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생각하는 중입니다
가끔은 버스를 놓친 기분이 든다. 정류장까지 숨이 차도록 뛰어갔지만 문은 이미 닫혀 있었고, 차는 서서히 멀어졌으며,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음 거 타면 되지’라고 중얼거렸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방금 지나간 버스가 더 좋았을지도 몰라’ 하는 묘한 아쉬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살다 보면 이런 순간이 생각보다 많다. 시간표에 또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놓치면 다시는 오지 않는 버스 같은 기회들이. 그게 꼭 거창한 제안이나 인생을 바꾸는 선택이 아니더라도, 하필 날씨가 좋았던 날 갑자기 잡힌 산책 약속이라든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놓치고 나면 은근 오래 남는 순간들 말이다.
계절도 그렇다. 봄이 시작되면 ‘꽃이 피면 보러 가야지’ 하고, 여름이 되면 ‘올해는 해변 한 번은 가야지’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다짐에는 늘 날씨와 컨디션과 일정이 동시에 맞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가을 바람이 불고, 나뭇잎은 바닥에 흩날리며, 여름 사진첩은 텅 비어 있다. 계절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물론 내년에도 다시 오겠지만, 그건 똑같은 계절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나로 맞이하는 전혀 다른 시간이다.
날씨도 마찬가지다. 창밖 하늘이 유리컵 속 물처럼 투명하게 빛나고, 구름은 솜사탕처럼 흩어져 있는 날에도, 나는 오늘 해야 할 일을 이유로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 내일도 비슷하겠지 싶었는데, 다음 날은 하루 종일 비였다. 그날의 하늘은 그날만 있었고, 나는 그걸 놓쳤다. 우리는 자주 ‘다음에 하면 되지, 다음에도 있을거야’라고 생각하지만, 그 다음은 오지 않거나, 와도 전혀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기회란 그렇게 사라진다. 소란스럽게 멀어지는 게 아니라, 조용히 시야 밖으로 미끄러져 나간다.
돌이켜 보면 ‘그때 조금만 더 즐길 걸’ 싶은 순간들이 많다. 그것들은 특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평범했기 때문에 놓쳤다. 어쩌면 나는 그 평범함 속에서조차 괜히 겁을 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혹시 실망하게 될까 봐, 혹시 준비가 덜 됐을까 봐, 혹시 나만 어색할까 봐. 그렇게 머릿속에서만 수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리다 보면, 발은 점점 뒤로 물러나고, 기회는 조용히 멀어진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고 한다. 버스 문이 닫히기 전에 한 발 더 내딛고, 계절이 변하기 전에 한 번 더 걸으며, 하늘이 맑을 때는 이유 없이라도 밖에 나가려고 한다. 기회는 생각보다 평범하게 찾아온다. 특별한 날의 포장지 대신, 매일 같은 시간에 지나치는 버스처럼, 어느 계절의 한낮처럼, 이유 없이 맑은 날씨처럼. 우리는 그것을 흔하다고 착각하다가 놓친다. 그리고 가끔은, 내가 너무 겁을 내서 놓쳐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행인 건, 다음 번 버스가 꼭 똑같지는 않더라도, 타고 나면 또 다른 풍경이 보일 거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풍경이 내 마음을 조금 더 가볍게 해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서두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