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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토크 Mar 14. 2024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갑자기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돈다.

분명 똑바로 서 있는데 놀이동산의 회전컵을 타는 듯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이런 놀이기구는 싫어!~ "

내 몸의 모든 기능들을 주관하면서 쥐락펴락하는 담당사에게 "그만해!~ 재미없다고!~당장 멈춰" 크게 외치고 싶지만 방법을 알리 없으니 돌아가는 세상을 따라 함께 돌 수밖에...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어 감으면 나을까 살짝 감아봤지만 소용이 없다.

오히려 그 안에 있는 컴컴한 세상마저도 "우리는 하나" 하면서 따라 돈다.

지독한 어지러움과 구토가 느껴진다.





새로 시작하는 일은 언제나 설렘과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이런저런 준비하느라 다른 것에 신경을 쓸 수 없을 만큼 육체적으로 바쁘고 힘든 시기에 한국에 있는 가족과의 문제들까지 더해져 도저히 그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잠깐이나마 한국에 나가야 하는 상황들이 나의 정신까지도 아프게 한다.


특별히 건강하지도 않았지만 내세울 건 정신력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다잡으면서 살아온 내가 더 이상은 힘에 부쳐 가까스로 부여잡고 있던 정신줄을 살짝 놓쳐버렸는데 어마무시한 녀석이 내 육체를 공격해 온다.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동안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에 일어나서 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고 나니 슬슬 배가 고파진다.

어느새 오후로 가버린 시간, 생각해 보니 점심은커녕 아침먹질 않았다.

엄마가 어릴 때 "고 쪼그만 위하나를 못 채워 배고프다고 하냐? 했었는데 아직까지 그걸 못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냉장고를 열어 먹을 것을 찾으니 부모님 집에 갔을 때 엄마가 싸준 부추전이 눈을 깜빡깜빡 "나 어때요?" 하고 말하듯 나를 바라본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입맛도 없으니 "그래 너로 정했다" 하고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컴퓨터를 바라보면서 한점 한점 먹기 시작한다.


몇 점을 먹다 보니 바라보고 있던 노트북이 움직인다.

"어!~ 뭔가 이상한데~뭐지?" 하고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보니 이번에는 벽이 움직이고 있다.

마치 배를 타고 있는 것처럼 사물들이 제자리를 이탈하고 둥둥 떠 있는 것 같다.


체했나? 

예전에도 체했을 때 그랬던 것 같은데...

밀가루 음식은 소화가 잘 안 된다더니 먹고 앉아만 있어 소화가 안 돼서 그런 건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본다.

그러자 창문이 천장이 모두 기다렸다는 듯 피곤한지 가만히 있지를 않고 자꾸 옆으로 누우려 해 현기증이 난다.


일단 소화제를 두 알 먹어본다.

"약효가 제 역할을 발휘할 때까지 기다리면 나아지겠지~" 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요즘 내가 너무 무리하긴 했어...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어... 주위를 살피니 침대가 보인다.

휴식이 필요해서 일거야... 좀 누워볼까?" 하고는 베개에 머리를 내리 박고 눕는다.


난데없이 세상이 360도로 빙글빙글 돈다.

아냐 아냐! 이걸 기대한 게 아닌데...

너무 놀라 반사적으로 몸을 바로 세워 침대에 걸터앉는다.


제어되지 않은 채 마구 돌아가던 세상이 조금씩 진정되어 간다.

그렇지만 뭔가 이상이 있었던 몸은 바로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후유증을 뱉어낸다.

속이 미식미식 거린다.


화장실에 가서 한바탕 토를 하고 나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한다.

처음 경험하는 이 증상이 무얼까 걱정도 되고 또다시 세상이 돌까 봐 두렵기도 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병원으로 갈 채비를 한다.

어지러워 천장을 볼 수가 없다.


거리에 나오니 여기저기 간판들이 다시 돌아간다.

걸을 수가 없어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먹은 것도 없는데 속에서는 서로 먼저 바깥세상으로 나가보겠다고 밀치며 그들만의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다.


막연하게 체한 거라고만 생각한 나는 바로 내과를 찾아간다.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름조차도 알 수 없는 놀이기구는 여전히 운행 중이고 나는 원치도 않으면서 안전벨트도 없이 거기에 앉아있다.


차례가 되어 들어가니 의사가 누워보라고 한다.

시키는 대로 누우니 다시 한번 세상이 더 빨리 회전을 하면서 돌아가기 시작한다.


어떡해!~~~~ 무서워진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이 사람만이 중력의 방에 빠진 듯 돌고 있는 세상에서 허우적 대는 나를 건져줄 거라 생각했는지 한 손에는 의사 가운을 다른 손에는 그녀의 손을 놓칠세라 꽈악 잡는다.


청진기를 위로 아래로 움직이면서 진찰하던 의사는 내과적 문제가 아니고 전정기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이비인후과를 가보라고 한다.

속이 이렇게 매스꺼운데 체한 게 아니라 귀가 문제라고? 에이! 설마~~


믿기는 어려웠지만 공포의 회전을 경험한 터라 누구에게든 도움을 청해야 할 듯싶다.

전문가가 조언해 준 대로 이비인후과를 가본다.


