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리트 할릴라이(Petrit Halilaj), 아바타레(Abetare)
뉴욕을 여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메트(The Met)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의 옥상 정원(The Iris and B. Gerald Cantor Roof Garden)이다.
위로는 하늘, 빙 둘러 펼쳐지는 맨해튼의 전망, 아래로는 센트럴파크의 자연이 내려다 보이는 미술관의 꼭대기층 루프탑 가든이다. 지난 12년 동안, 이 옥상가든(Roof Garden) 전체에 매년 아이리스와 제럴드 캔터 루프가든 커미션에 선정된 작가의 조각품을 봄부터 초가을까지 설치해 왔다.
작년(2023년) 처음 방문했을 때,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서 태어나 활동하고 있는 35세의 젊은 미국 아티스트이자 활동가인 로렌할시(Lauren Halsey)의 22피트(6.7m) 높이의 이집트풍 건축물이 전시되고 있었다. 흑인아메리칸의 얼굴을 4세기의 스핑크스에 입혀 흑인의 삶과 역사를 표현했다.
올해는 이 멋진 하늘에 자유를 향한 드로잉 ‘페트리트 할릴라이(Petrit Halilaj),아베타레(Abetare)‘가 4월 29일부터 10월 27일까지 그려지고 있다.
메트 루프 가든 커미션(Met Roof Garden commission)을 위해 페트리트 할릴라이가 설치한 어두운 청동과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품 ’아베타레(Abetare)‘는 현재 38세인 이 작가가 어린 시절에 배웠던 알바니아어로 쓰인 그림이 있는 알파벳 입문서의 이름이다.
코소보(Kosovo) 출신의 페트리트 할릴라이는 폭력이 만연했던 발칸 반도에서 난민 아동으로 태어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그의 고향인 코소보의 역사와 그 지역의 현재 문화적 및 정치적 갈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하늘을 배경으로 설치한 새, 꽃, 별, 거대한 거미, 동화 속 집의 실루엣 이미지는 조각품이라기보다는 청동과 스테인리스 스틸로 그려낸 드로잉이다.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는 그의 조각품을 메트로폴리탄의 옥상에 자유를 향한 길을 하늘에 새긴 글(sky writing)이라고 표현했다.
페트리트 할릴라이(Petrit Halilaj)는 1986년 코소보의 루닉(Runik) 마을 근처의 시골 마을(Kostërc)에서 태어났다. 1998년 유고슬라비아 전쟁 중, 그의 나라가 세르비아에 의해 점령당하고 그의 집이 불타버렸을 때, 그는 쿠케스 2 (Kukes II)라고 불리는 알바니아 난민캠프로 피난하여 1년 넘게 머물렀다. 그곳에서 할릴라이는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젊은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수용소에 주둔하고 있던 이탈리아 심리학자 지아코모 폴리(Giacomo Poli)를 만났다. 폴리는 할릴라이가 목격한 잔혹 행위와 그에게 위안을 준 자연 세계의 평화로운 장면을 그리도록 권했고, 그때부터 그의 예술을 향한 길이 시작되었다.
할릴라이는 루닉으로 돌아온 후 이탈리아 밀라노에 가서 미술 학교(Accademia di Brera)에 다녔고, 그 후 2008년 베를린에 가서 살며 작업하고 있다. 그가 경험한 역사와 기억은 그의 조각, 드로잉, 시,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업의 원천이다.
2010년 할릴라이는 고향 루닉을 여행하던 중, 그의 옛 초등학교가 철거될 것이라는 사실에 오래된 책상 몇 개에서 책상 위에 긁은 낙서를 스케치와 사진으로 꼼꼼히 기록했는데, 이는 코소보 청소년 세대의 두려움, 욕망, 정치적 충동, 대중문화적 열광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는 그 후, 구 유고슬라비아가 붕괴된 후 세르비아의 침략을 경험한 다른 발칸 국가인 알바니아, 북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의 책상 위 스크래칭과 낙서도 추적하고 기록했는데, 이러한 이미지 중 일부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아베타레(Abetare)’라는 앙상블을 구성하는 선형 강철 조각품이 되었다.
