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사용법
나는 아직도 확신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어떤 선택을 앞두고는 여전히 망설이고, 누군가의 말에 휘청이며, 때로는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러면 예전의 내가 불쑥 떠오른다. 조용히 눈치를 보던 나, 무엇이 옳은지 몰라서가 아니라 누가 불편해할까 봐, 어긋나 보일까 봐 스스로를 조심스럽게 감추던 나. 그 시절엔 확신보다는 분위기가 더 중요했고, 명확한 기준보다는 '이쯤에서 멈춰야겠지' 하는 눈치가 나를 움직였다. 어떤 말이 오간 것도 아닌데, 나는 늘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느꼈고, 그 알고 있는 것 때문에 내 감정을 접어야 했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을 이해하기보다는 감추는 법을 먼저 배웠고, 나를 믿기보다는 나를 관리하는 데 익숙해졌다. 조심스럽게 살아온 탓에 큰 실수는 없었지만, 동시에 큰 확신도 없었다. 나는 나에게조차 미심쩍은 사람이었다. 늘 한 발 뒤에 서 있었고, 중요한 순간마다 ‘내가 결정해도 될까’라는 생각부터 먼저 떠올렸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나보다 더 잘 아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오래된 믿음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결국, 그 누구도 나를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건, 다름 아닌 내가 나에게 신뢰를 건네지 못하고 있다는 명확한 현실이었다.
그 이후 나는 조금씩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믿을 수 있어서 믿기로 한 게 아니라, 믿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처음부터 선명한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내 안에 있는 작고 조용한 마음을 무시하지 않으려 애썼다. “이건 싫어”라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지금은 쉬고 싶다”는 마음을 변명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소소한 감정들을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했고, 그것이 차곡차곡 쌓이자 점점 내가 하는 선택들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건 그 선택이 맞고 틀리느냐가 아니라, 내가 내 마음에 귀를 기울였느냐는 것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서 나는 이전보다 단단해진 나를 느끼게 되었다. 실수해도 무너지지 않고, 흔들려도 돌아올 자리를 안다는 것.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하루가 무너지지 않고, 비교의 늪에 빠지더라도 금세 빠져나올 줄 안다는 것. 그건 나를 철저히 통제해서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연습을 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나를 믿는다는 건 결국 어떤 완벽함에 이르는 게 아니라, 불안정한 나를 인정하면서도 끝까지 함께하려는 태도였다. 그 태도가 내 삶을 조금씩 바꾸어놓고 있었다.
요즘의 나는, 여전히 자주 흔들리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나를 놓아버리진 않는다. 감정이 출렁이면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고, 생각이 복잡할 때면 억지로 끌어가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낸다. 삶의 방식이 조금씩 달라졌다. 예전처럼 누구의 확신에 기대지 않아도 되고, 타인의 확신 없는 표정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삶을 대하는 중심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인정이 방향이었지만, 지금은 내 마음이 고요한지를 먼저 묻는다. 그것이 나에게 맞는 삶인지, 그 감정이 내 안에서 진짜로 울리는 것인지를.
나는 지금도 나를 믿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 믿음은 커다란 결심이 아니라, 날마다 작게 쌓이는 선택이다. 타인의 기대보다 내 감정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 조용한 직감을 따라보는 것, 불확실해도 내 편을 먼저 들어주는 것. 그런 선택들이 하루하루 모여서 나의 중심을 조금씩 세워주고 있다. 때로는 불안하지만, 그 불안 속에서도 나를 밀어내지 않고 붙들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나는 예전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고, 무엇보다 나를 포기하지 않는 법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게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아서. 흔들려도 돌아올 수 있으니까. 이해받지 않아도 스스로를 이해해주기로 했으니까. 나는 내가 나를 끝까지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매일 조금씩 확인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그렇게, 나를 믿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