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인생, 그 시작은 텔레비전과의 결별이다

에세이

by 인산

나이가 들고 은퇴한 이들이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일은 텔레비전과 헤어지는 것이다. 언제부터 텔레비전이 우리 안방의 주인이 되었을까. 아마 텔레비전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당시 흑백 화면으로 전송되는 세상의 모습은 그 자체로 신비였다. 값비싼 물건이라 부잣집에만 있었기에, 프로레슬러 김일의 시합이 열리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모여들곤 했다.


그렇게 귀했던 텔레비전은 어느덧 거실의 가장 좋은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게 되었다. 요즘 24시간 방송되는 수백 개의 채널 속에서,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리모컨을 누른다. 딱히 볼 것이 없어도 일단 켜놓고, 잠들기 직전에야 겨우 끈다. 현대인에게 텔레비전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을 넘어, 어느덧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신(神)이자 신줏단지가 되어버렸다.


물론 주중의 피로를 풀기 위해 주말에 잠깐 즐기거나, 중요한 뉴스나 스포츠를 시청하는 것은 유익한 휴식이 된다. 하지만 텔레비전 없이는 못 살 것처럼 온종일 화면 앞에만 앉아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특히 사회적 책무를 마친 은퇴자가 텔레비전에만 매달리는 것은 건강한 노년을 가로막는 치명적인 신호다. 그 이유를 따져보자.


첫째, 텔레비전은 주체성을 앗아간다. 책은 읽다가 멈추거나 건너뛸 수 있지만, 텔레비전은 저쪽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도록 강요한다. 이런 수동적인 태도가 습관이 되면 일상에서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누군가 해주길 바라는 의존적인 성격으로 변하기 쉽다. 이는 결국 노년의 삶을 무기력하게 고착시킨다.


둘째, 수동적인 시청은 뇌 건강을 해친다. 텔레비전의 수동성은 뇌를 자극하기보다 멍하게 만들기 때문에 인지 능력을 떨어뜨리고 치매 발병률을 높인다. 현란한 영상에 넋을 놓고 있는 동안 뇌세포는 활동을 멈추고 퇴화의 길을 걷는다. 텔레비전은 뇌를 잠들게 하여 치매라는 불청객을 불러들이는 통로가 된다.


셋째, 텔레비전은 우리 몸의 움직임을 빼앗는다. 보통 텔레비전 앞에는 편안한 소파가 놓여 있다. 그곳에 앉아 채널만 돌리다 보면 소중한 하루가 허망하게 지나간다. 심지어 홈 쇼핑 호스트의 화술에 넘어가 쇼핑조차 소파에서 해결한다. 인간은 몸을 움직여야 한다. 움직임이 없는 삶은 쇠약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텔레비전을 멀리할수록 우리의 몸은 비로소 건강해진다.


넷째, 사회적 고립과 소통 단절을 초래한다. 화면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가족이나 이웃과 눈을 맞추고 대화할 시간은 줄어든다. 텔레비전은 가짜 친구다. 곁에 있는 사람의 온기를 느끼지 못하게 가로막아 노년의 외로움을 심화시키고 관계망을 위축시킨다. 진정한 행복은 리모컨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 온다.


다섯째, 수면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화면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는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를 방해한다. 잠들기 직전까지 텔레비전을 켜두는 습관은 뇌를 각성시켜 깊은 잠을 방해하고, 다음 날의 활력까지 앗아가는 악순환이 된다.


여섯째, 자극적인 뉴스나 프로그램은 세상에 대한 과도한 불안을 심어주고, 광고는 끊임없이 결핍을 속삭이며 물욕을 자극한다. 텔레비전 속에 갇혀 있으면 세상은 온통 위험한 곳 같고, 무언가를 계속 사야만 할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그렇다면 텔레비전을 없앤 자리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 산책, 독서, 식물 가꾸기, 악기 연주, 봉사활동 등 채울 것은 무궁무진하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진심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활동을 찾는 것이다. 리모컨을 내려놓는 바로 그 순간, 당신의 진짜 인생이 다시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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