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신/ 에어캡

by 김성신 시인

에어


김성신


꿈이 도형으로 떠다녀요


그려 볼까요, 그림으로 날아올라볼까요

얼굴을 떼어내 마루에 액자처럼 걸어요

처음 거울을 봤을 때처럼 낯설군요


거울과 얼굴이 분연히 일어나 소리치는 골목

말을 버린 눈이 제 몸에 마르는 눈물을 보아요

숨죽였던,

흰 대문 밀고 들어서면

여전히 나팔꽃들이 담을 타고 오를까요


지나가던 소나기가 다시 장마 길을 내고

팥배나무가 긴 팔로 공중을 들어 올리면

섧게 울어보던 감촉은 되살아날 수 있을까요


어둠의 호각 소리, 낯선 것과 낯익은 것들을 호명하면

숨길 게 있다는 건 드러날 게 있다는 것

우리는 매일 바닥을 통해 올라오는 습한 것들에 익숙하죠

난간 위에 걸터앉은 촘촘하게 짜인 어둠과 빛에 걸린 입술

각각 다른 무늬의 구름이 조금씩 서로를 삼키기도 하죠


의심은 죽음을 몰라 거울은 뒤꿈치를 들고

숲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들을 무시로 던지며

담담한 나의 입술만 되비쳤죠

꿈자리가 뒤숭숭해진 당신의 얼굴은 그림자의 덫


안녕,

나는 이곳에서 비로소 자유로워

빵 한 조각을 다시 뜯으며 성벽을 넘죠


잘 부스러지기 쉬운 살을 목에 두르고

언짢은 생각을 차곡차곡 짓누르면

어둡고 외진 모퉁이가 부드럽게 꽃봉오리로 피어나죠


하나의 방을 터뜨리자 겨울이 왔고

또 하나의 방을 터뜨리자 상처의 진물이 흘렀지요


떠다니는 목소리, 흘러 다니는 뒷그림자


밖은 오래 캄캄하고

그 안은 도무지 따듯해


태어날 걱정은 안 할래요, 다시는


ㅡ웹진 『시인광장』 (2022,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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