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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 시즌2

드라마

by 인산

<더 글로리>는 복수 드라마다. 복수 영화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협 영화다. 어렸을 때 부모가 죽임을 당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절세의 무공을 익히고 결국 부모의 원수를 죽이고 복수에 성공한다는 것이 무협 영화의 골자다. 또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도 있다. <올드 보이>의 처절한 복수와 인간의 복수심리는 칸 영화제에서 찬사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복수는 복수를 낳고, 그러다 최종에 이르러 화해와 용서로 끝맺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더 글로리>는 이러한 복수의 일반 구도에서 벗어난다. 자비란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주인공은 철저한 계획으로 완벽한 복수를 완수한다. 오로지 그것만이 삶의 목표인 것처럼... 관객은 용서 없는 복수에 통쾌한 희열마저 느낀다.

<더 글로리>의 복수는 고교 시절의 학교 폭력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한 주제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학폭 문제를 예민하게 건들고 통쾌한 복수를 한다는 점에서 시청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속 시원하게 해 주었다. 주인공인 피해자는 학창 시절 영혼의 밑바닥까지 상처를 입는 엄청난 고통을 겪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남아 끝까지 복수를 완수한다. 이는 권선징악의 차원을 넘어 ‘이에는 이’ 방식의 철저한 복수로, 시청자에게는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푸는 기회였을 것이다.


<더 글로리>는 입체적이다. 서사구조의 입체성은 <폭싹 속았수다>와 정확히 일치한다. 우선 줄거리 전개 기법에서 그렇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선형적 전개 대신, 이야기를 툭 던져 궁금하게 해 놓고 시간이 흐른 뒤 그 이야기와 관련된 과거의 사건을 삽입하여 내용을 전달하는 전개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단편적으로 전개된 드라마일 경우 장시간의 시청은 자칫 지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며, 또 시청자가 줄거리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집중력을 유지하게 하는 데 효과가 있다. 하나의 줄거리를 힘 있게 이끌어가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중첩적이고 입체적인 줄거리 제시는 드라마 전개에 힘을 불어넣는다. 가령, 할머니가 “얘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라는 말을 뜬금없이 툭 던지면 시청자 “무슨 일이 있었지?” 하는 의문과 호기심으로 드라마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다가 적절한 순간에 과거의 사건이 제시되면서 할머니와 문동은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방식이다.


또 하나 드라마가 입체적인 것은 복수가 하나의 초점에만 맞춰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주인공을 직접 가해했던 6명의 가해자에게 복수의 칼날이 향하고 있지만, 그와 더불어 당시 간접적으로 가담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가해자의 부모나 이를 묵인한 담임과 체육 교사 나아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복수도 펼쳐진다. 문동은의 동료 교사인 추선생 역시 복수의 대상이다. 그뿐이 아니다. 남편에게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리는 강현남의 남편에 대한 복수가 있고, 아버지를 죽인 살해범에 대한 주여정의 복수가 있다. 이들 복수는 다차원으로 복잡하게 펼쳐져 있긴 하나 공통으로 문동은의 치밀한 계획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하나로 수렴된다.



<더 글로리>의 이야기 전개는 일반 서사 구조를 벗어나지 않는다. 러시아 민담을 연구하여 이야기 구조를 밝힌 《민담 형태론》에서 저자 프로프(Propp)가 제시한 서사 구조는 주인공, 목표, 방해자, 조력자로 구성된다. 그에 따르면 이야기는 주인공이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조력자의 도움으로 방해자의 방해를 극복하고 목표를 달성한다는 틀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도 이러한 서사구조를 그대로 따른다. 즉, 문동은은 조력자의 도움과 방해자의 방해를 뚫고 완벽한 복수라는 목표를 완성한다. <더 글로리>의 복수 방법은 재미있다. 주인공이 직접 개입하는 것 같은데 실은 가해자들끼리 싸우게 만든다. 이 점에서 주인공의 계획이 얼마나 철두철미한가를 보여준다. 문동은은 인형 조종자처럼 인형들을 조종하고 실에 매달린 인형들은 그들끼리 싸운다. 하긴 가해자들 사이의 연대감은 허약하다. 그들 사이의 소위 우정이라는 것은 인간적인 관계가 아닌 물질과 권력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그것만 사라지면 이들의 연대감은 언제든지 허물어져 서로 물어뜯을 수 있는 인간형이다. 이 점은 간파한 문동은은 누군가를 목표물로 삼으면 그의 삶의 형태와 가족 관계를 조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신이 당한 것을 그대로 갚아주는 것은 일차원적 복수다. 그대로가 아닌 몇 배, 몇십 배로 갚아야 제대로 복수한 것이 된다. 박연진에 대한 복수를 보라. 주인공은 박연진의 신체에 직접 해를 가하는 것이 아닌 그녀가 소유한 삶의 의미와 가치들, 즉 함께 살아가는 가장 가까운 인물들과 철저한 단절시킴을 통해 비극의 정점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주인공이 설치해 놓은 복수의 덫에 걸린 박연진은 남편, 딸, 어머니 등과 차례로 단절된다. 박연진이 쌓은 모든 것들이 남김없이 와해될 때 비로소 복수는 종결된다.


