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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신/ 각인

by 김성신 시인

각인*


김성신



꿈은 목이 가늘어 부러지기 쉽죠


나의 정체는 시작이 끝

잠시 하늘을 올려다볼게요

구름은 탄식

구름은 한 줌의 흙

반쯤 열린 눈으로 박새가 드나들어요


가늘고 야윈 다리를 휘감아 오르는 환삼덩굴

땀으로 범벅된 손금 위를 흐르는 골짜기

나무 위의 까마귀가 떼 지어 떨어지고

그녀와의 대화는 허공을 움켜쥔 진술들로 무력하죠


스커트가 너무 짧구나

ㅡ가슴이 다 컸어요

너를 살핀다고 나쁠 건 없잖니

ㅡ나에게 당장 오늘은 지금뿐인걸요

그래

ㅡ그래, 라는 말은 맥이 뛰질 않아 의절할 때도 되셨잖아요


고독을 잇몸으로 둔 미각은 입구와 출구가 같아

온통 신맛 돌고 흰 나비가 날아들죠


당신의 숲은 무성하게 퍼진 저 구름이 아니었을까

기억은 꿈속이라 반짝하다 깨고

뒤채고

손을 빨고,


나는 뱀의 허물처럼 바삭해지는 당신의 몸 어디를 틀어쥘까요

사라진 수족이 꼬리가 되어 가슴 치다 보면


무덤 파듯

흐느적거리던 어깨를 붙잡고

끈적한 체액 속에서

나는 비로소 짐승으로 다시 태어나죠


* 동물의 출생 후 처음 시야에 들어온 어미나 다른 움직이는 존재에 지속적인 애착을 보이는 현상.


ㅡ시집『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 (포지션,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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