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염은 어린아이들만 걸리는 줄 알았다.
우리 가족에게는 낯선 단어였다.
아들이 두 살 무렵 폐렴과 함께 잠깐 앓았던 게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갑자기 찾아온 중이염은 예상 밖이었다.
일상의 리듬이 깨졌고, 기다리던 휴가는 병가로 바뀌었다.
처음엔 그저 귀가 조금 울리고 먹먹했다.
상대방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지 않았고, 귀 안에서는 바람 부는 소리가 들렸다.
피곤할 때마다 이명이 있던 터라,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하고 넘겼다.
하지만 다음 날, 상황은 달라졌다.
귀 속이 더 답답했고, 일정한 간격으로 ‘부우~ 부우~’ 하는 소리가 반복됐다.
좀 더 휴식을 취하면 되겠지 싶어, 금요일 저녁은 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증상은 더 심해졌다.
그제야 급하게 병원을 찾았다.
진단은 중이염이었다.
2주 전 심하게 앓았던 목감기가 원인일 수 있다고 했다.
염증은 75%가량 차 있었고, 무엇보다 불편했던 건 소리가 잘 안 들린다는 점이다.
청력 검사를 요청했다. 오른쪽 귀가 확실히 더 안 좋았다.
사실 이쯤에서부터 마음이 불안해졌다.
25년 전, 돌발성 난청을 겪은 기억 때문이다.
첫 아이를 낳고 한 달쯤 지났을 때, 감기 증세와 함께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처음 갔던 병원에서는 단순 감기라며 약을 처방했다.
하지만 이틀 후, 귀는 거의 들리지 않게 됐다.
지인의 소개로 다른 병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돌발성 난청 진단을 받았다.
이미 청력은 손실된 상태였다.
입원할 병상은 없었고, 의사는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TV도, 라디오도, 전화도 안 된다고 했다.
처방약만 먹으며 조용히 쉬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친정에 생후 오십일도 안된 아이를 맡기고, 업무로 장기 해외 출장 중인 남편의 부재로 혼자 집에 있었다. 어머니는 매일 몸에 좋다는 음식을 챙겨 오셨고, 지인을 통해 한의사를 불러 침과 부황 치료도 받게 하셨다.
조금씩 청력이 돌아오기까지는 석 달이 걸렸다.
그렇게 5개월 만에 겨우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왼쪽 귀는 건강 검진 때마다 청력이 오른쪽보다 낮게 나왔고 피곤할 때는 조금씩 이명도 나타났다.
그래서 이번 중이염이 더 심각하게 다가왔다.
시간을 놓쳤다는 생각도 들었다.
목요일, 금요일을 그냥 넘기고 토요일에서야 약을 먹기 시작했다.
약을 먹고 나면 잠이 쏟아졌고, 최근 겨우 자리 잡기 시작한 아침 운동 루틴도 깨졌다.
해야 할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귀는 계속 먹먹하고 답답했다..
원래 안 좋은 왼쪽 귀에 의존하게 되면서, 모든 감각이 흐트러졌다.
음식 맛도 잘 느껴지지 않았고, 어쩌다 조금이라도 딱딱한 것을 씹으면 머릿속이 울렸다.
너무 자서 정신이 또렷할 때면 소설책을 조금씩 읽었다.
그게 그나마 하루를 버티는 방법이었다.
이틀은 증상을 방치했고, 약을 먹은 지는 사흘째, 오늘 병원에 다시 갔고, 약을 새로 받아왔다.
의사는 “아이들도 한 달씩 앓는 병”이라며 웃었지만, 청력을 잃어본 경험이 있는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귀는 여전히 먹먹하고, 집중은 잘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 상황은 기록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무뎌진 감각으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앞으로 나흘 치 약을 더 먹고 지켜보기로 했다.
만약 차도가 없으면, 고막을 절개해 염증을 빼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수술은 최대한 미루는 게 좋다고도 했다.
너무 일찍 고막을 절개해 염증을 제거하면 다시 생기기 쉽고, 그땐 더 치료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주삿바늘도, 수술도 유난히 무서워하는 편이다.
약으로 염증이 모두 빠지길 바랄 뿐이다.
25년 전, 왼쪽 귀의 청력을 잃고 한동안 ‘이대로 청각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눈물로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 아이들도 앓는 중이염에 내가 이렇게 예민해지는 것이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혼자 일하는 삶, 내가 정한 방식대로 살아가는 자유가 좋았다. 그 자유를 즐긴다는 이유로 잠을 줄이며, 온통 일로만 채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늘 뒤늦게 깨닫는다.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 길’이라는 착각에 내 몸을 과하게 몰아붙여 왔다는 것을.
이제는 야근을 줄이고, 퇴근 시간도 지키며, 일과 삶의 균형을 되찾아보려 한다.
뒤늦은 다짐이지만, 지금이라도 방향을 바로잡기로 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꿈이 하나 있다.
돌발성난청에서 회복이 거의 다 되었을 무렵, 그때 나를 오진했던 병원이 꿈에 나왔다.
나는 그 병원 복도를 따라 조용히 걸었다.
몰래 병원으로 바로 통하는 계단 벽에 ‘돌파리’라고 쓰고는 도망치듯 뛰어나온 나의 모습이 영화 속 장면처럼 생생하다.
그만큼 속상하고, 그만큼 절박했던 시간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