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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Feb 23. 2024

글쓰기 고충에 대하여

글쓰기 창고


설거짓거리가 쌓이기 시작했다. 밥을 할 시간조차 없었다. 밥 할 시간, 치우는 시간은 낭비였다. 고민 없이 배달음식 앱을 열어 매일 다른 메뉴를 주문했다.  아이들이 삭삭 긁어 먹고 나뒹구는 배달음식을 차마 치우지도 못하고 아이들 곁에서 옆에서 글을 쓰고 수정했다. 몇 일을 그렇게 살았다. 베란다에는 다 먹고 난 배달용기들이 수북하게 쌓여갔다. 이 또한 지나가는 시간이기에 낯설지만 생소한 시간을 과감하게 받아들였다. 첫 책을 출간하던 때, 최종원고마감을 코 앞에 두고 있었던 때의 일이다. 그렇게 많이 고치고 바꾸고 수정했는데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이제 진짜 책으로 나와 더 이상은 수정하려도 수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다급해졌고  진지해졌다. 더 촘촘하게 완벽하게 수정하고 싶은 욕심은 문장의 빼기와 더하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분주하게 시간을 보내던 중 작은 사건이 하나 터졌다. 원고생각만 머리속에 가득하던 때, 아이들에게 더 신경쓰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터치였는지...가장 작고 소중한 막내아이의 손을 놓치는 일이 발생했다. 아이는 그 시건을 이렇게 기억한다.

“엄마. 그때 엄마가 집에 없었잖아. 그래서 울면서 재활용장에 있는 쓰레기 치우는 아저씨한테 가서 말했어. ‘집에 엄마가 없어요.‘ 하고. 그랬더니 아저씨가 지나가는 아줌마한테 이야기해줬어. 그러니까 아줌마가 ’너 몇 학년 몇 반이야? 아줌마가 학교로 데려다줄게. 일단 학교로 가 있자.‘ 그 아줌마가 나 학교로 데려다줬고 엄마가 실내화 가방 갖다주러 왔잖아.”










아직도 가슴이 저릿하고 부끄럽고 마음이 아픈 사건이다. 아이를 학교에 등교시키면서 잠시 내 손에 들려있던 실내화 가방을 함께 들려보냈어야 했는데 까맣게 잊어버리고 커피숍으로 향했다. 내 손에 아이의 실내화가방이 걸려있는지도 전혀 몰랐다. 온통 머리속에 원고생각 뿐이었다. 기분좋게 달달하고 시원한 라떼한잔을 들이키고 얼른 집에 가서 원고를 마감해야지‘....그 사이 아이는 내 손에 들려있는 실내화 가방을 찾으러 집에 들렀고, 집에 엄마도 없고 실내화 가방도 없으니 울면서 밖으로 나간 것이다. 학교에 가서 아이에게 실내화를 신겨주고 우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다독여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참을 울었다.

이 깟게 뭐라고, 뭐 대단한 거 쓴다고, 이거 써서 뭐한다고, 내 곁에 있는 아이 하나 못 챙기고... 이게 뭐하는 건가... 내 손에 걸려있는 아이 실내화 가방 하나 챙겨주지 못하면서 무슨 글을 쓰겠다고 이러고 있는건가...자괴가이 들어 괴로웠다. 글쓰기고 뭐고 다 때려치고 싶었다. 아이들을 절대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내 자리를 지키며 글을 쓴다고 노력했는데도 이런 어이없는 일이 결국 생겨버렸다.



두번 다시는 책 못 쓰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댔다. 다시는 노트북 자판을 들춰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나는 다시 또 이렇게 무언가를 쓰고 있다. 마치 첫 산후통을 잊어버리고, 밤새 잠 못 자고 아이 젖을 물리며 몽롱한 정신과 고단한 육체로 제대로 앉지도 걷지도 못하던 아이를 어르고 달랬던 시간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시 또 둘째를 임신하고, 셋째아이를 임신하여 출산했던 것 처럼... 다시 또 쓰고 있다. 만만치 않은 글쓰기이다. 쉽지 않은 여정이다. 그런데 다시 또 그 고단한 여정의 문을 열고 어려움과 맞닥뜨리려 그 앞을 서성이고 있다. 이제 가볍게 등산화 끈을 질끈 묶고 평탄한 길을 밝기 시작했을 뿐, 아직 정상에 오르지도 못했고 오르막길에 들어서지도 못했다. 꼭 정상에 오르려기보다는 그저 묵묵히 밟아보는 것이다. 한 발자국 흔적을 남기며 오르다보면 어제보단 조금 더 높은 곳에 서 있는 나를 보게될테니.



책 한권을 잘 쓰는 일은 어려운데 오늘 한 편의 글을 잘 써보는 건 해볼만 하다. 그렇다. 그냥 그렇게 살고 그렇게 쓰면 된다.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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