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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토크 Mar 07. 2024

캠핑하다 얼어 죽을 뻔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한국에서 살 때 종종 산에 가서 캠핑을 한 적이 있다.

집에서 맛있게 양념한 고기 바리바리 싸들고 가 자연을 벗 삼아 밖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구워 먹는 맛이 일품이라 떠나기 전날 준비해서 냉동실에 얼려 떠나곤 했다.


풍겨오는 고기냄새 킁킁거리다 얼마나 익었나 요리조리 뒤집다 보면 어느새 입안에 군침이 한가득...

젓가락 찾을 새도 없이 집게로 고기 한점 딱 집어 들고 뜨거워도 호호 불면서 먹고 나면 낙원이 따로 있을까?


상추에 고기 넣고 아이 입에 넣어주면 고 쪼그만 입 크게 벌리고 받아먹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이쁜지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러온다.


똑같은 재료로 해서 먹어도 밖에서 먹으니 집에서와는 다르게 맛이 배가 되는 듯하다.

공기도 맑고 가족이 함께여서 좋고 여기저기 들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취해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여러 점 주워 먹는다.


방금 고기를 잔뜩 구워 먹고 평소 집에서 먹는 양보다 더 많이 먹어 배가 꽉 차있을 텐데도 속에 거지라도 들어앉았나? 

산속이라 칠흑같이 깜깜한 밤에 쏟아지는 별구경하며 버너에 다시 불 피우고 끓여 먹는 라면은... 말이 필요 없다.

그 맛에 먹으러 가는 캠핑을 가끔씩 했던 것 같다.


그 좋았던 기억을 더듬어 캐나다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어느 여름 즈음에 

뭣도 모르면서 그야말로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여름엔 역시 바다보다는 산이지" 하면서 세계 몇 대 경관을 이룬다는 서부 재스퍼 국립공원(Jasper National Park)으로 야영을 떠나 보기로 한다.






각 나라별로 유명한 관광지가 몇 군데씩은 꼭 있다.


우리나라도 설악산이나 제주도처럼 연중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있듯이 캐나다에도 그런 곳을 꼽으라면 동부 쪽으로는 나이아가라 폭포(Niagara Falls)가... 작은 프랑스라고 지칭하는 퀘벡(Québec)이 있다.


퀘벡은 유럽풍의 아름다운 도시로 많이들 가 보고 싶어 하는 곳이긴 하지만 드라마 "도깨비 신부"의 인기에 걸맞게 그 이후에 더 많이 알려진 듯하다.


동부와는 위치적으로 반대편에 있어서인지 완전 다른 느낌의 서부 쪽으로는 앨버타주의 로키산맥(Rocky Mountains)... 그곳에 밴프(Banff National Park)라는 유명한 국립공원이 있고 B.C 주에는 밴쿠버 아일랜드(Vancouver island)빅토리아(Victoria) 그 외에 다른 많은 주에도 가볼 곳들이 꽤 있다.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에베레스트... 가장 긴 강미시시피강... 가장 큰 폭포나이아가라... 하면서 어린 마음에 시험에서 한 개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얼마나 열심히 외웠는지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콕콕 박혀있는데 실상은 교과서와 다르단다.


아프리카의 빅토리아가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훨씬 더 크고 미시시피보다는 나일강이 더 길다고 한다.

물론 그때는 몰랐으니까 이의를 제기할 수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것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70년대는 지금보다 세상이 덜 발달되었을 테니 용감한 탐험가들(?)이 발견을 못했을 수도 있고 길이를 측정할 기구나 여건들이 부족해서 제대로 측정을 못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그 당시에는 책에 나오는 대로만 믿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게 다"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새삼 깨닫게 된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





로키(Rocky)는 단어의 뜻처럼 높고 거대한 바위산이 앞에도 옆에도 떡하니 문지기처럼 가로막고 서있는 듯하여 처음 그곳을 보고 지날 때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다처럼 광활하고 보석처럼 에메랄드빛을 뿜어내는 루이스 호수(Lake Louise)에 띄엄띄엄 떠 있는 배 위에서 노를 젓고 있는 풍광은 사진에서나 보던 평화로움 그 자체이다.


