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튜브 Feb 24. 2024

여자 열 명이 사는 셰어하우스를 택한 이유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꾼이 쓰는 셰어하우스 생활기 

사람을 좋아해서, 좋아하다 못해 지독하게 얽히고 싶어서

여자 열 명이 사는 셰어하우스를 첫 자취집으로 정했다.


이 얘기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2023년 5월,

나는 축구동호회에서 조기 축구를 하다가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면서 모든 걸 멈췄다. 

세 탕씩 뛰던 아르바이트도,

졸업하고 처음으로 가입한 여자축구 동호회도,

격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참석한 독서모임도,..


회의감이 극으로 치닫던 때였다. 언제까지 아르바이트로만 연명하면서 꿈을 차일피일 미룰건지..

차라리 뭐라도 하자, 돈이라도 벌자는 생각에 아르바이트를 밤낮으로 세 탕씩 뛰면서 몸을 소진시켰더니 더 이상 몸이 버티질 못했나보다. 오랜만에 나간 조기 축구에서 공을 잡으러 혼자 뛰어가다가 갑자기 우드득- 소리와 함께 운동장에 털썩 주저 앉았다. 신경쓰일 정도로 통증이 오면서 무릎이 점점 붓길래 병원에 갔더니

'전방 십자인대 완파'란다. 재건술을 하고 모두가 잠든 병실 침상에서 생각했다.

퇴원을 하면 어떻게 살 것인지. 


몸을 혹사 시키면서 일을 하고 싶진 않았고,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글과 말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일.

 

흔들리지 않고 바랐던 길로 가기 위해 환경부터 바꿨다. 사는 곳도, 만나는 사람도, 시간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쓰고 싶었다. 평소에 독립을 하면 룸메이트가 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취업이 채로 상경하는 것도 아니니 지역 같은 것엔 제한이 없었다. 그리하여 여자 열 명이 사는 셰어하우스에서 살게 되었다.


대형 셰어하우스 중개 업체를 끼고 계약한 집이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서 계약금을 넣고 집 투어를 했다. 역시나 집은 홈페이지에서 보던 것과 판이하게 달랐다. 지하1층부터 3층까지 있는 빌라였는데,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에서부터 우산, 택배 각종 물건들로 어수선했다. 신발장은 디딜 하나 없이 온갖 신발들이 나와있었고, 실내화를 신어야만 하는지 알려주는 거실 바닥의 먼지와 머리카락, 냉장고엔 치킨무를 비롯하여 각종 먹거리가 터질 하게 보관되어 있었고,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육안으로도 보이게 먼지가 쌓여있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머물게 방은 도둑 맞은 줄 알았다. 아직 사람이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침대엔 옷과 이불이 뒤엉켜있고, 안 그래도 좁은 방인데 책상과 바닥에 화장품과 소지품들이 널려 있었다. 업체 관계자는 이 사태를 잘 모르는 눈치였다. 다 큰 성인들이 사는 집이니 간섭 할 수도 없고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몰랐겠지..


투어를 하고 나서 주변에 얘기했더니 소감을 물어왔다.


"안 본 눈 삽니다."


라며 하소연을 늘어놨더니,

'청춘 드라마의 도입부 같다.'

'기숙사 산다고 생각해라.'

'그래도 도전하는 데 의의가 있다. 살아보고 정 안되겠으면 돌아와라.'

등 새로운 곳에서의 정착을 응원해줬다.


집의 컨디션은 정말 별로였지만, 트리플 역세권에 여자 열 명이 사는 셰어하우스는 흔치 않을 거란 생각에 그냥 계약하기로 했다. 


'이미 입주자들끼리 너무 친해서 못 어울리면 어쩌지'

지레짐작 걱정이 많았지만, 기우였다. 그 때로 돌아간다해도 망설임없이 이 곳을 택했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