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소식 없는 너머를 바라보며

마음의 사용법

by 찌니


요즘은 마음이 자꾸 느려진다. 딱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 하루가 버겁고, 감정이 가라앉는다. 해야 할 일은 그대로 쌓여 있고, 사람들도 나름 잘 지내고 있는데, 나는 그 사이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기운이 없는 날이 반복되고, 스스로도 이유를 정확히 짚을 수 없어서 더 답답하다. 누가 속을 뒤흔든 것도 아니고, 무슨 큰 실망을 한 것도 아닌데, 그저 마음이 아래로 가라앉는다.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대답이나 연락, 혹은 말이 되지 않아도 괜찮을 희미한 가능성 같은 것 그런데 아무 소식이 없다. 아무 신호도 없다. 그게 하루하루 마음의 온도를 조금씩 식혀간다.

내가 건넨 마음이 너무 조용히 사라지는 느낌이 들면, 애초에 너무 많이 기대한 게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기다리지 말자고 다짐하고도 마음이 자꾸 그쪽으로 기운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괜히 부끄럽고, 또 그만큼 마음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이 억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게 마음은 천천히 힘을 잃고, 몸도 같이 지친다. 말이 줄고, 생각이 많아지고, 쉽게 웃지 못하게 된다. 나는 분명히 일상을 잘 살아내고 있는데, 마음은 그 안에 잘 녹아들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그런데 이런 느낌, 낯설지 않다. 처음도 아니다. 내 인생에는 늘 이런 시기가 있었다. 마음을 조용히 걸어두고,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 그 끝을 바라보며, 괜찮은 척 버티는 시간들. 아무도 몰랐지만, 나는 꽤 많은 순간을 그렇게 견뎠다. 누군가를 조용히 좋아하고, 어떤 기회를 오래 붙들고, 어떤 말이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끝이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닫히면 좋을 텐데, 나는 이상하게 마음을 열어둔 채로 그 자리에 머문다. 뭔가 대단한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 마음이 너무 허무하게 흘러가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 하나쯤. 어쩌면 그래서 더 지치는지도 모른다. 말도 못 하고, 끝내지도 못 한 채, 그저 조용히 감정의 중심에 머무는 일. 그게 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란 걸, 살아보니 알겠다.

예전에는 이런 나를 비난했다. 왜 또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하냐고. 조금만 무뎌지면 안 되냐고.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려고 한다. 이런 기다림도 나라는 사람의 방식이고, 나는 어쩌면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로 충분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에게나 쉽게 기대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그래도 마음을 걸어볼 만큼 누군가를 믿고 있다는 걸, 그런 감정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나라는 걸.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분명히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리고 동시에, 어떤 마음은 기다림을 통해 조금 더 단단해진다. 처음엔 흔들리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는 흔들림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붙잡는 힘도 생긴다. 그게 아주 밝은 에너지는 아닐지 몰라도, 나를 무너뜨리지 않는 무게가 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 사이 나는 내 감정과 조금 더 가까워지고, 내 마음을 다루는 방식도 조금은 나아졌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 이 기다림도 멀리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 지금은 그냥 믿어보기로 했다.

나는 여전히 기다리는 중이다. 아마도 당분간은 계속 그럴 것 같다. 하지만 예전처럼 조급하게 마음을 다그치지는 않는다. 언젠가 올지 모를 무언가를 바라보면서도, 그 사이의 나를 잃지 않도록 조심한다. 아주 천천히, 아주 작게, 나를 돌보면서 하루를 쌓아간다. 어떤 기대는 사라지고, 어떤 감정은 희미해지겠지만, 그런 시간들도 결국은 나를 만들어갈 것이다. 기다리는 나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한 나도, 결국은 나니까. 그것만은 놓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그냥 이 정도면 된다.

마음이 너무 무너지지 않고, 나 자신에게 조금 덜 실망하고, 오늘 하루를 다 쓰고 난 뒤에 아주 조용히 ‘잘 버텼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날들이 있다. 나는 지금, 그런 하루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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