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노 세갈(Tino Sehgal) : 경계를 해체하다

전시 리뷰

by 인산
KakaoTalk_20260406_091847943.jpg?type=w773 정원에서 바라본 리움 미술관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리움 미술관에서 티노 세갈 특별전(2026.3.3-6.28)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총 8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26년 4월 5일 토요일 만개한 벚꽃을 지나 리움 미술관을 찾았다.


리움 미술관(Leeum Museum of Art)


많은 미술관이 그렇듯, 리움미술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다. 특히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참여한 만큼 건물 자체의 예술성이 뚜렷하다. 이 미술관은 세 명의 건축 거장이 각기 다른 건물을 설계해 하나의 복합 단지를 이루고 있다. 고미술관 뮤지엄1은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설계했다. 테라코타 벽돌을 사용해 한국 전통 도자기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며, 기하학적인 형태와 묵직한 부피감이 인상적이다. 티노 세갈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현대미술관 뮤지엄2는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의 작품이다. 부식된 스테인리스 스틸과 유리를 활용해 현대적인 분위기를 강조했고, 땅속으로 파고든 공간과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전시 박스가 독특한 인상을 준다. 또 다른 한 축은 네덜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설계한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다. 블랙 콘크리트와 유리를 사용해 미래적인 이미지를 구현했으며, 미술관 전체의 동선을 연결하는 중심 역할을 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건축물들이 한 공간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연결된다. 리움 미술관은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장소를 넘어, 공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현대 건축 전시장처럼 느껴진다.



KakaoTalk_20260406_091847943_22.jpg?type=w773 리움 미술관 입구


작품1 :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2004)


미술관 입구에서부터 이미 퍼포머들을 만난다. 복장이 전시장 스태프인 것 같기도 하다. 서너 명의 퍼포머가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관람객과 눈을 마주치고 그들을 에워싸며 자유롭게 움직인다. 그들은 몸을 흔들며 “This is so contemporary, contemporary, contemporary!(이건 너무 현대적이야, 현대적이야, 현대적이야!)”를 반복한다. 왜 이 제목인지 알 것 같다. 일반 공간에서 아무 생각 없이 미술관으로 입장하던 관람객은 그들과의 예기치 않은 만남으로 한편으론 당황한다. 이 당황은 티노 세갈의 작품을 (감상할?) 참여할 준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군 이제부터 현대 예술의 한 경향을 만날 수 있겠군!”이라고 생각하며 약간 내리막길을 지나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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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2 : <(무제)>(2026)


이 작품은 신작이다. 로비에는 관람객과 또 다른 퍼포머들이 있다. 이 작품은 눈에 보이는 오브제가 전혀 없다. 대신 사람이 있다. 그리고 대화가 있다. 그들은 관람객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가령 “진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당신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인가요?” 같은 철학적이고 사적인 질문을 던진다. 조금은 갑작스러운 질문이다. 하지만 대답을 하면, 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관람객이 한 말에 대해 이야기가 이어지고, 또 다른 질문이 돌아온다. 그 순간 깨닫게 된다. 이 대화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라는 것을. 이 대화의 과정 전체가 바로 작품 <(무제)>다.


한편 퍼포머들은 이따금 바닥에 누워 몸을 흐느적거리기도 한다. 그 사이를 관람객들은 아무 일도 없는 듯 지나간다. 누군가는 대화를 나누고, 누군가는 무심히 스쳐 간다. 이곳에서는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다. 누가 관람객이고 누가 작품인지도 점점 흐려진다. 가방을 맡기고, 표를 확인하고, 잠시 앉아 쉬는 일상적인 행동들까지도 이 공간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작품의 일부가 된다. 어느 순간 관람객은 예술행위를 감상하고 있는 것인지, 참여하고 있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KakaoTalk_20260406_091847943_17.jpg?type=w773 푸른색의 비즈 커튼


<“무제”(시작)>(1994)


