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술 취한 사람들> 리뷰

공연

by 인산

‘취중진담’으로 발견하는 삶의 진실


술에 취하면 횡설수설한다. 몸은 균형을 잃고 말의 논리는 흐트러진다. 술에 취하면 소위 슈퍼에고가 사라지고 그에 강하게 억눌려 있던 이드가 활개를 친다. ‘취중진담’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다. 평소에 품고 있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다가 술에 취하면 말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성이 작동하여, 할 이야기와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잘 제어하던 사람이 취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러시아 작가 이반 비리파예프의 희곡 <술 취한 사람들>(남상식 연출, 25. 11. 20–11. 30)은 이렇게 술에 취해 일상의 통제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입을 빌어 극적 메시지를 전한다.


안내문에 따르면 극작가의 관심은 소통이다. “소통은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 진화한다. 전쟁과 폭력은 나쁜 소통 형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이다. 또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 돕고, 연민을 베푸는 소통도 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인간 사이에서 이해하고 도움을 주고 연민을 베푸는 소통이다. 소통은 연극 자체의 핵심 사항이기도 하다. 이처럼 연극 <술 취한 사람들>이 ‘취중진담’의 소통 방식을 기반으로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이반 비리파예프 : 파편화된 시대에 영적 질문을 던진 러시아 신극의 기수


1974년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출생한 그는 극작가, 연출가, 영화감독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러시아 신극(뉴드라마) 운동의 선두 주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의 희곡과 연출작들은 유럽 및 전 세계에서 공연되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가 바로 <술 취한 사람들>(Пьяные, The Drunks)이다. 그의 작품은 특히 삶, 영성, 진실을 탐구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으로 폴란드에서 활동하고 있다.


비리파예프의 작품 세계는 1990년대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 사회를 휩쓴 가치관의 혼란과 새로운 영적 탐구의 필요성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의 희곡은 전통적인 극의 서사 구조를 거부한다. 대신 <술 취한 사람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파편적인 에피소드들을 병치(몽타주)시키는 독특한 방식을 취한다. 이는 현대인의 파편화된 의식 상태와 비선형적인 삶의 경험을 반영한다. 또한 일상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언어를 구사하며, 언어 자체의 리듬, 소리, 음악적 요소를 중시한다. 그의 대사는 단순히 사건을 전달하거나 인물의 심리를 설명하는 기능에 머무르지 않고, 그 자체로 실험적인 무대 언어의 역할을 수행한다. 작품의 중심에는 진실, 사랑, 신, 존재의 의미, 구원과 같은 형이상학적이고 영적인 질문들이 놓여 있다. <술 취한 사람들>에서 그렇듯이 인물들은 술 취함, 질병, 운명적 사랑과 같은 극단적 상황을 통해 자신과 세계의 근본적인 진실에 도달하려 한다.


거리두기 미학과 몽환적 무대가 빚어낸 역설적 환상


2012년에 발표된 <술 취한 사람들>에는 술에 취한 14명의 인물이 등장하여 서로에게 진실된 감정과 사랑을 고백하고 삶과 죽음, 신에 대한 깊은 사색을 쏟아낸다. 술 취한 상태를, 진실이 드러나는 도취의 순간으로 치환하여 메시지를 전한다. 평소의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난 인물들의 고백을 통해 종교적 깨달음, 존재론적 불안 등 근원적인 문제들을 표출한다. 하지만 그 저변에는 가벼운 희극성이 깔려 있어 일명 철학적 코미디로 불리기도 한다.


무대 그리고 연출 미학


11월 22일 막바지 가을을 알리는 낙엽을 밟으며, 문래예술공장 2층에 자리한 박스씨어터에 들어섰다. 작은 규모의 객석에 비해 무대가 제법 깊다는 인상을 준다. 은은한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스모그 탓인지 아니면 조명의 역광 탓인지 무대가 전반적으로 흐릿하여, 불분명한 꿈처럼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무대 좌우에 검은 풍선과 의자들 등 다양한 물건들이 놓여 있고 무대 안쪽에 책상과 의자들 그리고 뒷벽 위로 커다란 스크린이 이층으로 설치되어 있다. 하수에 커다란 가로등 하나가 켜져 있어 눈길을 끈다. 전체적으로 정리된 무대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은 인상을 준다.


