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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마음속에 있다

에세이

by 인산

행복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있을 때 행복하고 무엇이 없을 때 불행한가. 행·불행이 소유 여부와 관계없는 것인가. 그런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행복은 소유의 유무와 크게 상관없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소유의 유무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더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다음의 예들은 행복과 마음이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잘 보여준다.

약속 시간이 되어 여유 있게 집을 나섰을 때와 급하게 집을 나섰을 때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자동차로 십 분 거리를 운전한다고 할 때, 여유가 있을 때 십 분 거리는 별로 길게 느껴지지 않지만, 여유가 없을 때는 십 분 거리가 참으로 멀게 느껴진다. 마음이 급할 때의 시간과 그렇지 않을 때의 시간에 대한 느낌은 천지 차이다. 운동경기에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기고 있을 때 종료 휘슬이 불리기까지 어쩌면 그렇게 더디게 시간이 흘러가는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팀이 지고 있을 때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시간의 흐름은 이렇듯 주관적인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 시간은 객관적이며 시간의 흐름은 빠르거나 느리지 않고 일정하게 불변의 속도로 진행된다. 다만 이를 운용하는 각 개인의 상황과 그 상황에 대한 감정이 다르기 때문에 개인이 느끼는 시간 차이가 있는 것이다. 시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외적이고 객관적인 사태들은 불변이지만 마음 상태에 따라 변화무쌍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도 이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외적 사물은 있는 그대로 자기를 표현하고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개인은 주관적인 관점에 따라 외적 사물을 다른 모습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현재 자신의 주관성에 따라 자동차가 눈에 들어올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헤어스타일이 눈에 띌 수도 있다. 만약 자동차를 구입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자동차들이 주로 눈에 띌 것이고, 머리를 자르려고 생각한다면 이번에는 자동차가 아닌 다른 사람의 머리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즉 주관적인 상태와 관심이 외적 모습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자신에게 있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의 주된 요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자기 주위의 세계는 자신으로 인해 변하기도 하고 새로운 모습을 취하기도 한다. 결국 자신이 세상의 색을 변화시킬 수 있는 주도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원효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그가 당나라로 가던 중 동굴에서 해골 물을 마셨던 일화를 통해 깨달은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외적 현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일 것이다. 하긴 소크라테스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도 이와 같은 맥락이며, 학문이란 인간을 탐구하되 궁극적으로 자기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점도 일리가 있다.


이쯤에서 하나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과연 어떤 사람이 긍정적이고 어떤 사람이 부정적인가 하는 점이다. 신경학자들은 뇌의 작용에 따라 기질이 달라져 낙관주의자 혹은 비관주의자가 된다고 말한다. 인지치료의 창시자인 아론 벡은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자동적 사고(automatic thought)를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꿀 수 있다면 결국은 긍정적 마인드를 지닐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잘못된 신념을 자기 치료로 교정한다면 부정적 정서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나만 재수가 없을까?”라는 생각이, 뇌에서 지시를 내리는 것이든 자동적 사고에 의한 것이든 마음먹기라는 놀라운 힘으로 외부 사태에 대한 개인의 인식이 달라진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또 다른 예를 들어볼 수 있다. 앞서도 보았듯이 마음에 따라 외부 사물이 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단순하지만 분명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아기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한 여성이 결혼하여 출산했다고 가정해 보자. 평소에 친척이나 친구 아기의 기저귀를 갈 엄두를 내지 못했을 이 여성은 이제는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 아기의 기저귀를 갈 것이다. 자식의 똥 냄새는 역겹기는커녕 왠지 구수하게 느껴진다. 왜 같은 똥인데도 다른 아기의 똥은 견딜 수 없지만 자기 아기의 똥은 견딜 수 있는 것일까? 외적 상황은 그대로지만 내적인 상태, 즉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열세에 놓이게 된 장수는 죽기로 작정하고 배수진을 친다. 앞에는 강력한 적군 뒤에는 시퍼런 강물이 가로막고 있다. 이제 병사들은 적을 이겨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초인적인 힘으로 결국은 승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배수진이라는 극약처방이 병사들의 마음을 바꾸었고 승리가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 승리를 쟁취하게 된 것이다. 적의 숫자나 상황은 그대로였지만 병사의 마음이 바뀌자 전쟁의 결과도 바뀌었다.


