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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토크 Sep 12. 2024

다들 각자의 삶을 사는 거지

내 삶의 선택은 나의 몫

살다 보면 때로 삶이 지난 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들여다보는 다른 이들의 삶은 언제나 여유롭고 평화롭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은 어린아이가 아닌 이상 모를 리 없건만 그걸 또 부러워하기도 하고 그 순간 투영된 나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초라하다.

특히 마음속에서의 혼란과 갈등으로 힘들 때는 더욱 그러하다. 




가끔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을 지날 때가 있다.

카페에 앉아서 친구와 깔깔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 백화점에서 방금 막 쇼핑을 마쳤는지 무언가 묵직하게 담겨있는 커다란 백을 양손에 자랑하듯 들고 가는 사람...

저들의 내면에 있는 불안이나 두려움은 아무리 시스루(see through) 옷을 입었다 해도 비칠 리가 없고 안 보이면 읽을 수도 없으니 내 눈엔 그저 걱정도 없고 행복한 것처럼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좋은 사람과 커피 마시며 수다를 떨고, 돈 걱정 없이 마음껏 쇼핑도 할 수 있는 시간적, 경제적인 여유가 샘도 나고 내겐 쉽게 허락되지 않은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고 있는 것 같은 질투 어린 마음으로 심술이 나기도 한다.


어쩌면 깔깔거리는 것 같았지만 친구와의 심각한 문제로 논쟁을 벌이다 기막혀 허탈하게 웃는 그 순간이 하필

내 눈에 포착된 것일 수도 있고 과도한 갈망적 충동을 조절 못해 구매와 동시에 쾌감을 쫒는 쇼핑 중독증으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경제력보다 많은 소비를 하고는 지금 막 뼈저린 후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비뚤어 진 마음 때문에 그 속내를 보지도 못하면서 마치 다 들여다본 양 단정 짓고 판단해 버리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요즈음은 TV 드라마를 통해 세상만사((世上萬事)를 보게 된다.

드라마가 아무리 허구라 해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

평범한 우리 같은 사람들이 평생 모르고 지낼 일들을 알게 해 주기도 한다


자식들 유학비 대느라 등골 빠지는 기러기아빠, 아이가 수험생인 엄마가 일타 강사 찾아다니느라 대치동을 부리나케 들락날락거리고, 승진에서 밀리거나 회사에서 잘릴까 두려워 남편 상사의 사모님에게까지 잘 보이느라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고 맡아해 주는 아내...

오로지 너를 위해 이 모든 희생한다는 부모의 기대가 부담스러워 한 등급이라도 내려갈까 노심초사하는 아이들, 그뿐 아니라 법무법인, 회계법인, 대형 병원에서 까지 소위 일류들만이 몸담을 수 있는 그런 곳에서 조차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는 밟고 서야 하는 조악한 현실, 거기에 난무하는 각종 비리들...

우리 모두 각자 저마다의 걱정 많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번뇌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 인생이라고 한다. 

가졌든, 못 가졌든 세상에 걱정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마는 밥만 먹으면, 차만 있으면 , 집만 있으면 하다가 원하던 것이 하나씩 채워지면 작은 것에서도 느끼던 행복이 점차 무뎌져 더 큰 것, 궁극에는 일확천금도 노리게 되고 웬만한 것으로는 채워지지도 않는 욕심을 메꾸기 위해 각자 꿈을 꾸면서 살아간다.

꿈이 없는 삶은 단팥 없는 찐빵이라 여기고 오늘도 앞만 보고 달려가면서...


예전에 어떤 프로그램에서 성공 후의 후유증으로 우울증에 걸렸다는 개그맨이 나는 무엇이 될까? 를 기대하며 노력하던 때가 행복했는데 이루고 나니 그때를 지나와 버린 느낌... 앞으로의 내 미래가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오직 목표만을 이루기 위해 친구들과 달려오면서 적은 것에서 조차 행복을 느끼던 때가 그립다.

무언가 남아있는 삶이 아름답다는 그의 말이 스친다.


목표에 하나만 다가가도 좋았는데 다 이뤄놓고 나니 행복은커녕 우울감이라니...

살면서 이루고 싶은 것을 다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저럴까? 싶기도 하지만 좀 더 깊게 보면 그에겐 삶의 의미가 사라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성취의 기쁨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제껏 참고 견뎠던 그 긴 시간을 보상을 받기엔 찰나의 시간일 뿐,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 또 다른 날은 계속될 것이고 무엇을 위해 그토록 힘겹게 달리기만 했을까 회의가 들 수도 있겠다.


도착지의 결승선 테이프를 끊기 위해 못 본 척 간과하면서 지나쳤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은 여전히 주변에 머물고 있고,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달려야만 하는 이유자체가 더 이상은 없으니 엄청난 공허감과 함께 어디서부터 어떻게 새로 시작해야 하나 막막함이 밀려올 듯도 하다.

눈물을 훔치면서 그가 한 말들이 배부른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 진다.

때로는 계속 나아가는 것보다는 머물러 있는 것이, 오르기만 하는 것보다는 쉬어가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꿈을 이뤘으니 그의 성공이 부럽긴 하다.


보통은 먹고살기 힘들어 하루살이처럼 날개를 푸드덕 거리며 사느라 고단해 삶의 의미를 운운할 여유가 없고 가진 자들은 먹고사는 일 대신 삶의 의미에 더 많은 포커스가 맞춰져 죽음을 택할 만큼 힘겹고...

사는 게 다들 왜 이리 힘이 드는 건지... 


작은 것에도 만족하는 사람

아무리 많은 것을 갖추고 있어도 결핍을 느끼는 사람

사소한 일에 목숨 걸고는 죽을 만큼 힘들다고 하는 사람

큰 일에 겁 없이 덤벼들며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사람


어떤 지역에서는 올해의 야구 월드시리즈를 즐기기 위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 입고 경기장이 떠나가라 스트레스 풀듯 소리 지르면서 즐거워하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모두를 잃고 처참한 모습으로 피난을 떠나는 모순된 광경이 낯설기만 하다.


성격이 다르고 처해 있는 환경이 다르다 보니 행복도 불행도 그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고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우리는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을 살면 된다.

이따금씩 남들은 다 이루면서 사는데 왜 나만?이라는 자책이 나를 지나치게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항상 꿈을 꾸지만 이루는 경우보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고 내가 그렇듯 나를 넘보는 다른 이들이 쏘아대는 포탄에 맞아 장열 하게 전사할 수도 있으니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늘 버겁다.

어차피 세상은 공평할 수도 공정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의 이유들로 고뇌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어떤 이도 나와 똑같은 삶을 살 수도 없고 내가 다른 이의 삶을 살 수도 없다.

그럼에도 커 보이는 남의 떡을 시기하거나 그런 삶을 공평하게 주지 않은 세상을 욕하면서 억울해하기만 한다면 그것 또한 욕심이 아닐까 싶다.

나는 나로서 살아가면 된다.

다들 각자의 삶을 사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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