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사용법
20대 초중반의 나는 늘 무언가를 참고 있는 상태였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고, 괜찮다고 말하는 데 익숙했지만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스스로도 잘 몰랐다. 내가 왜 괜찮지 않은지, 어디가 힘든지, 무엇이 나를 이렇게까지 눌러오는지조차. 그 시기의 나는 단지 버텨야만 했다.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건 사치였고, 내 문제를 들춰보는 일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두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살아내기로 했다.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고, 말없이 버티는 것으로 하루를 끝내는 나날들. 그게 그 시절의 ‘정상’이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선택이라는 걸 해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고, 괜히 대답을 하려 하면 금방 목이 메이곤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하고 싶은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책임감과 기대와, 알게 모르게 뒤집어쓴 역할들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뒤로 미룬 채 살아야 했다. 내 문제보다 더 급한 일이 늘 있었고, 내 마음보다 더 중요해 보이는 상황들이 늘 먼저였다. 그렇게 나는 점점 나를 보지 않는 사람이 되어갔다. 내 마음을 무시하는 데 익숙해졌고, 감정을 억누르는 데 능숙해졌다. 때로는 너무 잘 억눌러서 나조차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모를 때도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나를 몰랐다. 아니, 모르는 척해야 했고, 모른다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할 만큼 무뎌져 있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멍하니 있다가 밤이 되어서야 내가 오늘 뭘 느끼며 살았는지 되짚어보려 했지만, 남는 건 공허함뿐이었다. 감정을 붙잡고 있을 힘이 없었고, 돌보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냥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게 그 시절의 나를 버티게 했던 방식이었다. 애써 둔해지는 것, 모른 척하는 것, 그냥 되는 대로 흐르게 두는 것. 나를 돌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고, 나는 어느 순간 더 이상 그렇게는 못 살겠다는 감정과 마주하게 되었다. 정확히 어떤 계기였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냥 어느 날, 더는 못하겠다는 마음이 너무 선명하게 올라왔다. 그리고 그 마음은 억누를 수 없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낯설었고, 어색했고, 부끄러웠다. 내 안에 어떤 감정이 있는지,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게 싫고 어떤 게 나를 지치게 하는지, 그런 것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일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낯설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오래 묵혀둔 질문들이 하나둘 올라왔다. “나는 이 삶이 좋은가?”, “이 방향은 내가 원하던 건가?”, “정말로 나는 이게 나답다고 느끼는가?”
이런 질문들은 단번에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나는 여전히 나를 잘 몰랐고, 나의 감정을 낯설게 느꼈고, 내가 내 안에 있었던 시간보다 바깥에서 살아온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도 뭔가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제는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고,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태도가 생겼고, 무엇보다도 ‘나도 모르게 나를 억누르던 기준’들을 조금씩 의심할 수 있게 되었다. 남들이 옳다고 말하던 것들이 정말 나에게도 옳은가, 모두가 선호하는 삶이 정말 나에게도 어울리는가, 그런 질문들 앞에서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솔직해지고 싶어졌다.
그러다 보니 내 안에서 아주 작고 조용한 기준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건 나에게 맞지 않아. 이건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 아니야. 이건 무리야. 이건 너무 과해. 이런 문장들이 머릿속에 맴돌았고, 그 문장들은 내 행동을 조금씩 바꿨다. 무리하지 않기로 했고, 억지로 맞추지 않기로 했고, 괜찮은 척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걸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내 안의 기준’을 따라야 했다. 누가 보기에 괜찮아 보여도 내가 불편하면 그건 괜찮지 않은 거고, 누가 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 그렇게 나에게 조금씩 물어보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넌 지금 이게 좋아?”, “지금 이 결정은 너한테 진짜 필요한 거야?”
처음엔 확신이 없었다. 여전히 나는 불안했고, 나를 믿기엔 내가 너무 오랫동안 나를 외면해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더는 예전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따라가다 보니, 아주 작지만 내 안에 생겨나는 기준들이 생명력처럼 느껴졌다. 조용하고 미약하지만, 진짜 내 것 같은 기준들. 세상이 뭐라고 하든, 남들이 어떻게 살든, 나는 나의 마음을 중심으로 하루를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 완벽하지 않아도 좋으니, 이제는 내가 내 삶의 기준이 되어보고 싶다는 마음.
지금 나는 여전히 배워가는 중이다. 누군가의 기준이 아닌, 나의 감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더 이상 누구를 따라가지 않고, 뒤처질까 봐 서두르지 않고, 그냥 내 안에서 ‘충분하다’고 느껴지는 만큼만 움직이려고 한다. 그게 쉽진 않다. 비교하는 마음은 여전히 있고, 흔들릴 때도 많다. 하지만 예전처럼 오래 흔들리진 않는다.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확신이 생기니까, 어떤 결과 앞에서도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다. 그건 아주 작은 변화지만, 내가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변화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내 안의 기준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그 기준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더라도, 조금씩 자라고 있고, 조금씩 나를 지키고 있으며, 무엇보다 나다운 삶을 향하게 해준다는 것을. 나는 그걸 믿기로 했다. 나를 외면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나를 들여다보고, 스스로에게 가장 잘 맞는 길을 찾아가기로. 그 길의 속도와 방향은 오직 내 안의 기준이 말해줄 것이기에, 나는 오늘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