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 속의 공주(Sleeping Beauties):패션을 되살리다
메트(The Met)라고 흔히 부르는 뉴욕 맨해튼 도심 5번가(5th Avenue)에 위치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은 센트럴파크 동쪽에 붙어 있으며,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세계 3대 미술관의 하나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의상 연구소(The Costume Institute)의 2024년 봄 블록버스터 쇼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패션을 되살리다’ (Sleeping Beauties: Reawakening Fashion)이다. 디즈니 의상이나 공주 드레스가 연상될 법 하지만, 미술관의 소장품이 되면서, 서서히 손상된 아름다운 의상들을 다시 되살린 전시이다.
매년 5월의 첫 월요일이면 의상연구소의 전시 개관에 앞서 멧 갈라(Met Gala)가 열린다. 올해 유명 스타들은 전시 테마와 함께 발표한 드레스 코드인 시간의 정원(The Garden of Time)(J.G. Ballard, 1962년 단편소설)에 맞춘 의상을 입고 참석하였었다. 수석 큐레이터 볼턴(Andrew Bolton)은 정원과 시간이 주는 전시와의 연결 때문이라고 했다.
전시회는 4세기에 걸친 약 220개의 의상과 액세서리를 선보이며, 자연이라는 주제를 통해 패션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꽃과 잎, 새와 곤충, 물고기와 조개 등의 모티프가 각각 땅(earth), 공기(air), 물(water)의 세 가지 그룹으로 나뉜다. 자연의 무상함 뿐 아니라, 자연의 재탄생, 갱신, 순환성은 패션의 궁극적인 은유로 작용한다. 뉴욕타임스는 전시를 아래와 같이 요약했다.
패션이 패션이 된 이후로
자연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Fashion has been influenced by nature
since it became fashion.
-New York Times
의상이 박물관의 코스튬 인스티튜트 컬렉션에 소장되면, 한때 한 사람의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의상은 이제는 더 이상 입을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무생물의 예술품으로 변한다.
이 전시회는 박물관에 소장된 그러한 걸작 의상들을 연구, 분석하고, 인공지능(AI)과 컴퓨터 생성 이미지와 같은 첨단 도구부터 기존의 엑스레이, 비디오 애니메이션, 빛 투사, 사운드스케이프 등의 다양한 기술들을 통해 감각적으로 재활성화했다.
시각적인 해석뿐 아니라, 후각, 청각, 심지어 촉각의 다양한 감각의 체험을 통해 이러한 오브제들을 다시 생동감 있게 재현하여 원래 의도되었던 활기와 역동성, 생명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지난 7월 관람 간 의상연구소 전시에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 QR 코드를 찍어 가상대기열을 확인하며 40여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입장 후에도 줄을 따라가며 차례로 관람해야 해서 곡예에 가깝게 사진을 찍었다. 전시는 9월 2일까지이다.
인상파 화가 반 고흐의 작품 아이리스(Iris) 에서 영감을 받은 이브 생 로랑의 ‘아이리스(Irises)’ 재킷이 특히 이목을 끌었다.
전시는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가 안 좋아져 마네킹에 더 이상 전시할 수 없는 연구소 소장품 15점, 즉 잠자는 숲 속의 공주 (sleeping beauty)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장미, 나비, 딱정벌레와 같은 연약한 유기적(organic) 주제를 반영한 200개 이상의 견고한 드레스와 액세서리가 함께 전시되었다.
1902년에 덴마크의 알렉산드라를 위해 제작된 라벤더색 이브닝드레스에서는 분해되고 있는 실크 네트에 생긴 틈새를 볼 수 있다. 살짝 건드려도 스팽글이 바로 떨어질 정도이다.
같은 해에 제작된 또 다른 드레스는 찰스 프레드릭 워스가 1887년경에 만든 하우스 오브 워스(Worth)에서 디자인된 무도회용 드레스이다. 태피터를 딱딱하게 하기 위해 금속염 처리한 것이 이제 천을 분해하고 있다.
이 전시는 일반적인 패션 전시와는 상이하다. 큐레이터 볼턴이 시도한 것은 이러한 드레스들을 보조적인 과학 기술을 응용한 전시를 통해 다시 생동감 있게 만든 것이다.
