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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멈추지만 순간은 흐른다

가만히 생각하는 중 입니다

by 찌니

사진을 찍는다는 건 결국 ‘시간 도둑질’ 같은 거다. 눈앞에 지나가는 찰나를 붙잡아 “너 오늘 여기 있었지?” 하고 증거를 남겨두는 일. 그런데 문제는, 그 증거가 언제나 완전하진 않다는 거다. 사진 속 웃음은 남아 있어도, 그 웃음을 짓게 만든 농담은 이미 날아가 버렸고, 그날의 공기나 냄새 같은 건 파일 용량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사진첩을 열면 묘하다. 당시엔 별 감흥 없었던 사진이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괜히 울컥한다.

반대로 그때는 ‘인생샷’이라며 호들갑 떨었던 사진이 지금 보면 그냥 어색한 포즈일 때도 있다. 사진은 변하지 않았는데, 사진을 보는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기록은 그대로인데 해석은 끊임없이 업데이트된다. 인생판 소프트웨어 패치랄까.

오늘 찍은 셀카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그냥 대충 찍은 사진이지만, 몇 년 뒤엔 “저때 피부 좋았네”라는 감탄사가 되고, 더 먼 훗날엔 “저 폰은 벌써 골동품이네” 같은 농담이 될지도 모른다. 결국 사진은 정지화면 같아 보여도, 그 안에서 흘러가는 건 사실 ‘나 자신’이다.

또 한 가지, 사진은 언제나 편집된 진실이다. 프레임 바깥에 쌓아둔 빨래는 보이지 않고, 미소 뒤에 감춘 피곤함도 담기지 않는다. 그러니 사진을 볼 때마다 묘하게 속기도 하고 위로도 받는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기억이라는 편집본 속에서 우리는 늘 내가 보고 싶은 장면만 붙잡고 산다.

결국 사진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순간은 정말 붙잡을 수 있는가? 기록은 진실일까, 아니면 단지 내가 남기고 싶었던 흔적일까? 어쩌면 사진을 본다는 건 ‘멈춘 시간’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이미 흘러가버린 나를 다시 마주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는 완벽한 구도에 집착하기보다는, 그냥 흔들려도 좋으니 그 순간을 더 깊게 살아내고 싶다. 사진은 멈추지만 순간은 흐른다. 오늘의 사진은 내일도 볼 수 있겠지만, 오늘의 나는 오늘만 찍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게 인생의 가장 큰 아이러니이자, 약간 웃픈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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