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통한 마음으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롬 12:15
일요일 새벽 5시 15분쯤이었다. 교회에서 새벽 예배 중에 친정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전화라 어머니께 무슨 일은 생긴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어 예배 중에 나와서 전화를 받게 되었다. 어머니는 갑자기 서울에서 자취하는 딸아이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셨다. 전날 밤 10시가 넘어 알바를 끝내고 돌아온 딸아이와 통화한 기억이 있어서 자취 집에서 자고 있을 거라 말씀드렸더니 확실한지를 물으셨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몹시 다급했다. 내게 전화를 걸기 전에 딸아이에게 전화를 하셨다는데, 아이가 자느라 전화를 받지 않아 불안하셨던 모양이다. 그러고 나서 어머니로부터 이태원 사고를 전해 듣게 되었다.
교회에서는 이날 21일 새벽 예배 기간 마지막 날이라 함께 떡을 나누는 중이었다. 새벽예배 기간에는 전날 일찍 취침하여 다들 소식을 모르는 듯했다.
시간이 지나 오전 주일 예배 시간에는 다들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목사님과 함께 애통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참사를 미리 예측한 것은 아닐 텐데 이틀 전에 인쇄된 주보에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라는 말씀을 주제로 목사님 칼럼이 게재되어 있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죽었다. 다들 20대 초반이다. 나의 딸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다.
누군가의 소중한 자녀들이 황망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조용히 내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일상만 유지하기로 했다.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게 살아있는 사람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마음이라 생각했다.
월요일 아침, 학생들이 매일 읽는 신문기사를 바쁘게 수정하게 되었다. 원래 미리 준비한 신문기사는 다른 주제였는데 이태원 사고 관련 기사로 바꾸었다. 처음에는 사건이 너무 충격적이라 아이들에게 심리적으로 너무 큰 충격을 주지는 않을까 걱정도 앞섰다. 하지만 타인의 슬픔에 함께 슬퍼하고 위로하는 마음은 아이들도 배워야 할 부분이다. 타인의 슬픔을 공부 대상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몰라서 외면하지 않도록 신문 기사를 읽으며 사고로 상처받은 이들의 아픔을 잠시라도 함께 공감하는 시간을 갖길 원했다.
아이들이 신문 기사 제목을 보고 나자 보통 때와는 다르게 그리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다. 대부분 여러 매체를 통해 보고 들은 지라 차분했다. 큰소리를 내지도 시끄럽게 웃거나 떠들지도 않았다. 이 사건이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운 사건인지 서로 침묵으로 마음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은 마음이 무겁다. 애통해하는 분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조심스레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시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