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가까운 관계 갈등의 근원, 기대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까운 사람일수록 갈등을 많이 일으킵니다. 항상 옆에 있으면 부딪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가족 간에 싸움이 잦습니다. 어릴 때는 엄마가 아이에게 상관을 하기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고, 결혼하면 배우자와 자주 부딪칩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그저 한 공간에서 매일 접하는 관계이기 때문일까요? 좀 더 안을 들여다보면, 친한 사람일수록, 챙기는 사람일수록, 관심을 쏟는 사람일수록 갈등의 여지가 많은 까닭은 그만큼 기대가 크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기대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기대합니다. 그 기대가 미치지 못하면 기분이 상하게 되고 싸움이 일어납니다.
아이가 지나치게 게임에 몰두하고 있으면 엄마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 게임을 통제하려 합니다. 아이는 재미있는 게임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엄마가 밉습니다. 그러니 갈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는 아이가 장차 자라나서 본인이 원하는 바를 하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큰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바람이 무산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엄마는 괴롭습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자에게 기대했지만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불만이 쌓이고, 결국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됩니다.
기대는 통제 욕망의 다른 이름
결국 관계에서 파국을 일으키는 것은 기대라는 욕망에서 비롯됩니다. 기대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기대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또는 상대방이 '이렇게 해 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기대 자체는 중립적인 감정이지만, 그 기대가 마음속에서 하나의 사실이나 의무로 굳어진다면 문제가 생겨납니다.
이런 기대는 본질적으로 세상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싶다는 통제 욕망을 포함합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자기 말이 통하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커지기에, 친밀한 관계에서 기대는 더욱 위험해집니다.
위험한 이유를 좀 더 살펴보면, 친밀함은 투자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식, 부부 등 가까운 사람일수록 함께 보낸 시간이나 감정, 정성이 많이 들어갑니다. 이런 투자는 자연스럽게 보상에 대한 기대를 만들어냅니다. "이 정도 했으니, 당신도 나에게 이렇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경계가 흐려지는 것도 기대에 대한 갈등 유발의 원인입니다. 타인과는 분명한 선을 긋고 관계 맺음을 할 수 있지만, 가족에게는 마음으로 정한 임의의 기준을 쉽게 적용해 버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설정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더 큰 실망을 합니다. 이렇듯 기대는 통제하고 싶은 마음의 다른 이름입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상대를 자기 일부처럼 느끼면서 무의식적으로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기대는 사랑의 변형이자 사랑을 뒤집은 면입니다. 사랑하니까 바라지만, 문제는 바람이 높을수록 상처도 크다는 것입니다.
기대가 문제가 되는 것은, 기대가 요구나 의무로 변하거나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의 판에 끼워 맞추기 때문입니다.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면 분노나 실망이 생겨나고, 이러한 기대의 결여가 반복되면 좌절, 냉소, 거리두기, 단절의 과정이 생겨납니다.
기대를 없애면 갈등이 해소될까?
결국 우리는 기대 때문에 상처받고 기대 때문에 싸웁니다. 그렇다면 기대를 없애면 관계가 편안해질까요? 완전히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기대는 인간이 서로에게 마음을 쓰는 방식이자 애착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기대가 완전히 사라진 관계는 무관심과 별로 다르지 않으며 생명력을 잃습니다. 신뢰나 애착 역시 기대에서 생겨나며, 협력과 공동체 역시 예상이 가능한 행동이라는 기대에 기반합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기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기대가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다루는 일입니다. 문제는 무의식적이고 밖으로 표현되지 않은 기대, 그리고 상대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기대입니다.
기대가 당연함이나 요구가 되는 순간 갈등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렇게 되면 좋겠다"는 하나의 바람으로 돌려놓는다면 관계는 훨씬 가벼워집니다. 또한 기대는 어디까지나 자기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지, 상대가 반드시 채워줘야 할 의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실망과 분노는 크게 줄어듭니다.
기대를 다루는 법 : 인정과 직시
관계의 평화는 상대를 바꾸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기대의 크기를 조절하고, 말하지 않은 기대를 말로 꺼내며 자신과 상대의 경계를 분명히 할 때 갈등은 자연스럽게 잦아듭니다. 한 마디로 기대는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고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고, 관계는 훨씬 좋은 형태로 변할 것입니다.
