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생각하는 중 입니다
낯선 설렘은 언제나 긴장 속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사람 앞에서, 새로운 상황 속에서, 나는 몸을 조금 더 곧게 세운다. 손끝이 서늘해지고, 말투는 어딘가 높아진다. 익숙함이 사라지는 순간, 나는 마치 무대 위에 갑자기 불려 나온 배우처럼 서툴고 어색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긴장이 꼭 불편하기만 한 건 아니다. 그 순간을 ‘두려움’ 대신 ‘설렘’이라고 부르면, 심장은 여전히 쿵쾅대지만 마음은 조금 가벼워진다.
낯섦이란 언제나 두 얼굴을 가진 감정이다. 한쪽은 불안을, 다른 한쪽은 기대를 품고 있다. 같은 순간도 내가 어떻게 이름 붙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이 된다. 면접장 앞에서 손바닥에 땀이 맺힐 때, 그것을 “망할 것 같다”라 생각하면 긴장은 배가 되지만,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 있구나”라 바라보면 심장은 여전히 뛰면서도 묘한 용기가 생긴다.
사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자꾸 이런 낯선 설렘을 마주한다. 처음 맡은 업무 보고를 하던 날, 목소리는 떨렸지만 끝나고 나면 혼자서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 적. 새로운 사람과 첫 대화를 나눌 때, 어색해서 물컵만 만지작거리다가도 집에 돌아와서는 그 짧은 대화를 곱씹으며 은근히 웃게 되는 순간. 심지어 미용실에서 충동적으로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시도했다가, 거울 앞에서 “이건 설렘이냐 실패냐” 스스로 판정을 내리는 장면도 있다. 낯섦은 늘 이런 식으로, 불안과 웃음을 동시에 데리고 온다.
돌아보면 우리의 삶은 낯섦과 설렘이 교차하는 순간들로 조금씩 넓어져 왔다. 첫 등교의 낯섦은 두려움이었지만 곧 친구라는 설렘으로 바뀌었다. 첫 직장의 어색한 미소는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이라는 추억으로 남았다. 여행지의 낯선 길, 우연히 들어선 카페, 전혀 모르는 사람과 나눈 몇 마디 대화까지—그 안에는 늘 설렘의 가능성이 숨어 있었다.
낯섦이 없다면 삶은 매일 같은 반복일 것이다. 설렘이 없다면 우리는 쉽게 지쳐버릴 것이다. 그러니 낯선 설렘은 두려움이 아니라, 어쩌면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초대장일지 모른다. “조금 더 넓은 세계로 와 보라”는 신호. 그 초대에 응할 때마다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동시에 조금 더 유연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낯선 긴장을 설렘이라 부른다. 그 이름 하나가 나를 어제보다 용기 있게, 내일보다 한 발 앞서 살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낯선 설렘은 늘 순간을 흔들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야 비로소 삶은 반짝인다. 그리고 설렘은 멈추지 않는다. 낯섦이 있는 한, 우리는 언제나 새로워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