벤프를 지나 재스퍼로 가는 중간중간에 차를 세우고 신비로운 자연이 그려낸 멋진 걸작품을 감상하고 그 아름다움을 남기기 위해 사진도 찍고 또다시 달리고 그렇게 하다 보니 저녁이 다 되어 갈 무렵 겨우 캠핑장에 도착한다.

"혹시나가 역시나!"... 시즌이라 역시 사람들이 많나 보다.


예약을 했어야 했는데 못했으니 오버플로 캠핑장(Overflow Campground)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거리상으로는 캠핑장과 멀지는 않지만 완전히 분리가 되어 있고 예약 없이도 갈 수 있는 만큼 시설이 그만큼은 못해 조금(?) 불편하다.

어차피 하룻밤만 텐트를 치고 잘 계획이라 개의치 않고 이용하기로 한다.


조금 일찍 도착했더라면 캠핑장에 자리가 있었으려나?

낮에 다운타운을 기웃기웃 거리며 다니느라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도착하게 된 그곳은 넓디넓은 공간에 듬성듬성 몇 안 되는 텐트만 보인다.


어두워지기 전에 먼저 잠자리부터 만들어 놓아야 할 것 같아서 주섬주섬 짐을 풀고 텐트의 부속들을 조립하면서 몽골의 게르(Ger)를 짓 듯이 우리가 오늘 밤 머무를 집을 완성한다.


넓다고 다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너무 넓어 수도랑 화장실을 가려고 해도 한참을 걸어야 한다.

화장실은 재래식... 

"정말 싫어!~ 차라리 참겠다!" 큰소리쳐보지만 밤에 볼일 보고 싶으면 세상 낭패일 듯~ 어둡고~ 멀고~~


번갈아 운전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몸뚱이라도 생존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끼니를 때워야 하니 겨우 추슬러 밥을 짓기는 했지만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우리나라처럼 주변에 가게나 식당, 분위기 좋은 카페등 주변시설들이라도 있으면 차라리 사 먹는 게 나을뻔했다.


놀이시설 하나도 없이 드넓은 공터뿐이라 밥 먹고 나니 딱히 할 일이 없다.


텐트 밖에 음식을 내놓으면 밤에 먹이를 찾아 내려온 무서운 곰친구가 찾아 올 수가 있으니 주의하라고 한다.

사람도 먹고 곰도 먹고... 할 수도 있지만 머리 좋은 곰이 "그곳에 가면 먹이가 있다"를 학습하고 나면 사람들이 있는 곳에 계속 등장해 위험할 수가 있으니 절대 음식을 내놓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 말라면 말아야지~ 덩치 큰 곰 하고 맞짱 뜰 수는 없으니까...

남은 음식물들을 모두 텐트 안으로 들여놓는다.


여름이라고는 하나 산속이라 그런지 체감되는 기온이 썰렁하다.

급하게 뚝딱뚝딱 간이로 지어놓은 집속으로 따뜻함을 기대하면서 들어가 본다.

헉!~ 텐트 안에 온기가 하나도 없다.  


공기를 주입해 깔아놓은 패드가 꽤 높은데도 불구하고 그 위에 앉으니 싸늘함이 소름이 돋게 한다.

"침낭 속은 낫겠지" 하고 들어가니 마치 얼음 이불을 덮은 듯 이불의 포근함은커녕 온몸을 감싸고도는 싸한 느낌이 몸소름 쳐진다.

왜 이렇게 춥지? 뭐가 문제일까?


집만큼은 아니더라도 텐트가 바람과 추위정도는 막아줘야 하는데 그 역할을 전혀 못하는 모양이다.

다른 텐트 속은 어떤지 궁금하지만 우리처럼 밖에서 밥 먹는 사람도 없고 그 속에서 뭘 하는지 모두들 미동 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저들은 안 추운 걸까?


캠핑은 이런 게 아닌데... 내가 알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음악소리도 사람의 말소리조차도 없고 깜깜한 어둠과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고립된 듯한 적요(寂寥) 만이 있을 뿐이다.


과연 이 추운 밤에 이곳에서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두려워진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하필 그때 산불이 나 주변이 어수선한 상태였지만 뉴스를 안 본 탓에 우리는 전혀 알리가 없다.

