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나에게는 내 인생을 따라다니는 글들이 있다. 글들이 내 인생을 따라다닌다고 하였으나 어쩌면 내가 그 글들을 따라다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본다. 아니, 꼭 무엇이 무엇을 따라다닌다고 규정할 필요 없이 나의 인생길을 되돌아볼 때 문득문득 나에게 나타나 나의 삶에서 무언가를 환기시켜 주는 글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 글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글이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 보지 못한 길>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늘 함께 하던 일기장에 인쇄되어 있던 시였다. 당시 일기장을 구입할 때는 단순히 줄만 쳐져 있는 일기장이 아니라 중간중간 나의 생각을 넓혀주는 글들이 조금씩 인쇄되어 있는 일기장을 선택하곤 했다. 그런 일기장 중 한 권에서 처음으로 <가지 않은 길>을 읽게 되었다. 시의 모든 구절이 좋아 읽고 또 읽고 자주 손으로 직접 옮겨 써보던 시였다. 그러던 중 1990년 4월 22일 교보에서 직접 시인의 시가 담긴 책을 구입하였다.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는 건 그 책을 펼칠 때마다 보이는 ‘1990. 4. 22. 02:30 교보에서’라는 나의 손글씨 때문이다.
지금 다시 책을 펼치니 속지에 1989년 9월 15일이라는 초판 일자가 보였다. 난 이듬해 봄 이 초판본을 구입한 것이다. 늘 머릿속을 맴돌 던 시가 책으로 나온 것을 알게 되었으니 주저하지 않고 구입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다만 그때 당시 구입했던 시집의 번역자이신 영문학자 김동영 교수님의 번역과 내가 일기장에서 읽어왔던 번역이 달라 살짝 어색했던 기억도 남아 있다. 번역이 달라지니 시에 담았던 나의 의미들마저 달라진 느낌을 받기도 했다. 나중에 2000년대가 되고 나서야 내가 일기장에서 처음 만난 번역본이 수필가 피천득 작가님의 번역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번역의 뉘앙스가 조금씩 달라도 시의 원래 의미는 살아있기에 그 시집은 아직도 내가 애지중지하며 보관하는 시집 중 하나이다.
프로스트의 시가 너무 좋아 컴퓨터 한글 문서 편집기에 정성껏 옮겨서 밤새 도트 프린터로 인쇄하여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끼워 넣기도 했다. 프로스트의 대표 시 <가 보지 못한 길> 외에도 여러 시를 반복해 읽으며 20대 초반을 보냈다. 책을 다시 꺼내 보니 그때 즐겨 읽었던 시집의 페이지 귀퉁이가 군데군데 접혀있었다.
작년 12월 <인생의 역사>란 신형철 평론가의 책에서 목차를 살펴보고 반가워 바로 구입했던 이유도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시에 대한 평론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사랑하고 대부분 오해하는’이라는 소제목을 읽자마자 ‘오해’라는 말에 궁금함보다는 당혹스러움이 앞섰다. 도대체 무엇을 오해했다는 것인지...
신형철 평론가의 평을 다 읽고 보니, 시에 대해 이건 이런 의미, 저건 저런 의미라 규정하듯이 얘기할 수 있지만, 결국 길이 여러 갈래이듯 우리의 시 읽기 역시 여러 가지일 수 있음을 말하는 것 같다.
나 역시 10대에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는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라는 시구에 집중했다. ‘앞으로의 나의 인생에는 매 순간 선택이 있을 것이고, 난 하나의 선택만 할 수 있을 것인데 결코 되돌아오지 못하는 길이기에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여 나머지 선택하지 못한 길에 대해 미련을 갖지 않을 그런 인생을 살자’라는 이런 각오 아닌 각오를 세우면서 읽었던 것 같다. 20대에서 30대 40대까지도 늘 이 시는 나에게 “가지 않은 길”에 후회하지 말자라는 의미를 새겨 넣었다. 그렇다. 그때 당시에는 한 번 간 길을 결코 다시 되돌아가지 못하기에 나의 인생 역시 되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50년이 넘는 세월을 살고 보니 다시 돌아가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굳이 돌아간다기 것보다는 내가 스스로 나의 인생을 리셋하여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볼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것이다. 20대부터 지금까지 30년을 살아왔으니 이제부터 다른 길을 30년 동안 가보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그날 아침 두 길에는 /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라는 시구처럼 ‘남겨둔 그 길’, ‘가지 않았던 길’이기 때문에 그래서 ‘가보지 못했던 그 길’을 가는 것이다.
이제야 시의 제목 “The Road Not Taken”이 “가지 않은 길”로도 번역되고 “가 보지 못한 길”로도 번역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번역자도 하나의 시로 또 다른 두 갈래 길을 만났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