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하루, 식물 가게 앞의 여자

이름 없는 사람들

by 찌니


그 여자는 매일 오전 10시쯤 가게 셔터를 반쯤만 열었다. 하루 종일 활짝 열기엔 볕이 너무 강하다면서, 딱 식물들에게 좋은 만큼만 문을 열어놓는다고 했다. 문을 연다기보다 햇빛을 조절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그녀는 식물을 사람 다루듯 했다. 아니, 사람보다 더 정성스럽고 유연하며 묘한 애정을 담아 대했다. 가게 문턱은 낮았지만, 그녀의 손길은 조심스러웠고 태도는 단단했다.

가게 앞을 지나치다 보면 하루도 같은 풍경이 없다. 어제는 입구 오른쪽에 있던 고무나무가 오늘은 왼쪽에 있고, 뒤편에 숨어 있던 몬스테라는 어느새 앞줄로 나와 햇빛을 받고 있다. 그녀는 매일 아침 식물들의 ‘기분’을 본다며 자리 배치를 새로 짠다. “얘는 오늘 왠지 앞에 있고 싶어 하더라고요.”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에 나는 자꾸 웃고 만다.

가게 이름은 따로 없다. 간판도, 현수막도 없다. 사람들은 그냥 “저기 초록 가게”, “다육이 많은 데”, “그 친절한 아줌마 있는 가게”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더 잘 어울린다. 이름 없이도 기억되는 공간, 이름 없어도 매일 오고 싶은 곳. 어떤 이름보다 자연스럽고, 어떤 간판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 방식이다.

그녀에게는 특이한 습관이 있다. 누가 식물을 사러 오면 꼭 “이름 지으셨어요?”라고 묻는다. 처음엔 당황스러워 “식물한테요?” 하고 되물었는데, 그녀는 진지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름 붙여야 오래 살아요. 사람도, 식물도 이름 있어야 잘 자라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처음 산 산세베리아에 ‘상세’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나는 친구들보다 식물과 더 자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화분을 팔지만 마음은 잘 팔지 않는다. 어느 날 어떤 손님이 “이거요, 세트로 다 주세요.” 하니까, “그렇게 확 가져가시면 안 돼요. 애들이 놀라요.” 하며 고개를 저었다. 식물도 준비될 시간이 필요하단다. 그 말에 손님은 머쓱하게 웃었고, 다음 날 다시 와서 조심스럽게 화분 하나를 품에 안아갔다. 그녀는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생명을 ‘보내는 사람’ 같았다.

가게 안에는 늘 라디오가 켜져 있다. 볼륨은 작지만,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이 길가에 머물던 사람을 한 번 더 머무르게 만든다. 사람들은 식물을 사지 않아도 이곳을 찾는다. 그냥 냄새 맡으러, 분위기 보러, 혹은 아무 말 없이 초록색을 바라보러. 그리고 그녀는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커피 한 잔 없어도 편안한 이 공간은, 마치 작은 쉼표처럼 골목에 박혀 있다.

어느 날, 내가 지친 얼굴로 들어섰을 때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식물도 며칠씩 안 크는 날 있어요.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날. 그게 병든 게 아니에요. 그냥 쉬는 거예요.”
그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될 줄은 몰랐다. 나는 그날 이후 내 무기력을 ‘휴식’이라는 말로 바꿔 불렀다. 이유 없는 무거움에도 이름을 붙이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좀 살아났다. 그녀는 식물에게만 이름을 붙여주라고 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여자의 이름을 아직 모른다. 그녀도 내 이름을 부른 적 없다. 하지만 우리는 몇 번의 웃음과, 몇 번의 “얘가 오늘 좀 말을 안 듣네요” 같은 짧은 인사로 서로를 알아본다. 이름이 없는 관계지만, 이름보다 오래 가는 관계다.

그 여자는 식물을 잘 키운다. 그리고 사람도 그렇게 키우는 것 같다. 물 많이 주지 말고, 해는 너무 세지 않게, 바람은 잘 통하게, 말은 많이 하지 않아도 괜찮게. 그녀가 돌보는 건 식물만이 아니다. 그 앞을 지나치는 사람들, 그 안에 멈춰 서는 마음들, 그리고 때로는 나 같은 사람.

식물은 빨리 크지 않는다. 그렇지만 꾸준히 자란다. 그 여자의 하루도 그렇다. 빨리 달리지 않아도, 조용히, 다정하게, 매일 초록을 더해가고 있다. 매일 조금씩 자라는 것을 믿는 사람, 하루의 변화보다 존재 자체를 돌보는 사람. 그녀는 이름 없이 그렇게, 아주 좋은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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