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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신/ 등대의 자세

by 김성신 시인

등대의 자세

김성신



단지, 멀리 바라다볼 뿐입니다

마중 가듯

돌아 나갔던 발자국 소리

어깨 너머의 불빛을 보고

다시금 고갤 돌아다봅니다


우루과이 콜로니아, 알래스카 코디악 섬은

안녕하겠지요? 영영, 출렁이겠지요?

고개를 들어 서치라이트를 켭니다

가까운 곳에서 먼 곳이 아니라

당신이 가고자 하는 그쪽으로 말입니다


한 손엔 풀피리를 들고

다른 한 손엔 팔레트를 들고

잠 못 드는 큰 파랑을 자장자장 재우고

칠흑의 바다 위에 달맞이꽃을 스케치합니다


더 이상 빛은 어둠을 밝힐 수 없습니다

어둠은 더욱 깊은 어둠 속에서 환해집니다

보고 싶나요, 정말로 보고 싶은 사람을요

수십 년, 등대질로 오십견에 걸린 나는

생각해 보니 단 한 번도 누구를 비춘 적이 없네요


파도를 손목에 묶고서

휜 다리로 절벽만 치며 살았군요

내가 불빛이 아니라 불빛만 좇은 거지요


섬이 된 당신의 허리를 뉘어놓고

파도소릴 옆구리에 끼고

천칭자리 마침맞게

시소를 탑니다


죽은 날을 세운 빛의 살갗

어두워지니 비로소, 길이 열리네요

깊고 환하게, 아슴아슴 손을 흔들며



ㅡ계간 《시하늘》(2023,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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