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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종달새 Oct 18. 2023

미희 이야기 (3)

첫 째 수빈이가 태어날 때쯤, 미희는 남자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전과 17범, 남자의 과거는 화려했다. 

미희가 서울에 있는 대학도 다녔고 그러니, 돈이라도 있을 줄 알고 접근했다는 것. 

남자는 술만 먹으면 미희에게 돈을 가져오라고 했다. 

닥치는 대로 물건을 던지고 미희를 때렸다. 

맞은 곳을 맞고 또 맞아서 숨도 못 쉴 만큼 아프다. 

남자는 매일 때리고 미희에게 몹쓸 짓을 한다. 



미희 위에서 헐떡거리고 있는 이 남자, 죽이고 싶지만 무섭다. 

미희는 질끈 눈을 감았다. 

원치 않은 뱃속의 아이가 또 생겼다. 자기만큼 뱃속의 아이들도 저주받은 인생이란 것을 미희는 알고 있다. 

온몸에 멍이 든 채로 셋째를 낳은 날, 미희는 어느 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친정 엄마에게 다녀온 뒤부터 더 심하게 미희에게 폭력을 일삼았다.



"죽어라, 이 년아. 왜 너 같은 년이 나한테 와서 이렇게 나를 고생시켜? 돈이나 있을 줄 알았는데. 너네 엄마는 절대 너한테 돈 안 준대. 내가 지랄 발광을 해도 꿈쩍도 안 해. 노친네가 보통이 아냐. 널 낳은 너네 엄마도 너를 버렸어. 버러지 만도 못한 년." 




미희는 그동안 남자를 피해서 몇 차례 도망치긴 했었다. 

하지만, 얼마 안 돼서 미희는 잡혀 왔다. 그렇게 잡혀 온 날은 기절할 때까지 맞는다. 

남자 아니 짐승만도 못한 그 새끼는 네 살 난 자기 아들 수빈이도 때린다. 

이대로 가다간 미희뿐만이 아니라 수빈이도 죽을 것 같다. 미희는 수빈이만은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젖도 안 뗀 둘째, 세 째에게는 미안했다.  하지만, 미희는 수빈이 빼고는 아이들에게 아무 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맞으면서 그 짓 거리 한 그 짐승 새끼 씨앗들. 너희들도 불쌍하다.......' 


네 살 난 수빈이는 자기 아빠한테 늘 욕을 듣고 맞아서 눈치를 본다. 말수도 없다. 또래 아이들보다 많이 작다. 얼마 전, 병원에 갔더니 수빈이가 우울증 증상이 있는 것 같으니 검사를 해 보라고 했다.    

 

 “엄마, 우리 어디 가는 거야? 우빈이랑 유빈이도 가? 엄마!”     


 “조용히 해. 아빠 깨잖아. 수빈아, 잘 들어. 엄마가 지금은 돈이 없어서 동생들 다 데리고 나올 수 없어. 동생들도 너무 어리고. 우선 너랑 엄마만 나가자. 엄마가 돈 벌어서 최대한 빨리 동생들 데려 올 거야. 얼른 나가야 해. 지금 도망치지 못하면 너랑 나랑 죽어.”      


 겨울이 오는 11월, 새벽에 미희는 수빈이 손을 잡고 집을 나왔다. 급하게 나오느라 수빈이는 양말도 신지 못했다. 맨 발에 홑겹 잠바를 입은 아이와 사정없이 달렸다. 사는 것이 지옥인데, 지옥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미희는 나오는 눈물을 참으면서 버스에 올랐다. 두툼한 옷을 입고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자 미희는 그제야 그놈한테서 도망쳤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미희는 며칠 전, 미리 전화해 놓은 가정폭력 피해자 센터로 향했다. 센터 상담사 선생님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수빈이 몸에 멍은 매일 이런 일을 하는 그들에게도 놀라움을 주었다. 


"어쩜, 짐승만도 못한 새끼, 애한테까지...." 


그래, 그 새끼는 짐승만도 못한 새끼였다. 그곳에 두고 나온 어린아이들이 불쌍했지만 미희는 살고 싶었다. 


"엄마, 여기 장난감도 있다. 나 이거 갖고 놀아도 돼? 여기 너무 좋다. 여기가 우리 집이면 좋겠다."


"응, 수빈아. 네 것 아니니까 잘 갖고 놀아야 해. 우리 여기서 계속 살 수는 없어. 대신 여기 선생님들이 아주 친절하시니까 여기 있는 동안 잘 지내보자." 


수빈이는 집을 나온 이후, 처음으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미희는 수빈이와 그동안 못 잤던 긴 잠을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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