천국과 지옥이 똑같은 모습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지옥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옥의 모습은 고통에 신음하고 있으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죽은 사람들이 진수성찬이 차려진 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사람 키만 한 기다란 젓가락이 주어져 있었다.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으려고 시도해 보지만 너무 길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놓고 배를 곯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는 이어 천국을 방문하였다. 그곳도 지옥과 똑같은 모습으로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고 젓가락도 똑같은 길이였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면 천국의 그들은 긴 젓가락을 이용하여 서로에게 먹여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천국의 사람들은 지옥의 사람들과는 달리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있었다. 이 일화는 천국이든 지옥이든 상황은 똑같다는 것을 알려준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이 특히 나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곳은 지옥이 될 것이지만, 같은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그 상황을 나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천국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같은 상황이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이 이야기의 또 다른 교훈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천국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긴 젓가락으로 자신만 먹으려고 한다면 결코 먹을 수가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 그 공은 곧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오랜 인간의 역사 속에 나타난 수많은 사건과 일화를 보면 남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은 그것이 곧 자기에게로 되돌아와 넘칠 만큼 보상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보상받기 위해 남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헌신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의 원리는 언젠가는 보상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순환 원리로 되어 있다. 자신이 젓가락으로 남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면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남은 자신의 입에 더 풍부하고 맛있는 음식을 넣어준다. 주고받는 긍정적 행동은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순환되며 눈덩이가 불어나듯 점점 커져 커다란 행복지수를 만들어 낸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다. 고난과 역경은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며 이를 극복했을 때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고생 없이 행복해질 수는 없는 것일까? 여기서 고생과 고난은 이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닦고 주어진 상황을 지옥이 아닌 천국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훈련장이라는 의미이다. 위인들을 보면 그들은 하나같이 시련과 고난을 극복한 경험이 있다. 역경을 이겨낸 경험으로부터 몸과 마음에 항바이러스가 넘쳐났기 때문에 또 다른 고난의 장애물이 가로막는다고 해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특히 젊었을 때 고생은 필요하다. 물론 극복이라는 전제가 필요하긴 하다. 어려운 장애물을 극복한다는 것은 자체만으로도 행복감을 주기 때문이다.


갈수록 세계적으로 전반적으로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시련 접종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 난관을 겪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약간의 결핍 현상에도 쉽사리 무너진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 행복한 사람은 내적으로 성숙하고 강한 사람이며 합리적 논리 속에서 가능한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화해와 조화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주의할 점이 있다. 대체로 인간은 잘잘못을 따질 때 책임을 남의 탓으로 돌리려고 한다.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는 속담처럼 인간은 가능하면 변명하려 하고 자기 잘못을 축소하려고 한다.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때 “내 탓이요”라는 문구가 성행한 적이 있지만 그게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행복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나의 잘못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행복을 위한 마음가짐은 주어진 시련을 극복하기 위한 긍정적인 마음, 역경을 이겨냄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이다. 원효가 마셨던 해골 물은 마실 당시 달콤했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몸에도 흡족한 물이었다. 원효가 처음부터 해골 물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무리 목이 말라도 결코 마시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도 그 물을 마시라고 권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잠깐 생각만 바꾸면 해골이 아니라 오아시스의 물이 담긴 바가지가 되기 때문에 마셔도 괜찮다고 권하는 것은 거짓이며 사기이다. 굶은 아기를 위해 분유를 훔치다 잡힌 엄마에게 고난을 잘 참고 견뎌야지 어찌 도둑질을 하느냐고 호통을 친다면 이 역시 위선이다.


행복은 마음속에 있다. 그러나 그 마음은 몸과 감각과 인식 위에 굳건히 발을 딛고 있는 마음이지 뜬구름을 잡는 애매한 마음이 아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지니려고 꾸준히 다스리고 노력해야 한다. 다만 마음 다스리기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정치적·이념적으로 지배하려는 지배자의 논리는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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