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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김성신/ 복령茯苓*

복령

by 김성신 시인

복령茯苓*


김성신


결코 밑을 드러내지 않겠습니다


허공을 가로지른 말을 걸었다

제발, 그만 자고 일어나요

침묵에서 피어난 샛바람

당신의 다리를 꼬집고 머리를 흔들며 노랑턱멧새가 한참을 울다 갔다


얼굴 없는 손

발 없는 족적

비탈 속에 흩어진 독백

산 꾼은 갈 데 간 곳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무성해진 이명耳鳴에 천명을 거슬렸다고 했다


물렁해진 속살, 인박힌 대화를 탐칭봉으로 찌르며 그림자를 수습한 날

다리는 후들거리고

그늘도 소음이어서

만지면 밀어내고 엮이고 부글거리는 목소리가 점진적으로 늘어났다


몸부림에서 굵어진 매일매일은 얼마나 우아하게 부재를 견딜 수 있는가

종횡무진 풍우에 시달린 일들이 천천히 스며든다

스며든다는 것은 어쩌면 죽음이 유예되는 일, 간격을 벌리며 쓴 숱한 편지는 깊숙이 덩이로 연루된다


말을 다시 나누려고 들어간 곳이니까 어둠은 부축하면 안 된다

부드러운 듯 끈끈하게 물리듯

골방에 편안해진 그늘을 들이듯

그런데 찌르다와 견디다의 차이는 뭐지


다음 생이 있다면 가져가고 싶은 기억 하나 골라볼래요

한 뼘씩 옮겨 앉아 저물수록 낮아지는 땅

뿌리로 밤을 품는 혀


편안하게 당신을 보내겠다는 근사한 결심으로 깨진 소나무 화분을 선물로 샀다.


*머리를 맑게 하고 혈압, 당뇨에 특효


ㅡ2024년 시와사람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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