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우리가 여행하거나 책을 읽는 것은 결국 낯선 세계를 만나기 위해서다. 여행이 몸의 움직임을 통해 새로운 곳을 경험하게 한다면, 독서는 머릿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여행이다. 저자는 자신의 지식과 세계관을 온전히 책 한 권에 담아내므로, 독서는 곧 저자의 세계를 온전히 접하는 경험이 된다. 이처럼 독서와 여행은 우리를 낯선 시각의 세계로 안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관점이 넓어지면 삶이 달라진다
시야를 넓힌다는 것은 하나의 사물이나 현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관점이 좁은 사람은 자신이 본 부분만을 진실이라 여기기 쉽다. 이는 마치 다섯 명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각자 주장하는 모습과 같다.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은 사물과 현상의 모든 면을 두루 살필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매 순간 크고 작은 선택과 결정을 내린다. 이때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전체를 아우르는 능력은 좀 더 미래지향적이고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 필수적이다. 이러한 선택들이 쌓여 인생을 이루기 때문에,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은 더 나은 삶을 위해 꼭 필요하다.
습관화된 시각, 우물 안의 개구리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시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는 다른 말로 단단하고 폐쇄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시각일 수 있다. 자기 시각만을 고집하며 굳건한 성벽을 쌓는다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충돌과 갈등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우리의 시각은 익숙한 것에 쉽게 적응하고 습관화하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영화 관람 매체를 예로 들어보자. 스마트폰, TV, 영화관 등 다양한 매체가 있다. 처음에는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곧 익숙해져 그 작은 사각형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동일한 영화를 대형 스크린으로 보면 훨씬 실감 나게 즐길 수 있으며, 우리의 시야는 한없이 넓어진다. 하지만 극장을 나와 드넓은 세상과 마주할 때, 스크린은 그저 작은 사각형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 쉽게 적응하고, 습관화된 시각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믿게 된다. 자신이 좁은 시야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아래를 굽어보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장님은 다섯 명이었다. 이들이 코끼리를 만져본 후 함께 의논하여 코끼리의 모습을 그려냈다면 각기 낯선 동물을 그려낸 것에 비해 훨씬 진짜 모습에 근접한 코끼리를 그려냈을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비록 개개인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스마트폰 화면의 크기일지라도 여럿이 자신의 세계를 소통하고 공유하고 나눌 수 있다면 어느덧 넓은 세계를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자기의 것만을 고집하면 자기가 만진 것이 진짜라고 우겨대는 장님들과 다를 바 없다.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자기 것을 과감하게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쌓아온 자기 세계를 내려놓는 것은 어쩌면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시각을 넓히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시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위해서는 무한한 노력이 필요하다. 여행이나 독서도 그 방법 중 하나다.
규정된 것들을 벗어날 때 열리는 가능성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규정에 둘러싸여 있다. 예를 들어, 맥주병은 맥주를 담는 용도라고 규정짓는 순간, 그 외의 다른 용도는 상상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이 규정에서 벗어난다면 어떨까? 누군가에게는 참기름을 담는 병이 될 수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망치나 심지어 훌륭한 악기가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어떤 사물이 ‘이런 용도로만 쓰이는 물건’이라고 단정 짓는 순간, 우리는 사고의 틀에 갇히게 된다. 문화, 풍습, 법률, 지식 등 우리가 쌓아온 규정들이 오히려 우리의 시야를 좁히는 셈이다. 이러한 틀을 벗어던질 때, 즉 ‘맥주병은 꼭 맥주만 담는 병’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날 때 인간은 상상력의 날개를 달고 창조적 행위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게 된다.
영화 <패치 아담스>에는 규범에 갇힌 의사들이 등장한다. 한 명은 주인공 패치가 정신병동에서 만난 의사 프랙이고 다른 한 명은 의대 학장 월콧이다. 공교롭게도 두 의사는 동일한 대학 출신으로 서로 잘 아는 사이다. 이들의 눈에는 패치의 자유분방한 사고, 어느 틀에도 구속되기를 거부하고 맥주병을 주어진 용도 이외에 다른 용도로 활용하려는 그의 행동이 심히 거슬린다. 불편한 감정을 넘어 그가 의사 세계의 규범을 어긴 이방인으로 간주하고 의사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의사는 지식인이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환자를 치료한다. 그런데 그 지식이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의 지식이 항상 옳다거나 지식의 포로가 되어 다른 것을 볼 수 없다면 그것은 오히려 환자의 치료를 방해할 수도 있다. 질병은 커다란 범주로 분류할 수 있으나 그 범주의 분류가 얼마나 자의적인가는 잘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DSM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의학의 모범적 매뉴얼로 간주된다. 이 DSM은 다양한 병명을 규정하고 있으나 그 역시 수시로 규정을 바꾸고 있다. 병명이 바뀌기도 하고 하위 영역이 달라지기도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다양하고 파악이 힘든 병을 규정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규범을 깨고 시야를 확장하라
우리 대부분은 스스로 구축한 견고한 규범의 틀 안에서 생각하고 살아간다. 교육과 같이 외부로부터 받은 규범을 내면화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지만, 이 틀을 깨지 않으면 결코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없다. 규범화는 시야의 편협함을 뜻하는 반면, 탈규범화는 시야의 확장을 뜻한다. 습관화된 시각을 내려놓고, 규정된 것들에서 벗어나는 용기.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