어느새 저녁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미 끝날 시간이 되었고 예약도 안 해서 오늘은 안되고 의사를 보기 전에 먼저 뇌검사등 몇 가지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거기다가 지금 죽을 것 같은데 내일 오란다


처음 있는 일이라 우왕좌왕하다 병원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 간 탓인듯하다.

어지러움과 거북한 속 때문에 밥도 못 먹고 눕다가 발생한 일이라 밤에도 누우면 안 될 것 같고 그러다 잠도 못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병원으로 간다.

몇 가지 검사들을 끝내고 만난 의사는 이석증이라고 한다.


이석증? 설명을 해 주긴 했지만 그게 뭔가요?

생각해 보니 그동안 체했다고 생각했던 모든 증상들이 사실은 이석증 때문이었는데 그걸 모르고 소화제만 먹었었는 모양이다.


그런 증상들이 왔을 때 침대에 눕지 않고 그냥 가만히 진정되길 기다리고 있거나 눕더라도 천천히 누웠더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가라앉았을 것을 급하게 머리 박듯이 누웠던 게 문제가 된 듯하다.


다행히 돌아가는 증상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지 않으면 좀 진정되었다가 고개를 돌리면 다시 돌고 진정되고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은 그렇게 반복된다.


그렇다고 해도 일단 증상이 발현(發顯)된 후에는 멈추어 돌아가던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잡아 움직이지 않은 채로 얌전히 있게 되어도 그냥 가기는 억울한지 후유증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한동안은 어지러움과 매스꺼움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불편하다.


후유증은 몸으로 나타나는 증상 말고도 맘속의 우울함 그리고 또 그런 증상이 올까 봐 불안해하는 마음으로 생기는 공황, 여러 가지들이 겹치면서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가끔씩 제멋대로 재발해 내 눈앞에 멀쩡히 서있던 사물들을 돌리고 또 돌린다.


의학적으로는 이것도 일종의 병(病)이라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할 때마다 느껴지는 극심한 어지러움은 이게 과연 치료인지 사람 잡는 운동인지 분간이 가질 않을 정도로 다시는 받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이석증이란 생소한 증상 하나로 세상이 마구마구 돌아가는 끔찍한 경험을 한 탓에 스트레스가 우리 육체에 얼마나 큰 위협을 가하는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긴 했다.






정신은 때로 육체를 한순간에 무너뜨리기도 한다.

건강한 몸이 아니라도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정신이라는 실체 없는 존재가 내면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기 때문 일 것이다.

그렇지만 믿고 있던 정신도 가끔은 배신을 하기도 한다.


살다 보면 스트레스받을 일은 수없이 많고 거기서 자유롭기도 쉽지 않다.

건강할 땐 저들의 힘이 약하니 낮은 포복으로 잠복하고는 육체를 언제 공격할지 기회만 노리고 있다가 조금의 틈만 생기면 어김없이 짠~ 하고 나타나 문제없이 잘 돌아가던 육체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한번 망가진 육체는 어느새 학습이 되었는지 제자리로 돌아가는 방법을 모르는 듯하다.

이제껏 줄 마쳐 잘 서 있었는데 한 곳에서 삐거덕 거리면 그 뒤에 죄 없이 서있던 다른 곳으로 도미노처럼 주르륵 넘어지면서 맥을 못 추린다.


"이석(耳石)이 왔다는 것은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고 보내는 몸의 신호"라고 의사가 말해준다.


해내야 하는 일들 그리고 얼키설키 얽혀있는 문제들까지 많은 숙제들을 안고 있는 상태에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한꺼번에 퍼붓는 폭풍우를 맞듯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가까스로 버텨내던 몸이 작은 신호라도 절대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날린듯하다.


정신에게 굴복당한 육체는 무력하다.

한없이 나약해진 정신세계로 인해 지쳐버린 몸도 마음도 번아웃 되듯 넉다운을 선언한 것 같아 우울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우울감과 공생(共生)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것 때문에 자책하며 괴롭히느라 나를 수렁에 빠뜨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선율이라도 악보의 중간중간에 반드시 쉼표가 있듯이 가다가 힘들면 그 자리에 멈추어 설 필요가 있다.

한 번에 다 해결하려고 무리하고 서두르다 보면 정말 안고 가야 하는 것들은 놓치고 오히려 불필요한 것들을 지고 가느라 에너지 낭비만 할 테니까...


우리가 겪는 모든 일들은 다 시한부이다.

흐르는 물조차도 어디론가를 향해 끊임없이 흘러내려갈 뿐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무는 것은 없고


영원할 것 같은 괴력을 쏟아내며 휘몰아치던 태풍도 그 힘을 다하면 점차 사그라들고 당장은 견뎌내기가 버거워 무겁게 느껴지는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언젠가는 제풀에 꺾여 잠잠해져 갈 것이다.


힘든 시간을 겪어내고 나면 그에 대한 보상을 해 주듯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근육과 그로 인해 건강해진 육체 그리고 아픈 만큼 성숙 해졌을 테니 웬만한 고통쯤은 문제없이 견뎌낼 만큼 꽤 강한 면역력도 키워진다.


어둡고 캄캄한 밤이 지나면 어김없이 환한 새벽이 온다.

고통스러운 일들이 모두 지나가고 나면 동전의 양면처럼 그다음에는 행복하게 웃을 일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또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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