발칸반도를 암시하는 NATO 로고, 팝송과 평화유지군(KFOR), 맴도는 비둘기 이미지, Runik, Kukes 등 1990년대 유럽 발칸 지역의 초등학교 아이들이 잔혹한 발칸 지역 전쟁 중에 교실 책상 표면에 긁고 낙서한 것들이 Roof Garden 전체에 걸쳐 벽에 부착되고, 지붕 위나 모서리에 보물 찾기나 숨바꼭질을 하듯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
앙상블의 중심에는 가장 큰 조각품 ‘아베타레, 집(House)’이 있다. 청동과 강철 파이프로 스케치되어 우리 자신을 그 안에 담아보도록 만든 뼈대와 꼭대기 지붕만 있는 큰 집이다. 할릴라이는 루닉(Runik) 초등학교의 책상에서 이 이미지를 찾았지만, 세르비아군이 불태운 그의 집이나 Kukes II라는 알바니아 난민 캠프 텐트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는 어린이의 막대기 인형으로 인간을, 별, 뱀으로 자연을 표현해 모든 것의 ‘조화(symphony)’를 표현하려 했다.
두 번째로 큰 조각품은 북마케도니아의 한 학교에 보관된 낙서를 바탕으로 한 7m 높이의 거대한 거미의 형태이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성난 표정이다. 유명한 예술가 루이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거대한 후기 거미 조각품 ‘Maman(어머니)’를 떠올리는 작품이다. 거미의 다리 하나에는 평화의 비둘기가 앉아 있으며 배트맨 이미지가 있다. 거미가 만드는 거미줄로 모든 세상이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루이 부르주아와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성인의 경험은 할릴라이의 예술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아베타레‘는 할릴라이가 십 대의 나이일 때, 그 당시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익숙한 것들이다. 1990년대의 유고슬라비아 전쟁은 두려운 시대였다. 종종 2차 세계 대전과 현재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 전쟁 사이의 유럽의 치명적인 갈등이라 여겨진다. 그 폭력적인 10년 동안 발칸 반도의 난민 어린이 할릴라이에게 예술은 혼란스러운 공포 속에서도 아름다움과 자유가 있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고, 높은 하늘의 상상의 공간에 새를 그리며 자유를 꿈꾸었다.
이제 20년이 넘은 후, 할릴라이는 전쟁터에서 보낸 소년 시절에서 그려진 경이로움과 공포로 유럽 미술계의 떠오르는 예술가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베니스 비엔날레와 대륙 전역의 박물관에서 전시되었으며, 그의 나라 역사를 반영하는 작품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할릴라이의 작품은 민족주의와 망명과 같은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항상 그 밑바탕에는 환상과 기쁨이 깔려 있다
-파리 퐁피두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틴 마셀,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할릴라이는 사람들이 이 전시회를 보면서 코소보 전쟁의 현실과 갈등을 생각하게 되기를 바란다.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자치주로 있다가 2008년 독립을 선언하였으나, 세르비아를 비롯한 일부 국가들로부터 승인을 받지 못하였다.
할릴라이는 항상 자신의 작품에서
나라의 역사를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그의 예술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하며
누구나 그의 예술과 공감할 수 있다
-코소보 국립 미술관 전임 관장 에르젠 슈콜롤리
그래, 끔찍했지만,
나도 꿈을 꾸고 사랑할 수 있어
-페트리트 할릴라이
나의 하늘이 너에게 닿기를
바로 할릴라이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다재다능한 빙산작가의 글을 공유해 본다.
시, 작곡, 기타 연주, 노래를 비롯해, 직접 촬영한 영상이 하늘에 그려진 빙산작가의 아름다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