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25년 11월 15일 오후 3시 공연된 <검은 국화꽃>(작/연출 이동인)을 관람하였다. 삼선교에 자리한 아담한 소극장 ‘여행자 극장’에서 ‘피지컬 시극’이라는 장르를 표명한 <검은 국화꽃>의 무대가 궁금하다. 지하로 내려가 극장 안으로 들어가니 무대는 완전히 비어있다. 다만 무대 안쪽으로 검은 커튼이 배경을 대신하고 있다.
공연이 시작되면 배우들이 하나둘 등장하여 여덟이 된다. 이들은 진한 회색 톤의 편한 복장을 하고 있다. 무대 중앙에서 배우들이 무릎을 꿇고 한데 어울리자, 꼭 검은 국화꽃 한 송이를 보는 것 같다. 안내문에 따르면 ‘피지컬 시극’이란 “단단하고 유려한 움직임을 위해 우리나라 전통 무용의 깊은 호흡을 근간으로 두고, 화술 또한 근대에 사용되던 ‘하오체’를 사용” 하고 “대사는 마치 음악처럼 리듬과 박자를 타는 듯 진행”되는 연극이다. 전통 연극 형식을 취하되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려는 의도처럼 보인다. 그런 까닭에 연기자들은 춤을 추듯 리듬에 맞추어 움직인다. 가령, 아비의 폭력 장면에서 전통 무용의 정중동 호흡이 폭발적인 긴장감으로 발현되고, 어미가 아이를 떠미는 순간, 유려한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끊기며 그 매정한 보호의 감정이 극대화된다. 또한 하오체의 사용으로 배우들의 대사는 일상 대화가 아닌 운명적인 고백 혹은 시대적 기록처럼 느껴지고, 이는 대화체보다 독백의 느낌으로 감정을 토해내는 연기 방식과 시너지를 이룬다. 시극을 표방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대사는 굵고 짧으며 움직임은 넓고 크다.
첫 장면에서 한 노동자가 일터에서 사고로 손이 잘린다. 그는 일자무식의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지만 가난에 허덕인다. 아비가 된 그는 매일 술을 마시고 아내와 어린 자식을 폭행한다. 과거의 전형적인 폭력 가족의 모습이 그려진다. 배운 것은 없는 어미지만 본능적으로 아이를 보호한다. 그 보호 방식이 흥미롭다. 아이를 안고 감싸는 대신 매정하게 대하면서 집을 떠나라고 등을 떠민다. 자식의 등을 떠미는 어미의 마음을 어찌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결국 사건이 터진다. 아비의 폭력을 견딜 수 없었던 아이는 망치를 들고 아비를 내리친다. 그것은 저항이다. 운명에 대한 저항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다. 아이의 저항은 풀 수 없는 수수께끼 앞에서 스핑크스에게 제시한 또 다른 해결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미는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하고 유치장에 갇힌다. 어미는 책임을 지으려는 의지를 보이고 아이는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폭력이 가득한 무대는 붉은 조명으로 가득하다.
시골 출신의 어미는 국화꽃을 좋아하고 왕방울만 한 눈을 가진 소를 좋아하는 순박한 여자였다. 그런 여자가 남편을 죽인 살인자가 되기까지, 그녀의 삶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지 그 여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어미는 사십 대에 유치장에서 숨을 거둔다. 그리고 다시 장면들이 재생되듯 펼쳐진다. 무대 좌우로 등퇴장하던 배우들은 안쪽의 커튼을 활용하여 등퇴장한다. 재생된 장면은 이들 가족의 역사를 다시 쓰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들의 무의식이 외화된 것 같기도 하다. 아비가 죽는 순간을 생생하게 재현하면서 어미는 정화된 자신을 발견하고, 그 느낌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태어난다는 것은 고통과 아픔이다. 아이는 이를 체험하지만, 자기 안에 어미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아이는 비로소 죄의식에서 벗어난다.
이를 표현하는 연극적 방식이 인상적이다. 절정으로 치닫을 때 무대 안쪽 커튼의 중앙이 걷어져 있다. 아들과 어미가 합세하여 아비의 가슴에 칼을 꽂은 다음 시체를 커튼 안쪽으로 끌고 간다. 어미는 아비의 심장을 꺼내어 먹는다. 그녀의 손과 입은 온통 검은 얼룩이다. 붉은 피빗이 아닌 검은 얼룩은 검은 국화꽃의 색과 맞닿아 있다. 이번에 아이는 어미를 죽인다. 이 폭력적인 장면은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미를 깊이 있게 새기는 은유적 표현이다. 자식의 탄생 그리고 성장은 아비와 어미의 죽음을 바탕으로 한다는 신화가 새롭게 구현된다. 이러한 죽음과 행위들, 이를 바탕으로 어미는 자식의 가슴에서 영원히 살아있게 될 것이다.
보통 국화, 흰 국화는 장례식에서 사용된다. 죽음은 흰 국화꽃과 긴밀하다. 그렇다면 반대로 검은 국화꽃은 삶을 뜻하는 것일까? 이 연극은 인간의 삶에서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연주되는 고통과 안식, 상처와 정화, 죽음과 삶, 어둠과 밝음의 이중적 변주를 신화적 상징으로 보여준다. <오이디푸스 왕>이 신화 속 가족의 폭력과 비극을 그린 것이라면, <검은 국화꽃>은 우리의 가장 평범한 전통적인 가족에서의 폭력과 희생 그리고 정화를 그리고 있다.
공연 내내 배우들의 소리와 움직임 그리고 주제 자체가 무겁고 어두웠지만, 그 어둠 속에서 피어난 꽃일수록 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는 여운을 남기고 있다. 한 마디로 <검은 국화꽃>은 고통과 괴로움을 견뎌내고 새롭게 탄생한 생명일수록 밝은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 무게만 견뎌낸다면 관객은 연극적 방식으로 해석된 슬픔과 고통 이후에 새롭게 생겨난 회복과 치유의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