로비에서 퍼포머들을 만난 다음 세갈의 또 다른 작품을 만나기 위해서는 하나의 경계를 통과해야 한다. 그 경계는 문이 아니라 커튼으로 가로막혀 있다. 소위 반짝이는 비즈로 이루어진 커튼이 바로 쿠바 출신의 미국 현대미술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의 작품 <“무제”(시작)>이다. 그는 모든 작품에 ‘무제’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 작품의 부제인 ‘시작’은 말 그대로 어떤 경험의 출발점을 의미한다. 이 비즈 커튼은 미술관의 입구 혹은 전시장 사이의 통로에 설치되어 관람객을 맞이하는 일종의 설치 미술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관람객은 이 커튼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두 손으로 구슬을 헤치고 몸으로 밀어내며 그 사이를 통과해야 한다. 차갑고 묵직한 구슬이 손과 어깨에 닿는다. 서로 부딪히며 생겨나는 찰랑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남는다. 그 짧은 순간, 단순한 이동이 하나의 경험으로 바뀐다. 리움미술관에서 이 작품은 전시의 시작점이나 공간의 경계에 설치되어 있어,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문지방 역할을 한다. 관람객에게 새로운 경험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의미인 것이다. 이는 일종의 경계 허물기로 안과 밖,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도 모호하게 만든다. 손의 촉감과 찰랑거림이 오랫동안 잔상이 되어 남는다.


KakaoTalk_20260406_091847943_21.jpg?type=w773 로댕의 조각상 <칼레의 시민들>


<이 입장>(2023)


비즈 커튼을 지나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 <칼레의 시민들>이다. 유명하고 익숙한 조각이지만, 이곳에서는 별도의 설명이 없다. 처음엔 조금 의아했지만, 이 전시는 작품을 설명하기보다 경험하게 만드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공간에는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도 함께 놓여 있다. 이미 존재하던 조각들과 지금 이 순간 펼쳐지는 퍼포먼스가 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섞인다. 따라서 이 장면은 미술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어떤 공간에서, 어떤 작품과 함께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 가변성 자체가 티노 세갈 작업의 특징이다.


바로 이러한 공간에서 <이 입장>(2023)이 펼쳐진다. 넓은 공연장 안에 여러 인간이 등장한다. 무용수, 바이올린 연주자, 축구 선수, 그리고 사이클 선수가 그들이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움직인다. 누구는 춤추고, 누구는 연주하고, 또 누구는 공을 다루고 또 자전거를 탄다. 처음에는 각자 다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묘하게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장면은 정해진 공연이기보다, 그때그때의 흐름 속에서 만들어지는 즉흥적인 장면에 가깝다. 그래서 같은 장면을 다시는 볼 수 없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하나의 장면일 뿐이다. 삶이 그렇듯이 말이다.


KakaoTalk_20260406_091847943_18.jpg?type=w773 전시장 2층 공간

<키스>(2002)


2층으로 올라가자, <키스>라는 작품이 펼쳐지고 있다. 두 남녀가 서로를 끌어안은 채 천천히 움직인다. 로댕의 조각 작품 <키스>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Rodins-the-Kiss-statue.jpg 로댕의 <키스>

두 남녀 퍼포머는 몸이 엉키고, 다시 풀리고, 다시 이어진다. 때때로 자연스럽게 입을 맞추기도 한다. 그 모습은 마치 하나의 조각 같다. 다만 돌이나 청동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몸으로 만들어진 조각이다. 관람객은 주변에 놓인 의자에 앉기도 하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여러 각도에서 이 장면을 바라본다. 정해진 자리는 없다. 보는 방식도 각자 다르다. 퍼포머들 뒤로는 미술관이 소장한 조각품들이 놓여 있다.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 조각과 끊임없이 변하는 몸이 한 공간에 공존한다. 그 대비가 묘하여 오랜 여운으로 남는다. 이 작품은 키스라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관계를 보여준다. 둘이지만 하나처럼 보이고, 하나인 듯하다가 다시 둘로 나뉜다. 어쩌면 이들 행위는 어떤 경계를 지우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 고정된 것과 움직이는 것 사이의 경계 말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도 아니다. 서로 다른 상태를 유지한 채, 계속해서 이어지고 관계 맺는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다. 그리고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KakaoTalk_20260406_091847943_10.jpg?type=w773 한 조각상이 퍼포머를 응시하고 있다