공연이 시작되면 위쪽 스크린에 1막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새겨진다. 그리고 1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설명한다. 위 스크린의 자막이 해설자의 역할을 한다면 아래 스크린에는 무대 상황에 따라 이미지가 제시된다. 장과 장을 명확히 구분하는 스크린의 역할은 소위 거리두기에 해당한다. 극에 몰입하려던 관객은 “암전”이라고 외치는 인물의 소리와 함께 자막으로 장이 바뀌는 장치로 인해, 몰입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되찾는다. 그리고 냉정하고 관찰하는 시선으로 무대를 주시한다. 이렇게 무대와 대면하는 관객은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대신 날카로운 시선으로 무대 그리고 자신을 판단하고 성찰하게 된다.


그런데 한편으론 술에 취해 쏟아내는 “똥” “토”와 같은 상스럽고 말들 그리고 “사랑” “신”과 같은 성스러운 말들의 혼용, 그리고 이따금 아름다운 화음으로 펼쳐지는 배우들의 노래는 낯설고 절묘한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관객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절제된 감정으로 빨려 들어간 환상의 세계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아이러니가 <술 취한 사람들>의 커다란 특징이다. 술에 취해야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는 취권처럼 말이다. 이렇듯 ‘비절제된 절제’의 무대는, 배우에게 평소에 불가능했던 비절제된 연기를 마음껏 펼쳐 보일 자유가 주어진 것처럼 보인다. 이를 실천하는 몇몇 연기자를 바라보는 즐거움이 상당하다.


자막과 암전으로 명확하게 막과 장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술 취한 사람들> 1막은 장마다 아무런 연관 없는 인물들이 등장하여 일련의 에피소드를 파편적으로 제시한다. 그런데 2막 1장에 이르면 가령 1막 1장에 등장했던 젊은 여자 마르타와 1막 3장에 등장했던 구스타프와 로라 부부가 만나 이야기가 전개된다. 1막에서 조각들로 제시된 서사가 2막에서 하나의 실로 꿰어지는 모양새다. 공연이 막을 내리면 비로소 완성된 퍼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각성 상태에서 완성되는 존재론적 퍼즐


공연 내내 인물들은 취한 상태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흔들거리면서도 그들은 사랑이니 신이니 죽음이니 하는 무거운 주제를 거리낌 없이 주절댄다. 하지만 보기에 따라 이들은 해방된 공간에 머무는 자유로운 자들이다.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들은 “기묘하고 초현실적이며 가볍게 떠도는, 꿈이자 도취의 상황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무대는 물론이고 인물들과 그들의 언어는 현실의 뛰어넘는 비이성의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분명하다. 1막 1장과 2막 전체의 배경은 어두운 밤의 길거리다. 또 모든 에피소드는 밤에 일어난다. 가로등 불이 강조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하루는 낮과 밤으로 이루어져 있다. 밝은 낮이 이성이라면 어두운 밤은 비이성의 세계, 즉 술의 세계다. 이렇게 밤의 사건들이 술의 사건들과 연결된다.


밤거리에서 모르는 사람들의 만남은 우연히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이들은 진지하게 사랑을 고백하고, 청혼하고, 신에 대해 토론한다. 언 듯 그것은 술기운 탓일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 관습이나 상식선을 넘어서는 그들의 행위나 토론은, 일상의 삶에서 우리를 짓누르는 규율과 법칙을 깨트리는 효과가 있다. 인물들은 디오니소스가 그랬던 것처럼 술에 기대어 환각(ecstasy) 혹은 무아경 상태의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 이들의 자유는 언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거리낌 없는 말, 논리에서 벗어난 언어, 대사의 반복은 한 편으로 웃음을 주면서 다른 한 편으로 충격을 준다.


도취는 구원인가


결국 이 연극에서 술은 단순한 음주가 아니다. 그것은 계시의 흐름이며, 사랑과 용기에 대한 은유다. 인물들은 취함을 통해 자신과 타인에 대한 절대적인 진실을 쏟아내고, 언어의 해체 속에서 원초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술 취한 사람들>은 비이성의 언어가 때로는 이성의 언어보다 더 순도 높은 연민과 이해에 가닿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흔들리는 발걸음은 어리석음의 흔적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자유를 향한 첫걸음일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 이 연극은 그런 역설적인 구원을 관객에게 건넨다. 어둠 속을 비틀거리며 말하는 이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지만, 그 목소리는 곧 우리 자신이 외면해 온 목소리이기도 하다. 도취의 언어가 우리에게 선명하게 다가오는 순간, 우리는 비리파예프가 열어 놓은 문을 통과하게 된다. 웃음과 당혹스러움 속에서 관객은 어느 순간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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