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화목
김성신
달팽이가 집을 이고 젖은 그늘을 순례하는 동안
골목의 끝은 늘 막혀있어
잣나무가 꺾인 자리에 눈이 박혔다
안과 바깥이 펼쳐놓은 그림자를 따라 뿌리는
어둠을 그러쥐거나 앞발 버텨보는 습성
어디쯤인가 지금, 계단 없이 오르내린 흔적들을 당긴다
카인이 다시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일어나지 않은 일을 만들 때
울음은 나이테를 따라 입 벌리는 동굴
당신의 고립은 눈자위가 부석부석하다
누군가 당신의 목을 의자로 앉았다
출구 없는 무덤은 차라리 아늑함
잃어버린 채 잠든 것들
목청 늘리며
골과 골을 견뎌온 바람이 두 손을 모은다
울음이 보도에 출렁인다
어름사니 발끝처럼 앞코를 들고
나 잠깐만 죽을게
어둡고 고요한 숨결이 거죽으로 엉켜
되돌아오는 모든 것들이 단전에 포개진다
어제와 오늘을 순식간에 관통하는 바람은
두려움과 길이 무릎이 돼
물음을 산란한 초록으로 도착한다
ㅡ《문장 웹진 콤마》(2024,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