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11월 16일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 <도그 워커(dog walker)의 사랑>(송정안 연출, 강동훈 작)을 관람하였다. 이 연극은 정교한 미장센과 인물의 내면을 병치하는 무대 구성이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주요 인물인 소영과 그녀를 둘러싼 주위 인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숙례 역 배우가 때로는 인간, 때로는 강아지로 경계를 넘나들어 인물의 층위가 다중적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막이 열릴 때 보라색 의상을 입은 숙례가 객석에서 무대로 진입하고, 동시에 무대를 가로막던 막이 물살을 가르듯 열리는 장면은 이 작품이 현실과 비현실, 현재와 과거, 삶과 죽음의 계열을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임을 암시한다.
특히 무대 구성은 주목할 만하다. Space111에서는 보기 드문 프로시니엄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이를 둘러싼 사각의 프레임은 금색의 그림틀처럼 세팅되어 있다. 프로시니엄 무대가 사실주의 연극에서 흔히 강조되는 몰입 효과와 달리, 여기서는 관객의 거리두기를 유도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안내문에 “무대는 소영의 허무를 채워 줄 그림이자, 소영이 찾은 그림이며, 우리는 그것을 관망한다”라고 명시된 바와 같이, 해당 공간은 몰입의 공간이 아니라 관망의 공간, 즉 보이는 세계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프레임으로 기능한다.
또한 무대 후면 벽에는 동일한 금색 프레임이 반복 배치되고, 그 내부에는 아래로 기울어진 거울이 설치되어 연기자들의 뒷모습을 반사한다. 프레임 속 프레임, 이미지 속 이미지라는 이 이중적 구조는 ‘액자소설’의 서사 형식을 연극적으로 변용한 장치라 할 수 있다. 액자소설이 바깥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의 층위를 포함하여 서사의 신뢰도와 입체감을 강화하는 것처럼, <도그 워커의 사랑>의 액자 무대는 죽은 숙례의 존재가 현재의 서사에 개입하고, 소영의 잠재의식이 표층 서사를 침투하며, 현실과 꿈의 경계가 중첩되는 방식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따라서 이 무대는 단순한 형식적 실험이 아니라 서사의 다층적 구조를 공간적으로 가시화하고 있다.
작품의 중심인물인 소영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정신과 전문의로, 유산 정리 문제로 한국을 찾은 인물이다. 외형적으로는 성공과 안정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내면은 공허와 허무, 결핍과 고독으로 채워져 있다. 작품은 소영의 무기력한 첫 장면에서 출발하여, 그녀의 심리적 균열이 점차 표면 위로 드러나는 과정을 따라간다. 다만 한 번의 관극으로는 그녀의 고독과 혼란의 근원이 명확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이는 작품이 관객에게 남기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소영에게 헌신적인 남편 에디와의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던 이유, 도그 워커 하민에게 쉽게 빠져드는 이유, 그리고 말투, 어투의 불균형이 드러내는 비일상적 관계의 온도는 모두 관계의 비대칭성을 가리킨다. 그녀의 결핍은 관계의 상호성이 무너진 지점에서 발생한다. 타인을 자신의 고독을 보완하기 위한 대상으로 호출하는 순간 그 관계는 필연적으로 허약해진다. 도그 워커에게서 잠시 기대했던 결핍 보상의 가능성도 지속되지 못하는데, 이는 하민이 소영과 달리 견고한 내적 세계를 가지고 있으며 물질적 조건에 의존하지 않는 관계 방식을 지니기 때문이다. 반면 소영이 추구하는 관계는 물질적 조건을 배제할 수 없으며, 이러한 구조적 차이가 인물 간의 간극을 더욱 심화시킨다.
이 지점에서 숙례의 존재는 중요한 상징으로 기능한다. 강아지이면서 동시에 해설자이자 죽은 자의 목소리인 숙례는 물질의 축적이 결코 결핍을 해소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녀의 독백은 소영의 욕망 구조와도 대조되며, 소영과 도그 워커를 연결하는 매개가 되었던 강아지라는 존재가 결국 이들의 관계적 균열을 드러내는 장치로도 작용한다.
후반부 조명을 받으며 읊조리는 각 인물의 독백은 문학적으로는 뛰어난 텍스트이나, 연극적 변환의 관점에서는 다소 한계가 드러난다. 작품이 전반적으로 관객과의 소통보다는 거리두기와 관망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는 일정한 미학적 선택일 수 있으나, 연극이라는 장르의 상호적 본질을 고려할 때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공연이 마치 대형 스크린으로 시청한 드라마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를 반영하는 지표다.
<도그 워커의 사랑>은 무대의 구조적 실험과 서사의 다층성을 통해 현대적 고독, 결핍, 그리고 관계의 균열을 섬세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그러나 그 미학적 완성도가 관객과의 감각적 소통으로까지 충분히 확장되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 지점이 향후 본 작품의 연극적 잠재성을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