학폭은 단순히 자기들끼리의 힘겨루기가 아니다. 그들 사이의 폭력은 빙산의 일각이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그들 뒤에는 거대한 사회의 힘이 강하게 작용한다. 가해자는 사회적으로 힘 있는 자이고 피해자는 힘없는 자다. 여기서 힘은 그들 자체의 힘보다도 뒷배경의 힘을 뜻한다. 뒷배경은 자본과 권력과 결탁한 모든 것들이다. 뒷배경은 재력이자 사회적 지위다. 이런 든든한 배경이 있는 가해자는 결코 주눅 들지 않고 가해 사실을 호도하고, 마치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한 것처럼 떠들어대고, 가해자 역시 피해자인 양 선전한다. 따지고 따지다 보면 가해자는 없어지고 피해자만 남는다. 놀음판에서 딴 사람은 없고 잃은 사람만 있는 것과 비슷하다. 자본과 권력은 공권력, 교육권과 결탁하여 있던 일도 없게 만들고 없던 일도 있게 만든다. 사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 자주 목격된다.


이 점에서 <더 글로리>의 가해자의 뒷배경 특히 부모를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그들 역시 일종의 가해자로서 복수의 대상이 된다. 가령, 박연진의 어머니 홍영애. 대형 교회 목사인 이사라의 부모 그리고 문동은 자신의 어머니 정미희가 그들이다. 한국인의 정서를 거스르며 어머니를 대상으로 복수를 설정한 것은 주인공의 끈질기고 처절한 복수를 더욱 부각한다. 이들 부모야말로 진정한 가해자인 셈이다. <더 글로리>가 보여준 부모, 교사, 경찰의 결탁은 학폭이 단순히 그들끼리의 놀이가 아니라 무겁고 엄중한 사회적 병리 현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주병원의 원장 아들이자 의사인 주여정은 흙수저가 아닌 금수저다. 그는 명백히 기득권자다. 그런데도 그는 피해자로서 복수를 꿈꾸고 주인공의 조력자가 된다. 주인공의 상처가 신체에 새겨져 있다면 주여정의 상처를 마음에 새겨져 있다. 물론 신체든 마음이든 그 상처의 깊이는 가늠할 수 없지만, 또 이들 상처가 삶을 피폐하게 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여하튼 육체적 상처와 정신적 상처로 드러난 두 사람의 조합은 결말 설정에서 기막힌 역할을 한다. 이들이 서로 조력자가 됨으로써 가진 것이 없는 자와 가진 자 사이의 투쟁이던 것이 선과 악의 싸움으로 바뀌는 당위성을 부여한다. 복수 드라마에서 다음의 질문은 필연적이다. 평생 꿈꾸었던 복수가 원했던 대로 이루어졌다면 이제 무엇이 남을까? 이 점에서 복수가 완결되었을 때 생겨나는 주인공의 허탈한 심리가 어떻게 극복될 것인가는 커다란 숙제다. <올드 보이>에서 복수에 성공한 이우진은 권총으로 자살한다. 그는 복수 끝이 허망하다는 것을 깨닫고 더는 살아가 의미와 가치를 찾지 못한다. <더 글로리>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모든 복수가 이루어졌을 때 문동은은 옥상의 난간에 선다. 더 이상 할 일이 없는데 살아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드라마는 주인공의 흔들리는 심리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대신 눈 내리는 옥상 난간에 서는 것으로 그녀의 마음을 보여준다. 그때 그녀를 불러 세우는 사람이 바로 주여정이다. 이것은 남녀의 사랑이 생명을 구한다는 구태의연한 매듭 방정식이 아니다. 주여정의 복수 설정은 드라마의 이야기 구조가 단순형이 아닌 입체형이라는 점을 다시금 강조한다. 주여정은 아버지를 죽인 악의 화신을 철저하게 응징하고자 한다. 아마도 그는 문동은을 돕는 과정에서 복수의 개념을 배웠을 수 있다. 주여정은 이제 복수 전문가가 된 문동은의 도움을 받아 복수를 준비한다. 드라마는 두 사람이 교도소로 당당히 들어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복수는 그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합세한 복수의 끝은 허망이 아니라 만족스러운 충족일 것이다. 복수의 끝이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점은 <더 글로리>의 매력이다.




드라마의 제목 <더 글로리>의 glory는 영광, 명예, 번영 등의 뜻이다. 작가는 제목에 대해 “폭력의 순간에는 인간의 존엄, 명예, 영광 같은 걸 잃게 된다. 사과를 받아내면서 비로소 원점이 되고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피해자들의 ‘원점이 되는 상태’를 응원한다는 점에서 작품 제목을 <더 글로리>로 정했다”라고 설명한다. 현실에서 피해자는 보상보다 가해자의 진실한 사과를 원한다. 작가는 “사과로 얻어지는 게 무엇일지 고민했는데, 얻는 게 아니라 되찾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폭력으로 잃어버린 글로리를 사과를 통해 회복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에서 사과나 용서, 화해는 없다. 철저한 복수 그것만이 용서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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