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하루, 편의점의 밤을 지키는 사람

이름 없는 사람들

by 찌니


편의점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하루가 끝나는 시각에, 누군가의 하루는 막 시작된다. 그 경계의 시간, 새벽 1시. 거리는 조용하고, 바람은 습기 어린 소음을 데리고 다닌다. 그리고 나는 이 시간, 늘 같은 자리에 선다. 편의점 계산대 뒤, 작은 의자 하나에 몸을 기대고 하루를 견디는 자리에.

나는 말이 없는 편이다. 이 시간대에 말을 걸어오는 손님도 거의 없다. 모두 조용히 들어와 필요한 걸 집고, 말없이 바코드를 내민다. “봉투 필요하세요?”라는 말이 유일한 대화일 때가 많고, 그마저도 손짓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이곳은 ‘말 없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침묵은 단절이 아니다. 밤의 편의점은 오히려 가장 솔직한 감정들이 지나가는 곳이다.

술에 취한 채 울다시피 들어오는 사람, 아무 말 없이 삼각김밥 하나만 사서 나가는 사람, 누군가와의 다툼 끝에 헤드폰을 꽉 눌러쓰고 들어와 콜라 하나를 사가는 사람. 그들의 표정, 걸음걸이, 선택하는 물건 하나하나가 모두 말이 된다. 나는 그 말을 듣는다. 계산대 건너편에서 말없이 들으며,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 감정을 추궁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 사람이 그날 어떤 마음으로 이 공간을 통과하는지, 조용히 바라볼 뿐이다.

편의점 알바는 별거 없어 보이지만, 이 자리엔 하루의 끝에서 쏟아지는 진심들이 잠시 들렀다 가는 쉼터 같은 역할이 있다. 누군가는 커피를 사고, 누군가는 종이컵 라면을 고른다. 어떤 날은 같은 사람이 같은 시간에 똑같은 담배를 사고, 또 어떤 날은 그 사람이 사라지고 다른 얼굴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사소한 하루를, 그 사소함대로 받아들이는 사람.

어떤 날은 이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반복되는 업무, 익숙한 행동, 끝이 정해진 시간표. 한밤중에 수십 번 진열대를 정리하고, 폐기 목록을 작성하고, 뜨거운 김밥과 찬 캔음료를 교차로 만지는 일상이 무심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이 자리에 앉아 있을 때 가장 내 삶이 ‘존재한다’는 기분을 느낀다. 누군가의 하루를 지켜보며, 또 내 하루를 무사히 통과하며, 나는 비로소 내가 이 밤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일, 아무도 이름을 묻지 않는 시간.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스스로를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그건 작지만 분명한 자존감이다. 언젠가 이 자리를 떠날 날이 오더라도, 나는 이 시간을 기억할 것이다. 누군가가 울고, 누군가는 견디며, 또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내던 그 밤들을.

밤이 깊어질수록 조용해지지만, 그 조용함 속엔 어떤 안도감이 있다. 세상이 잠든 사이에도 내가 깨어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가 되리란 생각. 그래서 이따금, 마지막 손님이 나간 후 텅 빈 매장 안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중얼거린다. “괜찮아, 오늘도 잘 버텼어.”
그건 위로이자 다짐이다. 말할 곳 없는 마음을 다독이는 나만의 방식이다.나는 이름도, 얼굴도 기억되지 않을 이 자리에서 오늘도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이 익숙하고 무색한 풍경 안에도 수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걸 기억하는 사람이다. 작은 공간, 조용한 시간, 말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루를 지키는 사람.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밤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사람.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는 어느 시기의 인생에서 이런 작고 조용한 자리를 지켜본 적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빛나지 않아도, 이름 불리지 않아도, 분명히 ‘살아냈던’ 시간. 그 시간 속에 나는 지금도 앉아 있다. 그리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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