워스의 드레스는 실제로는 유리 진열장에 누워있지만, 여기서는 다시 생명을 얻어 홀로그램(hologram)을 통해 공중에서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맞춰 왈츠를 추고 있었다. 페퍼스 고스트(Pepper’s ghost)라는 환영 기술을 통해 20세기 초에 밑통을 좁게 한 발목길이 홉블 스커트(hobble skirt)가 여성들의 걸음을 어떻게 어색하게 만들었는지 춤추는 아바타 위에 CGI 드레스로 재현되었다.
관람객들은 꽃무늬가 있는 모자의 향기로운 역사를 맡아보고, 드레스의 질감을 3D 프린팅 된 우레탄 벽지로 재현한 갤러리 벽을 만져볼 수 있으며, 뒤로 기대어 천장에 맴도는 새들의 영상을 본다. 16세기말과 17세기 초에는 원예와 자수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실크 태피터(taffeta)의 유령 같은 바스락 거림, 거대한 장식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에 의해 다시 되살려졌다. 지나갈 때 실크의 움직임을 암시하는 렌티큘러 사진이 있으며, 바스락거리는 태피터의 소리가 담긴 오디오 트랙도 있다.
그러나 가장 주목할 만한 감각적 경험은 후각이다. 그것들은 향수가 아닌, 옷(garments) 자체와 그 옷을 입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서 추출한 것이었다.
크리스천 디올(Christian Dior)의 '메이(May)'라는 제목의 무도회 가운은 로베르(Robet)가 수놓았으며, 들판에 자란 풀 사이로 붉은 토끼풀의 독특한 삼엽 잎과 몇몇 드문 사엽 잎이 흩어져 있다. 백합은 디올의 작업용 꽃이었다. 작은 향기를 뿜어내는 유리 튜브들이 있다.
사라 버튼(Sarah Burton)의 나비 드레스는 그녀가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을 위해 데뷔 컬렉션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이 드레스는 자주색 나비의 상징적인 무늬를 모방하기 위해 칠면조 깃털을 잘라 염색하고 페인트칠한 것으로 덮여 있다. 자주색 나비는 희망, 회복력, 인내를 상징해 이는 삶, 죽음, 재탄생을 상징적으로 구현한다.
딱정벌레는 지구상의 모든 동물 종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며, 인간은 수세기 동안 그들을 장식품으로 사용해 왔다. 올리비아 청(Olivia Cheng)의 오간자 드레스는 전체가 보석 딱정벌레로 덮인 작품이다.
실제 잔디가 자라는 로에베(Loewe) 외투가 있다. 이 코트는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의 2023년 S/S 남성복이다.
로에베 외투는 옷에 식물을 재배하여 지속 가능한 패션 산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바이오디자이너인 파울라 올라귀-에스칼로나(Paula Olagui-Escalona)와의 협업 작품이다. 귀리, 호밀, 밀싹을 이 코트에 심었으며, 이 과정을 타임랩스 비디오로 볼 수 있다.
마지막 갤러리인 '인어 신부(The Mermaid Bride)'는 1930년 윌리엄 콘클링 래드(William Conkling Ladd)와 결혼할 때 뉴욕 사교계 인사인 내털리 포터(Natalie Potter)가 입은 칼로 수어즈(Callot Soeurs)의 너무나 현대적인 흰색 실크 웨딩드레스이다. 챗봇을 사용해 드레스에 대해 질문할 수 있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더 넓고 까다로운 주제는 그것은 바로 의상의 생명과 죽음이다. 큐레이터 볼턴이 박물관의 의상들을 '부활시키거나(revive) 재활성화시키려는(reanimate) 노력과도 연결된다.
박물관은 유물을 예술로 변형시키는 기계이다.
Museum is a machine
that transform artifacts into art.
-인류학자 제임스 클리포드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오늘날 박물관 전시(Display)와 보존(preservation)에 대한 정의를 내리게 한다. 패션이 박물관에 들어가 보존 전문가의 손에 넘어가면 그것은 하나의 객체가 되고, 사실상 '죽는다'. 그러나, 문화적 유물을 다시 살아있게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몰입형 전시는 내재된 약점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가 파괴되는 의류, 즉, 상태가 안 좋아져 더 이상 마네킹에 입힐 수 없는 의상들(‘잠자는 숲 속의 공주‘)은 박물관 안에서 영원한 잠에 들 운명임에도 불구하고, 감각의 역사를 잊지 않는다는 패션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의상들을 보며 상상을 이어갔다. 그 시대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내가 입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전시회 영상을 짧게 아래 인스타링크에 릴스로 엮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