우리가 관계에서 겪는 고통의 근원에는 늘 기대가 놓여 있습니다. 기대는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타인이 내 마음의 연장선처럼 움직이기를 바라는 은근한 욕망입니다. 하지만 인간에게서 기대를 완전히 지워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에게 기대를 걸 만큼 그를 자신의 세계에 들여놓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내 안에서 생겨난 마음을 마치 상대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의무처럼 여긴다면, 기대는 욕망에서 요구로 변하고, 관계는 억압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금이 갑니다. 기대를 다루는 길은 그것을 억누르거나 버리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대가 어디에서 오는지, 그것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갈망하는지 자기 안쪽을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기대는 더 이상 상대를 향한 명령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가진 하나의 움직임, 하나의 진동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내 마음이 만들어낸 그림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 그대로의 인간으로 직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관계는 비로소 소유하려는 욕망이 아닌 함께 있음의 공간에 자리하게 됩니다.
타자성의 인정과 기대의 다룸
우리가 타인과 맺는 관계에는 언제나 기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기대는 타자가 나의 세계 속에서 일정한 질서를 따라주길 바라는 욕구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타자는 결코 내가 만든 도식 속에 온전히 귀속될 수 없습니다. 레비나스가 말했듯, 타자는 언제나 나의 사유를 넘어서는 타자성의 장에서 존재하며, 그의 얼굴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의 존재를 거부함으로써 비로소 그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대라는 이름으로 품고 있는 마음은 타자를 향한 애정이면서 동시에 타자를 지배하려는 은밀한 충동일 수 있습니다. 기대를 없애려는 시도는 종종 무위로 돌아갑니다. 기대를 지워버린다는 것은 세상으로 향하는 마음의 창을 닫아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삶과 관계가 무풍지대가 되어 생기와 온기 또한 잃어버립니다.
하이데거식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기대라는 구조 속에서 “타자를 나의 가능성으로 환원하려는 존재 방식”을 자주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 순간 타자는 사라지고, 남는 것은 나의 그림자뿐입니다.
기대를 다루는 길은 결국 타자를 타자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상대가 내가 설계한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고, 그의 자유를 그의 몫으로 돌려보내는 일, 그때 비로소 관계는 소유가 아닌 동행, 억압이 아닌 열림의 공간이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깨닫습니다. 갈등의 뿌리는 상대가 나처럼 되지 않음에 있지 않고, “나는 왜 상대를 나처럼 만들고 싶었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 속에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동양 철학에서 바라본 기대
기대는 마음이 스스로 그려놓은 그림을 타인의 삶 위에 얹으려는 움직임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법(法)이라 하고, 도가에서는 만물은 스스로 그러한 것(自然)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기대란 결국, 있는 그대로의 흐름에 나의 뜻을 얹으려는 작은 집착이 생겨나는 것과 같습니다.
집착이 깊어지면 그만큼 괴로움도 깊어집니다. 불만은 물이 잘못 흘러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물길을 돌리려는 나의 욕심에서 생겨납니다. 그래서 기대를 없애려는 마음조차 또 하나의 기대, 즉 집착이 될 수 있습니다.
기대를 다루는 올바른 길은 버림에 있지 않습니다. 마음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지를 조용히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관(觀)은 마음의 물결이 일어날 때 그것을 붙잡지 않고 살펴보는 일입니다. 그렇게 바라보면, 기대는 어느 순간 힘을 잃고 안개처럼 흩어집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것도 이때입니다. 내가 만들어놓은, 이러해야 한다는 그림이 사라지면, 비로소 그 사람은 자기 모습으로 나의 눈앞에 섭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여여(如如)라 하고, 도가에서는 지기(至氣), 그대로의 존재라 합니다. 기대가 비워질 때, 삶은 좀 더 평온해지고 관계는 얽힘이 아닌 흐름이 됩니다. 마음이 흐름을 허락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에게 짐이 아니라 하나의 바람이 됩니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하면서 몸을 기댈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