<무언가 당신 코 앞에 나타나게 놔두는 대신 춤추는 브루스와 댄 그리고 다른 것들>(2000)


이층 다른 공간에는 한 퍼포머가 바닥에서 춤을 춘다. 제목만큼 길고 독특한 이 작품은 세갈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로, 현대 미술 거장들의 움직임을 샘플링해 하나로 엮은 몸으로 쓴 미술사다. 퍼포머는 바닥에 누워 몸을 굴리며 끊임없이 움직인다. 무작위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비디오 아트와 퍼포먼스의 선구자 브루스 나우먼(Bruce Nauman), 미니멀리즘 조각가 댄 그레이엄(Dan Graham), 영화감독, 시인, 소설가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Pier Paolo Pasolini) 등 20세기 예술계 거장들의 상징적 움직임이 담겨 있다. 즉, 퍼포머는 예술가들의 역사를 몸으로 재현하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퍼포머가 바닥에 낮게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보통 미술관에서 작품은 벽에 걸리거나 좌대 위에 있지만, 여기서는 관람객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살아 있는 에너지를 경험하게 된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한 남성 조각상이 벽에 기대어 있다. 움직이는 몸과 고정된 조각이 한 공간에서 묘하게 대조되며, 시간과 움직임, 역사와 현재가 한꺼번에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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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노 세갈의 예술 세계


그의 작품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까? 공연, 무용, 설치 미술, 장소 특정적 예술? 정확히 한 단어로 설명하기 어렵다. 미술계에서는 보통 라이브 아트(live art) 혹은 비물질적 설치(immaterial installation)라고 부른다. 이는 한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과의 상호작용, 관람객의 기억 속에 남는 경험 자체가 작품이 되는 것을 뜻한다. 세갈 자신은 자신의 작품을 ‘구성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s)’이라고 부른다. 하나의 상황을 설계하고 창작한다는 의미로, 그 형식은 공연과 무용, 조각이 겹친 라이브 퍼포먼스다. 또한, 기본 재료는 사람의 몸, 목소리, 움직임이다. 전시장 안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관람객과 직접 대화하는 퍼포머가 바로 작품 자체가 된다. 안무를 전공한 그의 배경은 퍼포머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무용이나 공연의 인상을 강하게 풍기도록 돕는다.


그는 미술관이라는 공간 안에 상황을 설치한다. 이러한 상황은 기록의 의미가 없다. 그런 까닭에 그는 사진과 영상 촬영은 물론, 팸플릿이나 계약서조차 남기지 않는다. 또한 그는 물질적 오브제를 제작하는 대신, 인간과 인간의 상호작용만으로 예술을 구현하는 비물질주의적 접근을 선택한다. 이렇듯 그에게 예술이란 상황 속에서 생성된다. 퍼포머의 움직임은 매 순간 새로워지고, 관람객이 달라지면 작품 역시 변한다. 정지하거나 고정된 것이 아닌,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에 의해 창조되는 순간의 예술, 이러한 상황 예술이 세갈이 추구하는 예술 세계다. 이는 고정된 회화나 조각과는 완전히 다른 미학이다. 이번 전시에서 촬영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 단 고정된 오브제는 촬영이 가능하다. 카메라로 촬영한다는 것은 결국 움직임을 고정시키는 행위이므로 이러한 발상 또한 그의 예술적 철학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런데 인간 그리고 그들이 사는 세상 역시 끊임없이 변한다는 점에서, 그의 예술적 흐름 또한 인간 중심적이다.

