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사람들
새벽 다섯 시.
도시는 아직 잠들어 있고, 불 켜진 창문보다 꺼진 창문이 훨씬 많은 시간.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젖어 있는 도로를 따라, 버스 한 대가 조용히 달린다. 붉은 미등을 남기며 천천히 움직이는 그 길 위에, 한 사람이 앉아 있다. 아무도 그를 불러주지 않지만, 그는 매일 같은 시각, 같은 노선으로 이 도시의 하루를 가장 먼저 열어주는 사람이다.
그는 버스기사님이다. 나는 그의 이름을 모른다. 아니, 아마 버스를 타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를 “기사님” 혹은 “버스 아저씨”라 부를 뿐, 진짜 이름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많다. 등굣길에 졸린 눈으로 오른 학생들, 공장으로 향하는 이른 출근자들, 병원으로 가는 누군가,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노인. 그는 그 모든 사람의 하루를 조용히 실어 나른다.
차고지를 나서기 전, 그는 매일 버스의 바퀴를 손으로 두드리고, 엔진 소리를 한 번 더 확인한다. 똑같은 순서, 똑같은 동작. 하지만 그는 그 과정을 결코 대충 넘기지 않는다. 누가 보지 않아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도,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루를 안전하게, 조용하게 움직이는 방법을 안다.
버스는 사람을 태우고 또 내리기를 반복한다. 목적지가 정해진 이동이지만, 그 안에는 무수히 다른 삶들이 오간다. 어떤 이는 창가에 앉아 하루의 계획을 정리하고, 또 어떤 이는 고개를 숙인 채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기사님은 그 모든 사람을 거스르지 않는다.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고, 다만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운전으로 그들의 짧은 여정을 지켜줄 뿐이다. 신호에 정확히 멈추고, 급정거 없이 속도를 조절하며, 노선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정류장에 선다. 그 모든 것들이 그에겐 습관이자 책임이고, 태도다.
어느 날,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버스에 오르기 전, 기사님은 걸레를 들고 앞문 계단을 몇 번이나 닦았다. 물이 고여 미끄러질까 염려되는 표정이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움직였고, 그 모습은 낡은 유니폼 위로 젖은 물방울보다도 더 깊이 각인되었다. 그 누구도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건네지 않았지만,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뭉클해졌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걷는 길 뒤에는, 이렇게 누군가의 조용한 손길이 있었다.
버스기사님의 하루는 길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몇 번의 왕복을 거치며 같은 길을 수차례 달린다. 누군가는 지루하겠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말했다.
“매일 같은 길이지만, 타는 사람은 늘 달라요. 그래서 똑같은 날은 없어요.”
그 말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바뀌지 않는 길 위에서도, 그는 매일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그런 존재들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건 아닐까. 누구의 이름도, 누구의 얼굴도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들이 있어 하루가 제 시간에 시작되고, 무사히 마무리된다는 사실. 삶은 거창한 영웅담보다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사람들 덕분에 유지되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그리고 똑같은 시간, 똑같은 번호의 버스가 멈춰 선다. 익숙한 손짓으로 문이 열리고, 익숙한 유니폼과 익숙한 눈빛이 나를 맞는다. 나는 안다. 이 버스를 모는 사람의 이름은 여전히 모르지만, 그는 단순히 운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도시의 하루를 가장 먼저 열고 가장 늦게 닫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오늘도, 그 긴 길 위에서 하루를 조용히 달려내고 있다. 이름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