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사람들
경비실 창문은 작다. 사람 한 명의 상반신 정도가 겨우 들어갈 만한, 바깥으로는 약간 튀어나온 듯한 작은 사각형. 그 너머로 아파트 현관 앞 풍경이 천천히 지나간다. 누군가는 출근을 하고, 누군가는 퇴근을 하며, 누군가는 배달 상자를 들고 들어오고, 또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그 앞을 휙 지나간다. 그리고 그 창 안쪽,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의 시간 대부분을 한 사람이 묵묵히 채우고 있다.
그는 경비 아저씨다. 나는 그의 이름을 모른다. 아니, 아파트 주민 대부분이 그를 어떻게 부르는지도 안다. “아저씨요.” 혹은 “경비실에 말씀드리면 되지.” 그의 존재는 사람들의 언어에서 익명처럼 취급되지만, 실은 누구보다 일상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다.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는 그 짧은 순간에도, 이사 오는 사람의 짐이 복도를 채우는 그 바쁜 시간에도, 그는 늘 그 자리에 있다. 말은 많지 않지만, 단 한 번도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다녀오세요.” “오늘 날 춥죠?” “어휴, 고생 많으셨어요.” 그 짧은 말들이 묘하게 마음을 놓이게 만든다. 누군가가 나의 하루를 알아주고 있다는 느낌이 꼭, 말 한 마디에 실려오는 것이다.
경비실은 좁다.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야 할 것 같은 낮은 천장, 오래된 책상 하나와 낡은 수첩, 접이식 의자, 전기난로, 커피믹스 몇 개가 놓여 있는 공간. 여름엔 푹푹 찌고, 겨울엔 냉기가 발끝부터 올라온다. 그런데도 그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그 안에서 보낸다. 나는 가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그 창 안을 들여다보게 된다.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수첩에 무언가를 적거나, TV 소리를 따라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주 느린 속도로 종이컵의 물을 마시는 모습. 묘하게 고요하고 단단한 장면들이다. 그 안에서 흐르는 시간은 바깥보다 조금 더 느리고, 조금 더 무겁고, 조금 더 깊게 흐르고 있는 듯했다.
경비라는 일은 누가 보기에 화려한 직업은 아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가볍게 대하거나, 없는 사람처럼 지나치기도 한다. 때로는 민원을 감당해야 하고, 갑작스런 언성에 눌려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그는 낮은 목소리를 잃지 않는다. 무례해지지 않고, 그러면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법을 안다. 그는 자신의 작은 공간을 작은 질서로 채워나가는 사람이다. 출입 차량 체크, 택배 수령 목록, 쓰레기 배출 시간, 공사 스케줄, 수상한 외부인의 출입 기록. 그 모든 것을 작은 수첩 하나에 손글씨로 정리해나가는 사람. 말이 없을 뿐, 그는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매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다.
어느 날, 비가 많이 왔던 날이었다. 현관 앞이 물기로 미끄러웠고, 아침마다 아이들이 우산을 끌고 정신없이 뛰어들어오는 모습이 유난히 위험해 보이던 날. 그날 아침, 그는 조용히 경비실을 나와 마른 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었다. 누구의 요청도, 지시도 없이. 누가 고맙다고 하지도 않았지만, 그는 묵묵히 물기를 닦고, 미끄럼 주의 표지판을 꺼내어 세워두었다. 누군가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그 자리가 자기 자리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의 태도였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뭉클해졌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 덕분에,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하루를 살아가는 걸까. 누군가의 눈에는 사소한 움직임처럼 보이는 일들이, 실은 누군가의 무던한 돌봄과 조용한 책임감 위에 이루어진다는 걸. 어쩌면 삶은 거대한 결정들보다, 그런 ‘사소한 성실함’ 위에 세워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한 번은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은 적이 있다. “여기 오래 계셨어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됐죠. 이 시간, 익숙해져버렸네요. 여기 앉아 있으면… 세상하고 잘 연결된 기분이에요.” 그 말이 한동안 마음에 오래 남았다. 사람들과 얽히지 않아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지 않아도, 누군가의 하루를 조용히 곁에서 지켜보는 일이 누군가에겐 세상과 가장 단단히 연결된 방식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나는 그제야 알았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있다. 작은 창 안에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책상에 놓인 수첩을 들여다보며, 때로는 눈을 감고 세상의 소음을 잠시 접어둔 얼굴로.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그가 단순히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는 이 아파트라는 작은 사회의 리듬을 조용히 붙잡고 있는 사람이다. 이름은 없지만, 누구보다 분명한 존재로.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을지 몰라도, 그처럼 그 자리를 오래, 조용히, 따뜻하게 지켜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는 오늘도 경비실 앞을 지난다.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말없이, 그러나 분명히 하루를 지키는 사람. 이름은 알지 못해도, 안다는 확신이 드는 사람. 우리의 하루가 특별할 것 없는 날처럼 흘러가도록, 그 배경이 되어주는 사람. 그는 오늘도 세상과 연결된 얼굴로, 그 작은 창 안에서 조용히, 아주 조용히,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