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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신/ 성게

by 김성신 시인

성게


김성신




파도가 울수록 가시를 세웠다


그렇게 살았다, 그래야만 살 수 있었다



칼끝이 내 속을 깊숙이 찔렀을 때


나의 바다도 도려지고 있었다


몸을 움츠리고 돌아누운 밤이면


집을 잃은 소라게들이 절룩거렸고,



포말을 검은 가시로 채운 나는


결가부좌 한 단단한 산호처럼


인과 연을 뾰족하게 세우기 시작했다



물속에 가라앉던 날들을 생각한다


모래와 비바람으로 젖은 입을 틀어막고


헛된 것이라 믿었던 것들이


그 무엇도 헛되지 않음을 비로소 알았을 때


가슴부터 발바닥까지 질펀한 갯내가 뿜어졌다



노란 알들이 오래전 당신의 얼굴 같다


그것은 비릿하고 또한 담백하다


뼈 없이 금간 여름날들이 천천히 오므라질 때


비로소, 번민임을 알겠다



견딜 수 있느냐, 는 선문답에


입속에 박힌 혀를 내밀며


나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면 해풍을 타고 온 붓다가


우니~ 우니~ 하고 불어온다


―계간 《다층》(2023,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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