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사람들
새벽 다섯 시, 도시가 아직 잠든 시간. 불 꺼진 창문들 사이로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퍼지고, 찬 공기엔 전날 밤의 흔적이 아직 묻어 있다. 낡은 빗자루 소리가 천천히 골목을 지나간다. 형광 조끼 위로 스치는 바람, 묵직한 수레가 바닥을 긁는 소리, 잔잔하게 이어지는 발걸음. 누군가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이른 리듬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 거리엔 전날의 피로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지워내는 손길이 있다. 사람들은 그 길 위를 아무 일 없던 듯 지나치지만, 그 고요함은 언제나 저 먼 어둠 속 어딘가에서부터 준비되어 온다.
낙엽은 보도블록 사이에 틈 없이 끼어 있고, 바람에 흩어진 비닐봉투는 철제 울타리에 엉켜 있다. 눅눅하게 젖은 종이컵과 구겨진 영수증들이 전날의 무심함을 그대로 말해준다. 그것들을 집어 올리고, 휘어진 빗자루로 쓸고, 봉투 속에 차곡차곡 담아내는 손. 무릎을 굽혔다 펴는 동작은 느리고 조심스럽지만, 그 안엔 분명한 방향이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지만, 결코 대충 다루지 않는다. 누가 보지 않아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 질서는 스스로의 방식으로 차근차근 만들어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리엔 빛이 조금씩 깃든다. 이른 출근길의 사람들, 문을 여는 가게, 오가는 차량들. 도시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 순간, 이미 수레엔 가득 찬 쓰레기봉투가 실려 있고, 낡은 장갑은 먼지에 얼룩져 있다. 사람들은 바닥을 보지 않고 걷는다. 혹은 너무 익숙해서, 이제는 굳이 눈여겨보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같은 자리에 놓인 청결과 정돈의 풍경은 어느 날도 스스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사람들보다 먼저 하루를 걷고, 사람들보다 더 낮은 곳에서 도시에 이름 없는 선을 그어가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이른 아침의 고요함만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비 온 다음날, 물에 젖은 거리는 더럽고 무거웠다. 하수구 옆에 고인 낙엽 더미, 찢어진 봉투에서 쏟아진 음식물 쓰레기, 흙물에 흠뻑 젖은 종이 조각들. 그 위로 아무렇지 않게 쪼그려 앉아 손으로 하나씩 주워 담고, 미끄러운 바닥을 걸레로 닦고, 젖은 유리병을 헝겊에 감싸 넣는 몸짓은 더디지만 단정했다. 찬 공기 속에서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치고 다시 허리를 굽히는 모습엔 어떤 말보다 선명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노동은 때로 너무나 큰 울림을 남긴다. 바닥 가까이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그것을 감당하는 손길은 늘 조용하다.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그 존재는 뒷편으로 물러난다. 사람들이 걷는 길, 사람들이 쓰는 공간,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오직 흔적 없는 바닥뿐이다.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없애는 일, 어지러움을 정돈하는 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시를 하루처럼 다시 세우는 일. 그 위를 아무렇지 않게 걷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아무 말 없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수레. 이름은 없지만, 그 시간은 분명히 존재한다.
도시는 자주 말한다. 빠르게, 시끄럽게, 복잡하게. 그러나 그 도시의 맨 아래, 가장 낮은 곳에선 묵묵한 손 하나가 있다. 그 손이 하루를 들어 올리고, 우리 모두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러니 누군가를 보지 못한 채 지나쳤다고 해도, 그 바닥 위에 서 있는 한, 이미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름 없이 존재하는 사람들 속에서, 도시는 매일 조용히 정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