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를 뿌리세요

by 퍼퓸

여름 내 찌는 무더위에 계속 에어컨을 틀다가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베란다 창을 활짝 열어 둔다. 공부방의 위치가 고층이라 바람이 불면 파란 가을 하늘이 그대로 거실로 들어온 것처럼 청량한 기분이 든다. 가을에는 매일 이 느낌 그대로 있고 싶건만 불청객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상한다.

그 불청객은 바로 담배연기다.


관리실에 몇 차례 방송을 요청해도 소용이 없다. 특히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을 때 담배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모든 원인을 담배연기 탓으로 돌리면서 그나마 간신히 붙잡았던 집중력의 끈을 완전히 놓아 버린다. 어쩔 수 없이 강제 휴식시간을 가지며 담배냄새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린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몇 주 전에 베란다 창으로 청국장 냄새가 났다. 갑작스레 등장한 청국장의 냄새가 나를 몹시 힘들게 했다. 그래도 해로운 담배냄새도 아니고 건강한 청국장 냄새니 저절로 냄새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담배냄새가 날 때마다 청국장 냄새가 나면 어떨까라고. 하지만 담배냄새를 없애자고 매번 청국장을 끓일 수도 없고 나 역시 청국장 냄새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뭔가 다른 걸 생각해보기로 했다.

뭐가 좋을까?


마침 선반에 놓인 섬유탈취제가 눈에 들어왔다. 섬유탈취제를 보니 은근히 담배냄새가 기다려졌다. 참호 속에서 망원경을 들고 적의 동태를 살피는 보초병처럼 온 신경을 코에 집중하면서 냄새 보초를 섰다. 그리고 마침내 담배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재빨리 섬유탈취제를 꺼내어 냄새가 들어오는 베란다 창밖을 향해 섬유탈취제를 분사했다. 상쾌한 탈취제의 향으로 담배냄새가 바로 사라졌다.

잠시 만족스러웠다.


담배냄새가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니 때마다 이 비싼 탈취제를 베란다 창을 향해 분사해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담배냄새보다 더 강력한 뭔가로 항의를 하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것이 향수다. 오래된 물건을 보관하는 서랍장을 뒤지니 예쁜 향수병들이 얌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행히 이십여 년이 지났음에도 증발하지 않고 남아 있는 향수가 몇 병 있었다. 그 향수 중에는 남편이 선물로 받았던 남성용 향수도 있었다. 남성용 향수는 여성용 향수보다 냄새가 더 강하고 독하다. 럭셔리한 향수병을 보니 섬유탈취제라는 방어용 무기에서 공격형 무기를 장착한 것처럼 든든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선생님, 담배 냄새나요.”

“그래?”


‘흠, 오늘은 어떤 향이 좋을까?’

내 책상 위 한쪽 구석에 놓인 향수병들 중 하나를 집어 들고 베란다 창가로 갔다. 베란다 방충망에 향수병 분사구를 밀착하여 사정없이 향수를 뿌렸다. 이내 담배 냄새가 사라지고 향수 냄새가 나자 아이들이 몹시 궁금해했다. 나는 상황을 바로 설명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혹시 집에 있을 때 외부에서 들어오는 담배냄새로 괴로운 가정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면서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을 널리 이롭게 하자는 홍익인간 정신으로 베란다 창밖으로 향수를 뿌리게 된 상황을 설명하였다.


"헐, 대박"

"앗싸~"

아이들 모두 통쾌하다는 듯이 웃고 좋아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담배 맛에도 예민하다고 한다. 담배를 피울 때 강한 향수 냄새가 나면 담배 맛이 똑 떨어진다고 하니 이십여 년간 고이 모셔 둔 향수병은 내게 공격형 무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물론 흡연자와 싸우자고 향수를 뿌리는 것은 아니다. 흡연자가 진한 향수 냄새가 싫고 괴로운 것처럼 비흡연자도 담배냄새가 싫고 괴롭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후각은 정보가 불충분해서인지 자꾸 정보 이상의 감정적인 판단을 한다. 향기를 그 자체로 두려 하지 않고 좋은 향인지 수상한 향인지 분류하고 판단하려 하는 것이다. 사실 향은 워낙 그 양이 적어서 그 자체로는 이미 이취도 아니고 해롭거나 유익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인데도 그렇다. (<감각·착각·환각>, 최낙언 예문당)


놀랍게도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냄새로 무의식적인 판단을 한다. 흡연자가 아닌 이상 담배냄새가 나면 바로 해로운 나쁜 냄새라고 판단하고, 가끔은 향이 진해 머리가 아플 때에도 몸에 뿌리는 향수 냄새를 해로운 것으로 판단하지는 않는다. 더 나아가 해롭지 않다고 판단한 향수의 향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좋은 향과 싫은 향으로 나눠 판단한다. 다른 감각과 달리 판단 과정이 매우 빠르고 즉각적으로 진행된다. 다른 감각의 경우 대부분 의식적으로 집중을 해서 판단을 하며 미각의 경우는 혀로 맛을 느끼기 전에 먼저 코로 냄새를 맡은 후에 맛을 본다. 즉 후각으로 좋은지 싫은지, 이로운지 해로운지 판단한 후에 맛을 보는 것이다.


<감각·착각·환각>의 저자는 이러한 후각의 성질은 “뇌가 감각에서 입력된 정보를 바탕으로 기억에서 가장 유사한 것을 찾아 해석하는 작업”을 하며, “시각이나 청각에 비해 정보가 부족”하고 “정교하지 않아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는 작업”, 즉 “더 많은 예측에 경험과 환경, 언어와 관념 등이 만든 첫인상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의 의견에 따르면 냄새를 판단하는 기준은 살아오면서 처한 환경, 경험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감각보다도 후각에 이러한 판단의 개입이 더 빠르고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이유는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냥 후 고기가 썩었는지 신선한지, 내가 있는 공간이 안전한 공간인지 위험한 공간인지를 냄새를 통해 판단했던 시대부터 인간에게 심어진 본능인 것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상한 우유를 냄새도 맡지 않고 그냥 마셨다가는 생명을 잃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복통과 설사를 감수해야 하니 안전한 생존 환경을 위해서는 동물의 후각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예민함은 생존의 필요조건이 아닐까.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공부방을 시작하면서 깜짝 놀랐던 사실은 초등학교에서 금연교육을 한다는 점이었다. 일부 초등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방지하고 초등학교 이후 중고등학교 진학 후의 흡연을 방지하기 위함인데,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집에서 이웃집으로부터 스며드는 담배연기와 길거리에서 몰지각한 행인에 의한 흡연에 어린 학생들이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니 공부하는 중간에 담배냄새가 난다고 짜증을 내는 것은 아직 아이들의 경험과 기억에 담배냄새는 해롭고 좋지 않은 냄새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니 이러한 감각이 무감각해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도 우리 어른의 역할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선생님, 담배 냄새나요. 향수 뿌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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