헬리콥터들이 산불진압을 위해 물을 길어 나르느라 수시로 뚜두두...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숲 속 작은 우리 집 하늘 위를 배회하는걸 "추위 때문에 잠도 못 자는데 웬 헬리콥터들이 밤에 잠도 안 자고 왔다 갔다 하느냐"고 원망만 했다.


여름에도 반팔을 못 입을 정도로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이렇게 자다가는 얼어 죽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직 초등학생인 아들은 그럼에도 쿨쿨 잠을 잔다.

차가운 곳에서 자면 입 돌아간다는 데 저렇게 자도록 내버려 두어도 괜찮을까 걱정이 된다.


잠도 잠이지만 극심한 추위와 소음 때문에 못 견딘 나는 차 안에서 자기로 하고 텐트밖으로 나온다.

차에 들어가자마자 히터를 켜고 앉으니 소변 참다가 보는 사람처럼 부르르 떨린다.

서서히 온기가 차 안으로 전해지고 열선이 깔려있는 의자바닥에 손바닥을 뒤집었다 폈다 하면서 얼어 곱아진 손을 녹이고 나니 그나마 몸이 조금씩 풀리는 듯하다.


의자를 최대한 눕혀서 누워봤지만 역시 불편하다.

추위가 덜해지니 살만은 하나 뜨끈한 아랫목이 그리워진다.

멀쩡한 집 놔두고 이 무슨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지...

숲 속 야영의 낭만은 개나 주라지~


나 혼자 살겠다고 뛰쳐나와 차로 피신을 한 나는 그렇게나마 몸을 녹일 수 있었지만 아들과 남편은?

못 견디면 나오겠지 했는데 결국 둘 다 나오지 않았고 히터를 틀고도 추위와 밤새 씨름을 하다가 결국 아침을 맞이한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텐트 안이 걱정돼서 지퍼를 열고 들여다보니 둘 다 침낭을 끌어다 덮고 누워있다.

인기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고 있는 아들 그리고 그 소리에 잠이 깬 남편이 얼굴을 빼꼼히 내밀며 묻는다.

"차에서 자니 좀 낫디? 따뜻해?"

"따뜻하기는... 그냥 소름 돋는 정도의 추위만 피한 거지..."

"그래서 잠 좀 잤어?""

"예민해서 잠자리 바뀌면 잘 못 자고 어차피 쿨잠을 기대한 건 아니니까 그걸로 만족해야지 뭐"


가족을 버려두고 홀로 히터가 나오는 차에서 밤을 보낸 것이 미안해 괜히 볼멘소리를 한다.


다행히 우리 가족은 모두 각자의 방법대로 그 가혹한 추위와 맞서 싸워(?) 이겨내고 얼어 죽지 않았다.

다음날 그곳으로부터 무사히 탈출해 내는데 성공은 했지만 다시는 야영은 하지 않기로... 이젠 어디를 가든 따뜻한 호텔을 먼저 예약하고 떠나기로 다짐한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른 채 막연히 모진 추위와 사투를 벌였지만 나중에서야 추운 원인이 조금씩 밝혀진다.

한국의 여름은 덥고 산에는 사나운 모기들이 극성을 부려 과학적으로 연구(?)를 거친 건지 텐트에 모기장처럼 구멍이 뽕뽕 뚫려있다.


이곳 산에서 야영을 하려면 최하 영하 10도 정도는 견뎌야 하는 침낭을 준비해야 하고 전기장판도 가져와야 한다는데 우리는 "캠핑엔 역시 텐트지"만 생각하고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그 무거운 텐트를 짐에 함께 싣고는 여행을 떠나온 것이다.


사방팔방 다 막혀 있어도 추위를 막을까 말까 한 이곳에서 구멍이 송송이라니...

게다가 침낭도 추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반침낭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뭣도 모른 채 한국에서의 낭만 가득했던 야영만 생각하고 캐나다의 산속 날씨를 얕잡아 본 탓에 우리는 얼어 죽을 뻔한 혹독한 추위에 떨어야 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 집 텐트는 지하실 어딘가에 처박혀 아무도 관심을 주지도 꺼내봐 주지도 않은 채로 더 이상은 바깥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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