적이게도 인터넷이 만들어낸 시대의 흐름은 문자를 멀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우리는 왜 책을  읽고 글을 쓰는가]의 저자는 말 한다. 지식과 정보를 쉽게 습득할 수 있게 되자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는 어제 오늘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이런 사회 속에서 우리 아이들을 더욱 더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역시 독서와 글쓰기, 또 가족토론문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은 논리정연하게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되고 꾸준하게 읽고 쓰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사물의 현상을 파악하는 통찰의 힘이 길러져 바르게 사고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것 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독서와 글쓰기, 토론) 성장한 자녀들은 부모들이 굳이 나서서 진로를 도와줄 필요가 없다.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 것 인지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자녀들은 물론이고 부모들도 한 가지 현상에 대해서 내 생각은 무엇인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왜 책을 읽고 글을 쓰는가]
by



같은 맥락으로의 전문가들의 조언은 수도 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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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고령화 가족] 의 천명관 작가와 북콘서트를 진행 할 때의 일이다. 50대 남성 관객이 질문을 꺼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는데요. 이제 고3인데 글쎄. 글쟁이가 되겠다고 하는 겁니다. 먹고 살기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은 모두 아는데 걱정이 됩니다. 아이가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요. 문예창작과인가를 가겠다는데 작가님은 그 길을 가보셨으니까 조언 좀 부탁드립니다. "
희미한 미소로 관객을 응시하던 천명관은 느리게 마이크를 들었다.
"제가 따님을 알지 못하는 입장이니 단정하긴 어렵지만요. 어릴 때부터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골라본 사람이라면, 무슨 일을 하든 잘 알아서 선택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단순말 말에 담긴 평온한 확신은 모두에게 위로와 용기로 다가왔다. 명료한 '독서의 이유'였다.


[책으로 통하는 아이들] 중에서



정말 명료하고 정확한 '독서의 이유' 다. 아이들이 그렇게 스스로 주체가 되어 삶의 주인의식을 가지고 현명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며 삶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그 힘은 독서와 글쓰기와 토론이라는 완벽한 세 박자가 이루어질 때 아름다운 화음으로 완성되는 것 이다.





제목에 이끌려 대여한 책이 하나같이 말하고 있는 진리는 '독서와 글쓰기와 토론'으로 아이를 키우라' 이다. 이것은  다시 한번 나를 채찍질하고 잊고 있던 꿈을 기억나게 해주고 다시 가슴이 뛰게 만드는 것 이다.




많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평가하는 방식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뀌고 있다. 서로를 경쟁자로 인식하는 상대평가체제에서는 4차산업혁명에서 필수적인 공감과 배려와 협력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지향적으로 바뀌고 있는 대학평가방식에서 부합하는 학생들은 당연히 읽기와 쓰기와 토론에 익숙한 학생인 것 이다. 이런 것은 학원에서 배울 수 없다. 학원에서는 잘 가르쳐주지 않는다. 가정에서 충분히 배울 수 있고 배우기 가장 좋은 공간이고 가정에서 배워야 하고 사회분위기가 변화되고 받쳐준다면 더 희망적이다.





우리 아이들이 학원에서 맹목적으로 가르치는 편협한 사고에 갇히지 않고 책을 통해, 방대한 지식과 지식의 확장을 통해 사고력을 키워나가고 내 생각을 자신있게 말하고 설득하고 글로 쓸 수 있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책을 읽으며 사고가 확장되고 글쓰기가 즐거워지고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서 얻은 유익과 변화를 아이들은 더 많이 누리고 경험했으면 좋겠다. 읽다 보면 쓸 수 있고 읽고 쓸 수 있으면 정확하게 사고하고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누구나 검색만 하면 앵무새처럼 말할 수 있는 스쳐지나가는 지식이 아니라, 맹목적으로 주입하고 외우고 암기해서 머리속을 채워나가는 지식이 아니라 책을 통해 사유하고 사고하고 통찰하고 분별하는 그 능력이 내 아이에게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다.



부모들은 성적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책 읽기를 강요한다....나의 책 교육에도 성공과 사교육 없이도 상위권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은근히 숨어있었고 지금도 숨어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성적을 올리고 싶은 내밀한 마음이 독서의 목적은 아니다.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다. 사람다운 사람이 책을 만들고 그 책이 다시 누군가를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아이의 생각을 키우는 독서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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