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보다 빨리 달릴 순 없다
김성신
사라지는 것들이 구석구석 붙어있다
흔들리는 그림자를 바다라고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복도
그곳에 들어서면 생각이 길고 멀어진다
늘어선 슬픔이 빼곡히 들어찬 방들
흰색 페인트의 농담(濃淡)을 적막으로 덧칠한다
배웅한 사람과 마중 나올 사람은 다르지 않다
드문 일이지만 트럭에 숨어든 이민자처럼
오늘도 죽음이 죽음을 살려내지 못했다
손가락 안쪽에 그믐달 같은 티눈이 들어앉기 시작했다
겨울이 도착한다
유리창, 침대가 바늘 틈에 꽂힌 채 손이 묶여있다
코로 이어진 식사 호스는 지하로 연결된다
복도는 조용하다
화살표는 얼마나 많은 의심이 뻗어 있나
오지 않을 날이 이미 와버린 것처럼
나의 물음표는 안과 밖의 모서리
흔들리는 물음이 사방에 널려있다
눈물은 실패하지 않아요
병이 병을 어루만진다
복도에 버려져 까치발을 들고 있는 울음을 본다
병 속에 병이 같은 두께의 체온을 드러내도록
그 누구도 당신의 고통보다 빨리 달릴 순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바람이기도 했던 길,
약 없이도 수평으로 누워있는 당신
긴 바다가 출구 없는 둥근 시간이 된 채
천천히 유영하며 말을 걸어오는 난간이 흔들린다
끝이 만져지는 길
ㅡ 김성신 시집 『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펴낸 곳: 포지션,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