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사용법
딱히 뭘 한 것도 없는데 하루가 끝나면 괜히 피곤하고, 생각은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만 간다.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고민들도 그냥 전부 한꺼번에 밀려들어와서 그 안에서 계속 맴도는 느낌이다. 뭘 먼저 정리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생각을 멈추려 해도 자꾸 또 다른 생각이 끼어든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앞으로 뭘 해야 하지. 하나도 뚜렷하지 않은 질문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오른다.
하루가 끝날 무렵이면 어김없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오늘 하루를 제대로 보낸 게 맞는지, 괜히 시간을 낭비한 건 아닌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명확하게 잘못한 건 없는데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무도 나를 다그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에게 계속 조용히 실망하는 기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하루를 흘려보내다가, 자기 전이 되어서야 이런 감정들이 몰려온다.
가끔은 그냥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아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알림도, 메시지도, 뉴스도, 전부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 같다. 다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건 하나도 내 안에 남지 않는 느낌.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라도 멍하게 있는 시간을 만들려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벽을 바라보거나 천장을 보는 시간.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리 같다.
가끔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막상 말을 꺼내려 하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설명하다 보면 오히려 더 지쳐버릴 것 같아 다시 삼켜버린다. 그래서 더 많은 말들이 머릿속에 쌓인다. 해야 할 말, 하지 못한 말, 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까지 한꺼번에. 그렇게 머릿속은 더 시끄러워진다.
사실은 조용히 쉬고 싶은데 머릿속은 쉴 틈을 안 준다.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는 요즘, 어쩌면 나는 단순히 지친 게 아니라 머릿속이 너무 혼잡한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은 그냥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은 판단하려 하지 말자. 이 복잡함을 억지로 정리하려 들기보다, 일단은 이렇게 시끄러운 나도 그대로 두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렇게 두고 나면 아주 잠깐이지만 숨통이 트인다. 해결은 되지 않았고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하지만, ‘이런 상태여도 괜찮다’는 마음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꼭 지금 뭔가를 바꾸지 않아도 괜찮고, 당장 답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고,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걸 아주 조금씩은 이해하게 된다. 완벽하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도, 그 하루를 받아들이는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 오늘은 충분히 잘해낸 것 같기도 하다.
하고 싶은 건 많다. 이루고 싶은 일도 있고, 해보고 싶은 것들도 줄줄이 떠오른다. 마음은 분명히 살아 있고, 생각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정작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머릿속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걸 해볼까, 저걸 해볼까’ 하는 시나리오가 돌아가는데, 막상 실제로 뭘 하려 하면 손이 멈춘다. 왜 그런지, 정확히 모르겠다.
어쩌면 확신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이걸 해도 괜찮을까? 괜히 시작했다가 금방 지치는 건 아닐까? 또 중간에 포기하게 되면 스스로를 더 실망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불안들이 조용히 발목을 붙든다. 그래서 매번 시작 직전에서만 맴돌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를 넘긴다.
그게 쌓이면 답답함도 커진다. ‘나 이렇게 생각만 하다 끝나는 거 아냐?’ ‘다른 사람들은 벌써 시작했는데, 나는 언제까지 망설이고만 있을 건데?’ 누군가 나에게 뭐라도 하라고 재촉하는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나 자신에게만은 관대하지 못하다. 무언가를 향해 한 걸음이라도 내딛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머릿속이 이렇게 바쁘고, 마음은 이렇게 간절한데도, 나는 아직도 주저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나는 진짜 뭘 원하는 걸까’ 하는 질문까지 다시 되돌아온다. 원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정말 원하는 게 맞는지도 헷갈린다. 이걸 진심으로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냥 해야만 할 것 같아서 고민하는 건지. 생각이 길어질수록 확신은 더 멀어진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안다. 결국은 행동하는 사람이 이긴다는 걸. 아주 작은 시작이라도 해야만 그다음이 있다는 걸.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요즘은 그걸 스스로에게 자주 상기시킨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확신 없이 시작해도 된다고, 하다가 다시 멈추어도 된다고.
지금의 나는 불안과 욕심과 조바심 사이에서 하루를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이렇게라도 계속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만으로 조금은 괜찮아지고 싶다. 완벽하게 알진 못해도, 지금 이 상태로 나를 밀어내고 싶지는 않다. 그런 나를 지켜보는 마음이 지금의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