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의 기분
김성신
파란색 커튼이 사면을 에워싸고
의사와 간호사의 목소리가 급히 새어 나올 때
병실에 도착한 내 귀에 얼굴을 붙이고
아버지가 귓속말을 했다
-저 사람, 방금 죽었어
유월 장맛비가 창문을 내리긋고
자판기에서 빼온 커피잔이 출렁거렸다
흰 천을 덮은 병상이 나가고
가족 병문안이 일상처럼 이루어지는 동안
죽음에 관한 소문들 앞에서
칸칸이 잘라 나눠 먹는 수박의 푸른 줄이
링거 줄처럼 엉켜있었다
어느 땐 이생의 지문인 양
검은 씨를 뱉는다
젖은 그늘의 말들을 미음처럼 마시고
손바닥을 펴서 낮잠 자던,
유리병 속의 몇 줄기 고구마 순
궁금한 듯 고개를 침상으로 틀며
연한 초록 잎을 내밀 때
흰 베개와 시트가 아무 일 없듯 다시 깔리며
병실의 기분은 새로 완성되고 있었다
ㅡ시집『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 (포지션,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