KakaoTalk_20260406_091847943_04.jpg?type=w773 고미술관의 로툰다


고미술관


티노 세갈 전시를 경험한 뒤 고미술관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 중앙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구조다. 4층에는 고려청자, 3층에는 조선의 분청사기와 백자, 2층에는 고서화, 1층에는 불교미술과 금속공예가 전시되어 있다. 아쉽게도 2층은 문이 닫혀 있었다. 4층에서 내려오는 중앙 계단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고미술관의 중심을 관통하는 거대한 원통형 공간, 즉 로툰다(Rotunda)다. 천창을 통해 자연광이 깊숙이 쏟아지고 화이트 톤의 나선형 계단이 그 빛을 감싸며 내려온다. 어둡고 정적인 전시실과 대비되어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신비롭고 성스러운 느낌이 전해진다. 건물은 위로 갈수록 넓어지는 역 원뿔형으로 설계되어 대지의 제약을 극복하면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국 전통 도자기의 색감은 고미술관이라는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벽면의 창문을 통해 전시장 안쪽을 보거나 반대편 공간을 조망할 수 있는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


전시장 내부는 어둡지만, 조명은 유물을 정교하게 비추고, 블랙톤의 바닥과 벽, 잘 정리된 상자 속 국보급 유물들이 정제된 느낌을 준다. 조금 전 세갈의 공연 전시와는 완전히 다른 정서다. 오늘은 예술 세계의 이곳과 저곳, 고정된 것과 움직이는 것, 과거와 현재를 한자리에서 경험한 것만 같다. 모든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입구의 퍼포머들이 익숙한 듯 아는 척을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들의 소리를 뒤로하고, 단아하게 꾸며진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KakaoTalk_20260406_091847943_01.jpg?type=w773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


<이 당신>(2006)


정원에서 펼쳐진 이 작품도 예사롭지 않다. 이 정원은 세계적인 작가 가브리엘 오로즈코(Gabriel Orozco)가 구상한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으로, 제목은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이다. 오로즈코의 작업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원이다. 그래서인지 정원 역시 수많은 원이 서로 겹치고 맞물리는 기하학적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보도블록과 화단은 복잡한 원형 패턴을 이루며, 작가가 평소 탐구해 온 우주의 질서나 세포 분열 같은 유기적 움직임을 형상화한다. 이 정원은 세 거장의 건축물이 만나는 접점에 위치하여 딱딱한 건축물 사이를 부드러운 곡선과 생명력으로 연결해 준다. 비즈 커튼처럼, 이 정원 역시 관람객이 직접 걸어 다닐 때 비로소 완성된다. 정해진 입구나 출구가 없고 원형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시점에 따라 정원의 풍경과 주변 건축물의 모습이 계속 변한다. 정원 안쪽에는 퍼포머 한 명이 조각처럼 가만히 서 있다. 관람객이 다가서자 눈을 맞추며 노래를 부른다. 겹친 원들의 잔잔한 물결 속으로 목소리가 퍼져 나가 공중으로 흩어진다. 이곳 자체가 목소리의 인위와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 관람객과 퍼포머, 건축과 자연이 서로 어우러지는 살아 있는 작품이 된다.

KakaoTalk_20260406_091847943_07.jpg?type=w773 고미술관의 계단에서 내려다본 모습. 이 자체가 예술품이다


리움에서 공간 자체가 예술품임을 경험하며, 문득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퍼포머든 관람객이든 이 공간 안에서는 모두 작품의 일부가 된다. 세갈의 예술은 이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즉시 사라지겠지만 그 사라짐은 개인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될 것이다. 오늘 이렇게 사라지는 예술, 즉 기억의 예술을 만난 셈이다.


세갈의 작품을 보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것은 경계의 해체다. 무용과 미술, 안과 밖, 움직이는 것과 고정된 것, 무대와 객석, 그 모든 경계가 부드럽게 허물어져 있다. 이 해체는 궁극적으로 통합을 지향한다. 오늘날 우리는 지나친 양분화와 분리로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세갈은 현대 예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은연중에 예술의 통합을 보여주고, 나아가 인종, 세대, 성별 등으로 나뉜 사회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세갈의 작품 가운데 <이 환희>(2020)는 4월 7일부터 5월 17일까지, <이 당신나나당신>(2023)은 5월 19일부터 6월 28일까지 각각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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