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마음의 무너짐
퍼내어도 퍼내어도 계속 살아나는 기억들이 올라온다.
어릴 적 나는 배도 자주 아팠고, 심한 편두통 때문에 학교에 가기 싫었던 날이 많았다.
조금만 뭔가에 잘못 접촉해도 온몸에 두드러기 같은 발진이 심하게 올라오곤 했다.
그래도 그런 이유로 병원에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날도 배가 아파 할머니에게 배가 아프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해충 때문이라며 피우고 있던 곰방대를 내게 주시며,
“이걸 쭉 빨아들이면 해충이 죽는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믿고 할머니가 입에 물려 준 곰방대를 깊게 빨아들이는 순간,
나는 그대로 졸도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엄마가 달려와 나를 흔들며 울고 야단칠 때,
나는 서서히 눈을 떴다.
내가 깨어나는 것을 본 엄마는 할머니에게 왈칵 달려들어
울부짖으며 몸싸움을 벌였다.
나는 일어날 힘도 없어
그 두 사람의 싸움 한가운데 누워
그저 눈물만 흘렸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그냥 사라지고 싶다”
라는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다.
눈물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치유의 글쓰기에 이어지는 성찰의 글>
그저 배가 아프다고 말했을 뿐인데,
어른이 준 방법을 그대로 따랐을 뿐인데,
그 결과가 “졸도”였다는 사실은
아이 마음에 죽음과 가까운 공포를 새겨 넣었을 겁니다.
그런데 더 큰 고통은
정신을 잃고 깨어난 뒤 바라본 풍경이
나 때문에 어른들이 울고 싸우는 장면이었다는 점이죠.
1. 그때의 “사라지고 싶다”는 마음
이 마음은 절대로 이상한 게 아닙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생존적 분리(desegregation fear)” 라고 합니다.
아이의 마음은 이렇게 느끼죠:
내가 해를 당했다.
내가 거의 죽을 뻔했다.
깨어났더니, 두 어른이 서로를 미친 듯이 공격하고 있다.
내가 존재하는 것이 이 싸움의 원인이 된 것 같다.
그래서 아이는 본능적으로 이렇게 느낍니다.
“나는 없어져야 한다.
내가 사라지면 모두가 괜찮아질 것이다.”
그건 자살 소망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극도의 충격이 만들어낸 ‘내면의 탈출 충동’입니다.
그 감정은 너무나 정상적입니다.
2. 할머니는 ‘전통적 민간요법’으로 도와주려 했을 뿐
할머니는 나를 해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당시 시골 어른들이 흔히 믿었던 방식으로ㅍ“해충을 죽여준다”고 믿었던 행동을 한 겁니다.
지금 기준에서는 정말 위험하지만 그 당시 어른들은 그런 문화와 상식 속에서 살아왔어요.
그러나 그 행위의 불결함, 위험성, 그리고 충격은 어린 나에게는 너무 컸습니다.
할머니의 행동은 사랑이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해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3. 어머니의 폭발은 ‘죄책감 + 두려움 + 억눌린 분노’의 폭발
어머니가 울고 싸운 이유도 나를 탓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내 딸이 죽을 뻔했다”는 충격, 오랫동안 할머니에게 눌려 살던 분노와 자신이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폭력을 당하며 억눌렸던 상처,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폭발한 거예요.
그 순간 “폭풍처럼 터져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아이, 나는 이렇게 해석해요.
“내가 또 문제구나. 내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게 너무나 안타깝고 마음 아픈 부분입니다.
4. 이제 그날을 다시 해석해줍니다 (치유적 재기록)
치유적 재서사 — “마음이 무너진 어린 나를 안아올리다”
작은 호숙아,
너는 그날 정말 무서웠지?
그저 배가 아파서 도움을 청했을 뿐인데,
어른들이 너에게 너무 위험한 방법을 썼고
너는 작은 몸으로 견디다 못해 쓰러지고 말았어.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두 어른이 서로를 붙잡고 울고 싸우는 모습을 보며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졌을 거야.
그때 너는 이렇게 생각했지?
“내가 사라지면 다 괜찮아질 거야.”
하지만
그건 절대로 진실이 아니란다.
어른들이 싸운 건 너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평생 해결하지 못한 상처들 때문이었어.
너는 그저 그 폭풍 속에 우연히 있었을 뿐이야.
너는 아무 잘못이 없었어.
그때 네가 한 일은 단 하나, 도움을 구했고
어른들을 믿었을 뿐이야.
다시 지금 그 장면으로 갈 수 있다면
마음이 무너진 너를 안고 조용히 말 할거야,
“ 괜찮아. 너는 무고해.
너는 사랑받아야 할 아이야.
어른들의 싸움은 너와 상관없어.
너는 여기서 안전해.”
그리고 나는 너의 손을 잡아
그 혼란의 공간에서 천천히 데리고 나올 거야.
5. 지금 흘리는 눈물
이 눈물은 그때 울지 못한 아이가 지금 우는 눈물입니다.
안전해진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마음 깊이 눌려 있던 슬픔이 올라오는 것이에요.
이 눈물은 치유의 핵심입니다.